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과 함께 보는 사무엘하(13장)의 교훈
○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3절)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저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다윗의 장자 암논의 근친상간 범죄는 다윗 집안이 풍지박산 나는 시초를 제공합니다. 암논이 요나답의 간계를 받아 들이는 것은 정해진 결론 이었습니다. 암논이 항상 가까이 한 친구가 요나답이었기 때문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질 수밖에 없다)’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사람은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대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사무엘하 성경 본문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찾아가고, 자주 대면하며 들어주는 함께하는 대상은 누구인지?
화려함과 풍요로운 열매가 가득한 세상이 제공해주는 대중매체가 우리의 친구인가요~ 아니면 말씀 가운데 함께 계신 우리 주님인가요~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서, 나머지 시간에 우리가 자주 시간을 들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금식은 사람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을 끊어버리는 결단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낮추며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의 삶에서 유트브, 드라마, 게임 같은 열매들에 대해 금식을 선언한다면, 얼마 못가서 자신이 세상의 풍조에 얼마나 중독되어 있는지 피부로 체감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로움이 있을 때,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의지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공감해줄 그 한 사람이 없어서 자살한다는 얘기를 사회복지 기관에서 상담하시는 분을 통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
주님은 사무엘하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매순간 의지하는 대상은 누구인지 묻고 계십니다.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잠 3:26)
○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 27:6)
(4절) 저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뇨 ~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트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잠 5:3)
죄는 하와를 유혹하였던 뱀의 혀처럼, 우리의 육체의 정욕을 달콤하게 달래주며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에게 동조하여 연합하는 순간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와 관계된 주변 공동체를 회복하기 어려운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트려 버립니다.
다행히도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 당신의 자녀들에게 지혜로운 처방전을 내려 주십니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죄로 타락한 죄인의 후손들이기에 듣기 싫은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쓰디쓴 처방을 달게 받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밝히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충언을 해주는 것은 하는 사람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충고를 하려는 상대에 대해 깊은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변에 우리가 듣기에 ‘싫은 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복’입니다.
누군가의 충고는 때로는 ‘빨간 신호등’처럼 멈추어 서야 할 것을 말해주기도 하며, 때로는 ‘브레이크’처럼 진행 속도를 늦추라고 말해주기도 하며, 때로는 ‘하얀 백지’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역사 속에 성군으로 존경 받는 왕들은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신하들을 곁에 두고 그들의 말을 경청했지만, 어리석은 왕들은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신하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쫓아내버리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신하들을 가까ㅇl 두었다 나라가 망하거나, 왕조가 무너지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보고 들으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역사가 우리의 삶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충고를 잔소리로 귀찮아 여기며 받아들입니다.
만일 부모의 싫은 소리를 달게 받는 자녀가 있다면 그는 복된 자녀입니다.
옛 어른들은 그러한 자를 효를 아는 자녀라며 존중해 주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는 하늘로부터 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일 뿐아니라,
그 자녀에게 허락하신 짧은 생애 동안 부모님과 행복한 관계를 맺으며 지낼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식습관에 따른 건강의 영향이 자녀와 손자 3대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또, 부모의 정신적인 성향 또한 자녀들에 이어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육체적인 것, 정신적인 것도 그렇지만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사람의 죄가 그 자신뿐 아니라, 그가 속한 주변 공동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세상 역사뿐아니라 성경에서도 보게 됩니다.
인류의 첫 조상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들이 듣기에 달콤한 뱀의 충고를 받아들여 온 인류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피조세계도 저주를 받습니다.
다윗왕 또한 그가 범죄한 간통과 간교한 살인으로 그의 집안과 자녀들, 그가 속한 왕국(공동체)에 부정적으로 심대한 악영향(재앙)을 끼치는 역사를 사무엘하를 통해 보고 듣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개인이 범한 죄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생각할 때, 사무엘하 (13장)을 통해 주시는 경계의 말씀은 두려움과 감사함으로 다가옵니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잠언 25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