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06.04 08:14 | |
동양고전 마지막 주제입니다. <논어>,<맹자>,<장자>, 제 짧은 지식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울 뿐인데, 이제는 <주역>입니다. 난해하기 그지없다는 <주역>입니다.
흔히 <주역>을 떼면 길거리에 나가 돗자리를 깔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점쟁이가 되란 말이지요. 좋게 얘기하면 우주와 인생의 이치를 깨달은 것입니다. 낯선 사람을 앞에 두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으려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않고 불가능할 테니까요. 그러나 사람들 눈이 이리 곱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현대인의 눈에는 점을 친다는 행위 자체가 바보스러운 짓이니까요.
제가 읽은 대부분의 <주역> 해설서의 서문에는 ‘주역은 점술서가 아니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역>이 점술서인지 아닌지, 심오한 우주의 원리를 담은 철학서인지 아닌지, 이런 평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처음에는 분명 점술서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훗날 유가에서 해설을 붙이면서 철학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도 점술서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심오한 우주의 이치를 담은 사서삼경의 하나로 떠받드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점치는 책으로 사용하든 깨달음을 위한 화두집으로 사용하든, 읽는 사람 마음이겠지요.
우선은 <주역>이란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역>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리 재미있지가 않습니다. 표현이 애매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니 해석 또한 천차만별입니다. <주역>을 공부하다가 며칠을 못 견디고 책을 집어던졌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주역>이 있다는 말이 있을까요. 그러나 미리 좌절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주역>이 어떤 책인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예고편에 불과하니까요. 예고편 치고 재미없는 예고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미삼아 읽으시고, 혹시 더 깊은 호기심이 발동하면 그 때 두툼한 <주역>을 직접 펴보세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주역>은 평생을 곁에 두고 읽을 만한 책입니다. 평생을 두고 생각해봄직한 사유의 실마리가 64개나 있습니다.
혈액형의 진실
<주역>을 알려면 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태극기에서 태극 모양 주위에 그려진 바코드처럼 생긴 작대기 모양을 괘라고 합니다. 태극기에는 건,곤,감,리 네 개의 괘가 그려져 있습니다. 괘를 알기 위해서는 효를 알아야 하고, 효를 알기 위해서는 음양을 알아야 하며, 음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극과 태극의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대개의 <주역> 해설서들은 이런 것을 먼저 다루고 있는데, 제가 읽어보니 몇 페이지 읽다가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주역>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비슷한 심정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역>의 역사와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주역>으로 점치는 방법부터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대칼로 연습하기도 전에 진검을 휘두르는 격이지만 초반에 흥미를 끄는 데는 훨씬 나은 방법이라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나 <주역>에 씌어진 대로 점을 치려면 그것도 매우 복잡합니다. 대나무 조각 50개를 만들어 양손에 쥐고 몇 개를 뽑았다 쥐었다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겠습니다. 준비물은 달랑 동전 하나. 정통이 아닌 약식으로 점을 한번 쳐보며 <주역>이라는 책의 구성을 한번 훑어보려 합니다. <주역>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겼구나하는 생각이 좀 들면 그때 가서 <주역>의 역사와 거기에 담긴 깊은 뜻을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점을 치기는 하겠지만, 사실 저는 점을 믿지 않습니다. 점괘는 늘 애매모호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토정비결이 그러하고, <주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밤에 꾸는 꿈이 그러하듯, 꿈보다는 해몽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만 점이나 혈액형 성격 분류, 별자리 운세 등의 원리는 근본적으로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일종의 ‘바넘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 말 어느 곡예단에서 사람들의 성격과 특징을 기막히게 알아맞히는 바넘(Barnum)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 용한 점쟁이였던 셈입니다. 이후 1940년 대 심리학자 포러(Forer)가 성격 진단 실험을 통해 바넘의 족집게 같은 성격 진단의 원리를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포러 효과’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실체란 다름 아닌 ‘근거 없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으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일단 정확한 정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점괘가 마치 자신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포러는 자신의 수강생들에게 그럴 듯한 성격 진단지를 나눠주고 테스트를 합니다. 그런 후에 이 테스트와는 전혀 상관없이 신문 점성술 난에서 몇 개를 뽑아 내용을 약간 고쳐 학생에게 나눠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성격과 잘 맞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포러가 학생들의 성격 진단 결과로 나누어 준 점성술 난의 내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기술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막연하고 일반적인 특성을 자신의 성격으로 묘사하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으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특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대개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좋은 것일수록 강해지는데, 이처럼 착각에 의해 주관적으로 끌어다 붙이거나 정당화하는 경향을 ‘바넘 효과’라고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이러한데, 점집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점집을 찾아 점보는 것을 미신이라 배격하는 사람들조차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를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술자리 농담삼아 얘기하면서도 은근히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것이야말로 ‘바넘 효과’의 전형입니다.
옆의 표는 ABO식 혈액형에 따른 인종별 혈액형 빈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대개 고르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인을 보면 B형과 AB형이 거의 없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사람의 성격을 4가지로 분류해 그것이 무슨 형의 성격이라고 규정해도 대충 1/4의 확률을 가집니다. ‘당신은 소심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때로는 대범하게 행동해 주위에서 의외라고 합니다’라고 하면 누가 감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살짝 바꾸어 ‘당신은 평소 대범하지만 가끔은 소심하게 고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주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역>의 괘 중에서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괘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역> 괘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요, 흥진비래|興盡悲來|입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도리어 복이 될 수 있고,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는 것입니다. <주역>의 역|易|은 ‘바뀌다’ ‘변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자 이제 동전을 꺼내볼까요.
이 글을 쓰는 데 주로 참고한 서적
新譯 周易, 盧台俊, 홍신문화사 알기 쉬운 역의 원리, 강진원, 정신세계사 周易 王弼注, 임채우 옮김, 길 새로 풀어 다시 읽는 주역, 서대원, 이른아침 주역의 멋, 장영동, 우리문화사 고을은 바뀌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는다, 기세춘, 화남 강의, 신영복, 돌베개 (전체공통) 사서삼경을 읽다, 김경일, 바다출판사 (전체공통) 중국고대철학사, 알프레드 포르케, 소명출판 (전체공통)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