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은 우리 일상언어에서 중국 음식 말고 '섞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이 말이 '섞는다'는 뜻의 일본어 '잔폰(ちゃんぽん)'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야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더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말레이어에도 '짠폰'이란 말이 있어요. 마구 뒤섞어 놓은 상태를 뜻하는 말이에요. 베트남 말에도 이 말이 있는데 역시 뜻은 똑같아요. 대만 원주민인 고산족 언어의 '짠뽄'이란 말도 그런 뜻으로 쓰여요."
한·중·일 세 나라의 음식문화와 역사에 대해 쓴 《차폰, 잔폰, 짬뽕》(사계절)을 낸 주영하 교수는 "이 말이 사용되는 지역은 1930년대 이후 일본 군국주의가 침략한 지역이거나 식민통치를 경험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일본어 '잔폰'이 군국주의와 함께 이들 지역에 침투한 것이 아닐까 한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그런데 이들 지역 중에서 음식으로서의 '짬뽕'은 한국에만 있다. 주 교수는 "'그 비밀을 풀려면 일본과 한국의 화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짬뽕'은 1899년 푸젠(福建)성 출신의 화교(華僑)가 일본 나가사키에서 개업한 중국음식점 '시카이로(四海)'의 '잔폰'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처음엔 중국 우동이란 뜻으로 '시나우동'이라 했다가 1910년대 '잔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說)이 있다. 하나는 고기와 해물 등 '육해공(陸海空)'의 재료가 모두 섞여 있어 '잔폰'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밥을 먹는다는 뜻의 중국어 '츠판(吃飯)'이 푸젠 지역 발음으로 '차폰' 혹은 '소폰'인데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의 인사말인 '차폰'을 흉내 낸 것이 음식 이름으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음식점을 개업하며 상권을 형성한 화교들은 대개 중국 남방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으로 조선과 일본이 같은 정치경제적 영역으로 포섭되면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됐다. 당시 나가사키는 부산과 상하이를 오가는 연락선이 출항하는 해운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렇기에 '잔폰'이 쉽게 '짬뽕'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자장면'은 인천에 정착한 한국의 화교들이 개발한 것이 일본에까지 퍼진 경우다. 주 교수는 "모두 일제 치하에서 한국과 중국의 화교들이 공생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문화인류학과 민속학이 전공인 주 교수는 "1980년대 중반 호구지책으로 취직한 직장 덕분에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식품회사 풀무원 김치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음식의 역사와 문화 등 인문학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그때만 해도 식품사 연구는 농과대학 교수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어요. 이분들이 한적(漢籍) 자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죠." 주 교수는 이후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김치의 문화인류학》, 《음식전쟁, 문화전쟁》,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등 음식을 문화인류학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국민국가가 강화되면서 먹을거리가 중심부로 포섭되어가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주 교수는 "1960년대 이전의 진짜 제주도 음식은 박물관에 들어가고 이제 맛보기 힘들어졌다"며 "주변부와 소수자들의 음식이 사라지고 표준화·일원화 되는 현상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