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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사이코패스를 만든다
김병수 |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부교수
우리 곁의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는 텔레비전 뉴스로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지나쳐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사이코패스는 널렸다. 일반인 중 1퍼센트 정도가 사이코패스다. 사회적으로 잘 적응한 사이코패스는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사이코패스와 피상적 관계만 맺고 있다면, 그를 매력적이고 멋진 사람으로 알고 지내기도 한다. 주의 깊은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꼼꼼하게 파헤쳐야만 사이코패스의 진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는 그(녀)와 상사나 부하 관계 혹은 경쟁 관계를 맺어보아야 비로소 알게 될 때가 많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지위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는 동료나 부하의 업무를 교묘하게 방해하고, 자기 과오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데 능수능란하다.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대놓고 하소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여러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회의실에서는 친절한 척하다가, 단 둘이 남게 되면 표정을 싹 바꾸어 폭언을 쏟아내고 모멸감과 수치심을 심어넣는다. 그러다가도 누가 보고 있으면, 웃으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것이 사이코패스다.
정치계나 기업 조직의 상위 계층에는 사이코패스가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 비즈니스 업계의 시니어 매니저급에 있는 사람 중 3~4퍼센트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1 우리나라도 그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높은 지위에 오른 남편을 둔 중년 여성을 상담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아서는 도저히 그럴 사람이 아닌데 실제로는 남편이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는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된다. 반복적으로 아내를 구타하고, 가족을 감정적으로 학대하거나 멸시하고,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남자가 사회적으로는 정반대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면 사이코패스라 판단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거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이코패스 1명 정도와는 (자신은 원하지 않더라도) 관계를 맺고 있을 수 있다. 다만,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는, 된통 당해 보아야 비로소 알게 된다. 사회적으로 잘 기능하는, 그래서 성공하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이코패스는 평범한 사람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현실에서 사이코패스와 대적해서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착취당하지 않고 피해만 입지 않아도 다행이다. 가장 좋은 대처법은, 웬만하면 이런 사람과는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다.
사이코패스의 극단적 자기중심성
사이코패스는 공식 진단명이 아니다. 진단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다. 여러 연구자와 임상가가 사이코패스를 정의하는 기준이나 평가법을 나름대로 제시해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정리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양상을 나타낸다.
공감 능력의 결핍(lack of empathy)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같이 느끼지 못한다. 타인의 감정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같이 아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하다. 정서적 분리(emotional detachment)다. 그 누구와도 진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사회적 정서(social emotion)가 결핍되어 있다. 계산적인 행동과 표정, 말투로 감정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실제로 느끼지는 못한다. 자기 내면의 정서와도 분리되어 있다. 분노나 좌절, 흥분 같은 원초적 감정을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는 정서를 느끼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침착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무책임(irresponsibility)이다. 일이 잘못되면 타인을 비난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후회나 자책도 없다.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인정할 때도 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후회나 반성은 없다. 필요에 따라 거짓말도 서슴없이 한다. 속임수에 능하다. 과도한 자신감(overconfidence)이다. 과대망상에 가까울 정도 자기 가치를 스스로 높게 평가한다. 모든 일에 자신은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믿는다. 어떤 일을 해도, 그럴 만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자기 목적에만 집중함(narrow attention to self-serving goal)한다. 목표와 관련 없는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방해가 되는 것은 무시하거나, 가차 없이 제거해버린다. 타인은 단지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기생충처럼 활용한 뒤 해를 입히기도 한다. 폭력성(violence)이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다니지는 않지만, 사이코패스는 근원적으로 폭력적이다. 폭력성을 힘으로 여긴다. 좌절을 견뎌내는 역치가 낮아서, 조금만 거슬리는 일이 생겨도 공격성이 쉽게 끓어오른다. 방해가 되면 타인을 공격하고 해를 입힌다. 은밀한 방식으로 주변 사람을 학대하고 착취하기 때문에, 폭력성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사이코패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의 경험이 제삼자가 보기에는 심각하지 않은 것 같은 때가 드물지 않다.
