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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함께 하는 십자가의 길 - 황봉철 신부 엮음
저희를 위하여 온갖 고초를 겪으신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오니, 성모님이 겪으신 주님의 수난을 저희도 체험하게 하소서.
저희에게 죄를 뉘우치고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마음을 주시어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며 결코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게 해 주소서.
이 묵상기도를 통하여 제 자신과 가정에 필요한 은총을 주시고 교회의 평화와 성직자들의 성화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제1처. 오판과 “매장” 그리고 책임회피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그것은 네 말이다.”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바라빠요.”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 주었다.(마태오 27, 11.17.21-24.26)
성 찰
나는 권위나 이기심 때문에 오판하여 남을 매장시킨 적이 없는가?
그리고 그 사실을 숨겼거나 발뺌한 적은 없는가?
기 도
권력을 잡은 자들아 너희는 정말 바른 판결을 내리는가?
백성에게 공정한 재판을 하는가?
제2처. 내 십자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마르코 8, 34-35)
성 찰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무엇인가?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내가 질 십자가는 또한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내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는가?
내 십자가가 남의 십자가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 도
주님! 노여우시더라도 나의 죄를 묻지 말아 주소서.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나를 벌하지 말아 주소서.
제3처. 첫 번째 걸림돌인 기도
- 다음날 새벽 예수님께서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
(마르 1,35)
- 빵의 기적 후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내신 뒤에, 조용히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 가셔서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도 거기에 혼자 계셨다. (마태 14, 22-23)
- 잘 들어라. 이렇게 우정만으로는 일어나서 빵을 내어 주지 않겠지만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루가 11, 8-9))
성 찰
나는 아침, 저녁기도를 하지 않아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더구나 신자 아닌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성호도 긋지 않았다.
나는 몇 달이나, 몇 년이나 기도하지 않은 적은 없었던가?
기쁘고 즐거울 때는 주님을 찾지 않고, 괴롭고 슬플 때만 주님을 찾은 적은 없었던가?
기 도
당신께 의지하오니, 이 종을 구원하소서.
당신은 나의 하느님,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매일같이 당신을 부르옵니다.
제4처. 괴로운 만남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을 붙들러 나섰다. 그분이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님을 불러 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이를 보시고,“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하고 예수님은 반문하신다. (마르코 3, 21.31.34)
성 찰
나는 명절이나 평소에 부모, 형제들을 만나기를 꺼린다.
그들이 나와 내 집을 방문하는 것조차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왜? 무엇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을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은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 1요한 4,20)
기 도
내 부모가 나를 버리는 한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저를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제5처. 도움과 자선
-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최후심판: 마태오 25,40)
-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루가 12,21)
-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부자와 라자로: 루가 16,31)
성 찰
나는 평소에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사는가?
사후 천상보답에 대해서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기 도
착한 사람이 버림받거나 그 후손이 구걸하는 것을 나는 젊어서도 늙어서도 보지 못하였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선선히 꾸어 주며 살고 그 자손은 축복을 받으리라.
제6처. 의로운 일에 나서는 용기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 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 주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 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루가 7, 44-47)
성 찰
옳은 일, 정의롭고 평화를 위한 일이 있는데도 나는 귀찮고 성가시다, 시간이 없고,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한 채 살고 있지는 않는가?
기 도
못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여라.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주님의 눈길, 의인들을 돌아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
제7처. 두 번째 걸림돌인 죄의식
-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 와 예물을 드려라.” (마태 5,23-24)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요한 8,7)
성 찰
내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이 죄, 특히 미움과 성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리하여 내 마음을 차분히 돌아보기가 싫다. 내가 그런 죄의 상태에 머물게 된 근본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나는 유혹과 범죄에 대해서 잘 구별하지 못하고, 늘상 죄의식만 느끼고 살고 있지 않는지?
기 도
주님,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 내가 앉아도 아시고 서 있어도 아십니다. 멀리 있어도 당신은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걸어 갈 때나 누웠을 때나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제8처. 위 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둔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마르코 10,29-30)
성 찰
나는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으면서도, 나보다 힘든 사람을 위하여 위로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가?