사이코패스가 조직에서는 유능한 관리자로 인정받아 높은 직위에 오르기도 한다.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리더십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 결핍이 위기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능력으로 오인된다. 과도한 자신감과 자기 목적에만 충실한 것이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폭력적 성향이 강한 조직 장악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은 ‘극단적 자기중심성’이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의 속성을 단 하나로 표현하라고 하면, ‘극단적 자기중심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위의 여섯 가지 특성도 따지고 보면, 자기중심성이 대인관계나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발현된 것일 뿐이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예외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법을 어겨도 괜찮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근원적으로 사이코패스는,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열등하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권력이 자기중심성을 강화시킨다
직장이든, 사회에서든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과 말을 섞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일. “그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더라. 감정이 느껴지지 않더라. 내 입장은 하나도 고려해주지 않고, 자기 합리화만 하더라. 잘못을 하고 나서도 오히려 더 당당하더라. 그래서 더 분통 터졌다!” 그들과의 대화에는 인간미가 끼어들 틈이 없다. 공감이나 연민이 오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약자 입장에서는 권력자와 대화하고 나면 오히려 더 화가 나고 비참한 기분만 남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도 자주 한다. “그 사람, 예전에는 그러지 않더니 힘이 생기고 나더니 변했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자리에 가더니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어.” 이건 특별한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권력을 갖게 되면, 그리고 그것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다. 권력이 사람의 생각과 행동, 감정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권력이 인간의 뇌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점과 타인의 그것을 별개로 구분하여,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지식 등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조망수용(perspective taking)이라고 한다. 조망수용은 타인의 지각 경험을 추론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지각은 조망수용을 방해한다.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능력을 권력이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보자. 연구 참가자를 대상으로,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는지 ‘권력지각’ 척도를 활용해서 평가했다.(‘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같은 문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척도의 점수와 위계 구조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난 뒤, ‘조망수용평가척도’를 활용해서 개인의 조망수용 능력을 측정했다.(이 설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항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심리적 관점에 적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친구의 관점으로 생각해서 친구를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연구자들은 이 두 측정 점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개인이 가진 권력 지각과 조망수용 사이에는 부정적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
이 외에도 여러 연구를 통해, 권력은 자기 관점에 매달리게 만들고 타인의 관점으로부터는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이 반복해서 확인되었다. 자기 이마에 알파벳 ‘E’를 써보라고 했을 떄, 스스로 권력을 가졌다고 지각하는 사람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관점에서 쓴다. 하지만, 힘이 약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타인의 시각적 관점에 맞추어 읽을 수 있도록 쓴다. 권력은 다른 사람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도 떨어뜨린다. 타인의 정서를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을 정서조망수용(affective perspective taking)이라고 한다. 이것은 공감 능력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다. 권력은 정서조망수용 능력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에게 행복, 슬픔, 공포, 분노를 반영하는 얼굴 표정이 담긴 24개의 이미지를 보여준 뒤, 4개의 정서 중 어떤 것에 해당하는지 선택하도록 했다. 그 결과, 힘이 강하다고 지각하는 사람은 타인의 정서를 읽어내는 데 (힘이 약하다고 인식한 사람보다) 많은 오류를 범했다.3
자신이 권력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인식할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지각과 판단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를 변질시키기도 한다. 권력은 ‘그 사람이 나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일까? 나의 명성이나 권력을 좋아하는 것일까?’ 등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의 모호한 행동조차, 자기 참조적 해석을 하게 만든다. 타인의 행동을 자신이 가진 권력과 연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이 베푸는 호의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게 된다. 친밀감과 신뢰를 형성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권력 그 자체에 의해 발생하는 효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4
널리 알려진 ‘쿠키 실험’은 권력을 가졌다는 인식만으로도, 한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5 학생 3명을 같이 일하게 했다. 그중 1명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다른 2명의 업무를 평가해서 보수를 결정하도록 했다. 임의적으로 1명에게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 뒤에, 연구자가 쿠키 5개가 담긴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 두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나머지 2명을 평가하도록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은, 무례한 자세로 쿠키를 나머지 2명보다 많이 먹었을 뿐 아니라, 부스러기도 더 많이 떨어뜨렸다.
이러한 결과들은 권력이 궁극적으로 자기중심성을 강화시킨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권력은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하나로 모이게 한다. 권력은 자기중심적이다.”6 권력은 자기에게 주의력의 초점을 몰아가게 하고, 타인과 타인의 경험으로부터는 멀어지게 만든다. 타인의 감정을 같이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심지어 타인의 진심마저 왜곡해버린다. 권력은 '자기 본위 편향(self-serving bias)'에 빠지게 만든다. 권력에 도취되면 성공은 자신 때문이고 실패는 남 탓이라고 믿게 된다. 자신의 능력은 과대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기여는 낮게 인식한다. 권력에 도취된 관리자는 부하 직원이 노력해서 일구어낸 성과도 자신이 그들을 잘 관리해서 이루어낸 것일 뿐, 부하 직원이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원래 인간이 나빠서가 아니다. 권력이 인간을 이렇게 변질시킨다. “권력은 다른 사람만 조종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진 당사자도 바꿔놓는다. 평범하고 소심했던 사람이 권력이 있는 자리에 오르면 오만하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남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던 사려 깊은 정치가나 사업가도 권좌에 오래 앉아 있으면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으로 변한다.”7 권력 주사는 오래, 자주 맞으면 안 된다. 중독되어 끊기 힘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변질시켜버리니까.
권력에 중독된 뇌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체내의 테스토스테론을 올리고, 코티졸은 떨어뜨린다.8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기분을 고양하고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자신감도 높여준다.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하면 모험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성욕도 왕성해진다.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수치는 떨어뜨린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져, 불안을 떨칠 수 있게 도와준다. 위기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긴장하지 않게 된다.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더 과감하게 행동하게 된다.
테스토스테론은 선조체(striatum)에서 도파민 활성도를 끌어올린다. 도파민은 일종의 ‘쾌락 물질’이다. 동기부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기도 하다. 선조체는 보상 추구와 관련된 신경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중요한 영역인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과도하게 자극을 추구하게 되고(sensation seeking), 충동적으로 변한다. 모든 중독 행동은 선조체를 포함한 뇌 보상 시스템 이상에서 초래되는 것이다. 술이든, 돈이든, 마약이든, 섹스든 뇌 보상 시스템에 도파민을 분출하게 만드는 것이면 무엇이든 중독에 이를 수 있다. 권력도 마찬가지. 권력을 가졌다는 생각과 느낌만으로도 도파민이 분출된다. 이것이 선조체를 활성화시키면 쾌감을 느끼게 되고, 그 짜릿한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쾌감을 얻으려고 (술, 마약, 섹스, 권력과 같은 중독 성분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심리학과 대처 켈트너(Dacher Keltner) 교수는 권력이 우리 뇌에 미치는 변화가 전두엽 외상(frontal lobe brain trauma) 환자가 입은 손상과 유사하다고 했다.9 “공감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전두엽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변한다. 사람이 약간의 권력만 갖게 되도, 이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와 유사한 행동을 한다. 권력을 가졌다는 인식은 다른 사람과의 교감을 방해하고, 공감 능력을 손상시킨다. 타인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만든다.” 우리 뇌는 다른 사람을 돌보도록 진화해왔다. 타인이 고통을 느끼면, 그의 고통을 같이 느끼도록 뇌신경 세포들이 회로를 구성하고 있다. 거울 뉴런(공감과 타인의 고통을 같이 느끼게 만드는 신경 세포)이 활성화 되면,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 고통을 같이 느끼게 된다. 그런데 권력은 뇌의 이러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방해하고 억제한다. 어쩌면 권력은 인간의 선한 본성마저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권력은 뇌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방해하고 억제한다.
어쩌면 권력은 인간의 선한 본성마저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은 정상인의 뇌(위)와 사이코패스의 뇌(아래).