오늘도 복음 말씀을 통해 나는 어떤 위로를 받았는가?
그리고 나의 위로를 받을 사람은 누구인가?
기 도
이른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밤늦게야 잠자리에 드는 것도,
먹으려고 애쓰는 것도 다 헛되고 헛되니,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배 불리신다.
제9처. 명예와 용서
-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
(광야의 유혹: 마태4,8)
- 왕이 빚진 종에게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 그가 애걸하기에 왕은 그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지만, 그 종은 자기 동료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다.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무자비한 종의 비유: 마태 18,25.32)
성 찰
나는 어떤 명예를 쫓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뽑아 버리고 싶지 않는 걸림돌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를, 왜 용서하지 못하는가?
기 도
주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축복하시거늘, 나는 미끄러져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한 자들이 잘 사는 것을 시샘한 탓이옵니다.
제10처. 수치와 모욕
“나는 분명히 말한다.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든 입으로 어떤 욕설을 하든, 그것은 다 용서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 죄는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러운 악령에 사로 잡혔다고 비방했기 때문이다.” (마르코 3,28-29)
성 찰
내 양심의 겉옷을 벗으면 가장 부끄러운 것은 무엇인가?
내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예수님께 모욕과 수치가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기 도
일어나소서 하느님!
옳으심을 밝히소서. 날마다 당신을 모독하는 미련한 자를 기억하소서.
아우성치는 당신 원수들을 잊지 마소서.
당신의 적대자들, 그 우짖는 소리가 높아만 갑니다.
제11처. 못 박히심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골고타(해골산)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 포도주에 몰약(마취제)을 타서 주었으나, 그분은 드시지 않았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하하 너는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다시 짓는다더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목숨이나 건져보아라.” “남을 살리면서 자기는 살리지 못하는구나! 어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나 보자, 그렇게만 한다면 우린들 안 믿을 수 있겠느냐?”
“낮 열두시가 되자 온 땅이 어둠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오후 세 시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마르코 15,22.25.29.31-33.37)
성 찰
십자가 형벌이 어떤 고통의 죽음인가? 그것은 서서히 질식사 시키는 것이다.
그분은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신음하시다 운명하셨다.
내 십자가가 나를 질식시켜 죽일 때까지 나도 참을 수 있는가?
기 도
물이 잦아들 듯 맥이 빠지고, 뼈 마디마디 어그러지고, 가슴 속 염통도 촛물처럼 녹았습니다.
깨진 옹기조각처럼 목이 타오르고, 혀는 입천장에 달라 붙었습니다.
제12처. 죽음 앞에서의 절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저것 봐! 이 사림이 엘리야를 부르는 구나.”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분을 지켜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두시는 광경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말하였다. (마르코 15,34-35.37.39)
성 찰
고통스러운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까지, 구원의 손길을 기다렸으나 끝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운명하시는 주님.
무엇하러 죽기까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던가?
그분의 마지막 울부짖음은 허탈에서 오는 절규인가?
아니면 기도(시편22장)의 말씀인가?
기 도
악을 미워하는 자를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당신을 믿는 자의 목숨을 지켜 주시어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주신다.
바르게 살면 그 앞이 환히 트이고
마음이 정직하면 즐거움이 돌아온다.
제13처. 절망과 허탈
병사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차례로 꺾고, 그분은 이미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는 대신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요한 19, 32-34)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예수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2,20-21)
성 찰
나의 마지막 희망이 무너졌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나의 믿음이 나에게 위로가 되는가? 이 때 예수님과 그분의 수난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고린 15,14)
기 도
주님! 돌아오소서. 이 목숨 구하소서.
당신의 자비로써 살려주소서.
죽으면 당신을 생각할 수 없고 죽음의 나라에서 당신을 기릴 자 없사옵니다.
제14처. 무덤과 희망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요한 12,24-26)
성 찰
절망에서 절규,
좌절에서 포기,
그런 후에
희망과 보답을 기대해 본 적이 있는가?
기 도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보살피신다.