권력이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 신경 네트워크에 일으키는 변화는, 사이코패스의 그것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사이코패스는 정상인에 비해 테스토스테론 수준은 높고, 코티졸 수준은 낮다.10 사이코패스가 보이는 반사회적 행동과 충동성은 도파민 농도와 선조체의 활성도가 증가할수록 심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11 심지어, 사이코패스의 선조체는 정상인의 그것에 비해 부피도 크다고 한다.12
사이코패스는 정서를 처리하고 공감 능력을 좌우하는 전두엽 기능에도 문제가 있다. 타인의 마음 상태를 추론하는 능력을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한다. 이 능력에는 두 가지가 포함된다. 하나는 타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의도와 필요를 간파하는 인지적 추론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정서를 추론하는 능력이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범죄자와 정상인을 대상으로 인지적 추론 과제와 정서적 추론 과제를 부여하고, 각각의 조건에서 전두엽 활성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다. (인지적 추론 조건에서는 두 군데에서 차이가 없었지만) 사이코패스는 정상인에 비해 정서적 추론 조건에서 안와전두엽(orbitofrontal lobe) 손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13 이 연구 결과는 사이코패스가 타인이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 기쁨과 행복에는 무관심하다는 특성을 실험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다.
권력은 균형을 이루는 힘이다
무엇인가를 반복해서 취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것을 계속 갖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이런 경우, 행동이 ‘습관화(habituation) 되었다’고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심리적 쾌감을 얻기 위해 혹은 그것을 취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불쾌감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중독된 무언가를 얻지 못하면 불안, 초조, 불면 같은 정신적 금단증세가 나타나고, 손발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고, 심한 경우 경련이 일어나는 신체적 금단증세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중독(공식적으로는 의존, dependence)’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중독되었는지 아닌지 알기 위해 꼭 피를 뽑아 호르몬을 측정해볼 필요는 없다. 전두엽 기능에 손상이 생겼는지 확인하려고 굳이 MRI 기계 속에 들어가 한참 동안 누워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심하게 관찰하면 중독되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중독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내성(tolerance)과 금단증세다. 내성이 생기면,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 더 많이 취해야 한다. 의존했던 것이 없어졌을 때 금단증세가 나타나는지만 확인해도 중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권력 중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미 얼마나 많은 권력을 지녔는지와 무관하게 더 많은 권력을 취하려고 한다면, 중독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지배력과 지위를 얻기 위해 도덕이나 윤리, 예의, 상식마저 무시한 채 물불 가리지 않는다면, 중독된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모두 내성이 생겼다는 증거다. 권력을 잃은 후에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어나고,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다시 찾을까만 골몰한다면, 중독 상태를 의심해보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징후가 있다면 권력 중독을 의심하라고 적혀 있다. “리더가 오만함과 과도한 긍지를 드러내보이기 시작하는가? 리더가 사는 방식과 친구 집단을 바꾸고, 옛 동료와 친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가? 리더가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털어놓지 않거나, 몇 사람의 조언자 아니면 예스맨이나 아첨꾼에게만 조언을 듣기 시작하는가? 리더가 다른 사람을 이용해 자신의 지저분한 일을 처리한 뒤 그 사람과 의절하지는 않는가? 리더가 집단 안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지는 않는가? 리더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설명을 거부하거나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리더가 자신의 결정이나 행위에 대하여 남을 탓하기 시작하는가? 리더가 의뭉스런 행위나 결정을 고귀하고 이타적인 것으로 꾸미려 들지 않는가?”14 당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리더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권력 중독증 환자인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중국 문화 전통에서는 권(權)이라는 말이 권력을 의미했는데, 균형을 이룬 힘이라는 뜻입니다. 권 자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새가 나뭇가지의 어떤 위치에 앉느냐에 따라 나뭇가지의 휘청거림 정도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권은 균형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상황 속에서의 형평, 즉 가변적인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적의 가치라는 의미를 가집니다.”15 무엇이든 과하면 중독된다. 술이나 마약, 도박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우리는 중독될 수 있다. 권력처럼 뇌에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는 성분은 나약한 인간을 중독 상태에 더 쉽게 빠져들게 만들 수 있다. 권력 중독에 빠지면, 뇌가 변한다. 뇌가 변하면 되돌려놓기 힘들다. 더욱이, 권력 중독에 이르면 사이코패스처럼 변하기 때문에, 그것이 초래하는 악영향은 상상 이상일 거다. 권력 중독자가 최고위층까지 승승장구하며 올라갔다고 상상해보아라.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은가!
[출처] 권력이 사이코패스를 만든다|작성자 인물과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