- 작은 바램 -
어린 시절 시골공서에서 ‘성로신공’(십자가의 길)을 할 때, 어쩌면 그렇게 기도가 길고 지루했던지 모른다. 글을 모를 때도 그랬고, 글을 알고 따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참례’(주일날 미사대신 ‘성교공과’로 하는 공소예절을 말함) 후 이어지는 할아버지 공소회장님이 선창하시는 성로신공은 느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동안 초 복사나 십자가를 든 복사를 하면서 우리끼리 장난치고 뒷꼭지를 맞아가며 무료함을 달랬던 기억들……. 그래도 그 기도에 빠질 수 없었던 것은 그 기도에 가야만, 봄비가 온 성당마당에서 흙탕물을 튀기며 물총 싸움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신학교(사제 양성을 위한 중 고등학교 과정) 때의 십자가의 길은 사뭇 경건했다. 이 기도를 하는 동안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제 딴에는 이빨로 입 안의 살점 하나를 줄곧 깨물고 기도를 마칠 때까지 그 고통을 느끼기도 했었다.
본당신부를 하고부터는 사정이 또 달라졌다. 사순절이 되면 매일 이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순절 동안 한 번도, 아니 어떻게 십자가의 길을 하는 줄도 모르는 신자들이 태반이다. 해서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평일에 십자가의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주일에(토요일 어린이 미사부터 주일 저녁미사까지) 매 미사 30분 전에 이 기도를 하는 것이다. 신자들의 지루함을 감안해 묵상의 여유도 없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리 빨리 기도를 해치운다.
요즈음 ‘언제 한번 차분히 묵상하며 이 기도를 해 볼꼬’ 하던 차에 친구 신부가 복음 내용을 담은 기도문을 만들어 보란다. 그는 이번 사순절을 참 잘 보내고 있다. “백수”에 가까운 아버지를 모셔다가 매일같이 세수에 면도, 목욕시켜 드리고 팔다리 주물러 드리고 또한 손톱발톱 깎아드리면서, 한다는 말이 걸작이다. “예수님을 제자들의 발만 씻어주었지만, 나는 발뿐만 아니라 이렇게 온통 다 씻어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리며 안마까지 해 드리니 내가 예수님보다 낫지 잉.”
그런 그가 이 일을 제안하니 나도 용기를 내어 본다. 송 신부에게 진정 고마움을 전한다.
송 신부: “어이 친구야! 이 책이 겁나게 많이 팔려버리면 어쩔 것이여?”
황 신부: “걱정하지마라. 장가갈 밑천은 안 할 끼고, 용잠성당 짓는데 보탤끼구마.”
< 2002년 사순절에 용잠성당에서 성서신학박사 황 베드로 신부 >
첫댓글 십자가의 길을 처음으로 자세하게 묵상하였습니다...너무도 놀랍고 죄책감도 들고...그리고 신부님들의 맑은 영혼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감사해요...
한때... 스스로 택한 보속으로 성지순례 빡세게 댕겼습니다. 요즘, 다시 떠나고 싶어요. 뚱땡엄니만 모르는 사실인데요, 뚱땡님도 영혼... 참 맑아요. 더 맑으면 천사가 되어서 하늘로 승천한다는... 긍께, 지금 그만큼이 딱 좋다요... ㅎㅎ
4처를 묵상하다가 자랑 하나^^ 시댁식구 맞아들이기를 꺼리지 않았더니 커다란 상이 떨어지더이다~
그 상이 뭘꼬... 궁금증 일게 하지 말구요, 얼렁 말해주세욤~~ (묵는 거면 나눠 묵자구요...)
히히히~
이 사순절에 좋은 묵상이네요... 감사드리며.^^
별하나님은 이곳 쉼터의 별이세요. 감사합니당~~
말씀, 성찰, 기도부분이 주님과의 동행길을 더 가깝게 만들어주네요.. 시간내어 다시 흠씬 머물러봐야겠어요..감사해요.. 고시랑님~~^^
제가 더 감사해욤~~ 부활이 점점 가까워 지고 있어요...
오늘은 이 기도문을 복사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해야겠어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