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같이 연일 비가 계속 될 때 꼭 들리는 곳이 있다. 팥죽집과 극장..
본디 팥죽을 좋아하다 보니 비만 오면 면발 애호가가 라면, 자장면집을 찾듯이 팥죽집으로 발길이 향한다. 예전엔 동네마다 분식집, 튀김집, 죽집이 많이 있었는데 도시화로 인해 요즘은 가까운 곳에서 쉽게 찾아 보기가 힘든 것 같다. 백화점, 마트 지하 식품매장에 가면 만나 볼 수 있지만 예전의 맛이나 정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찾아 보기 힘든 동네 팥죽집에서도 자주 가는 집(가게라 부르기 싫다)이 있는데
하나는 충장로 조흥은행 부근 골목에 위치한 제일분식, 그리고 산수시장 시장통에 있는 산수 팥죽
두 집 모두 매끈하고 번쩍이는 내부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바닥이며 문이며,테이블이며 허름하기가 그지없다.
옆으로 당기는 유리 샷시문, 바닥은 70~80년대 한창 주가를 올리던 도끼다시(?)
출입문에 커다랗게 팥죽, 동지죽 이라 써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두 집 모두 팥죽과 동지죽을 전문으로 파는 데 팥죽(팥국시)은 밀가루로 반죽한 국수처럼 가는 사리가 들어가고, 동지죽은 찹쌀로 반죽한 새알이 쏭쏭 들어 간다.
도심 속 흔치않은 골목길 중간 쯤에 위치한 제일분식은 가게 이름을 봐선 여러 가지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 같지만(물론 라면도 팔지만) 들리는 손님들 대부분은 죽을 먹으러 온다. 주방이 안에 있어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못했지만 부엌에 커다란 솥이 몇 개 씩 얹어져 있다. 팥물을 올려 놓고 새알과 국시는 따로 보관을 하고 손님이 오면 먹을 분량만큼 팥물을 덜어 잘 끓여 거기다 국수 또는 새알을 넣는것 같다.
죽 맛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지만 불조절(조금만 지나면 바닥이 누르든지 싼 냄새가 나고), 새알을 집어넣는 타이밍,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원료(팥,찹쌀) 선정 등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백화점에서 파는 죽과는 비교가 되지않는 진한 맛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제일 분식은 팥죽과 함께 반찬으로 무우 절이지와 배추김치가 나오는데 배추김치 보단 팥죽에 먹기에는 절이지가 맛나다.
가격은 팥죽 3,500원 동지죽 4,000원
비내리는날 유리 샷시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좁은 골목 사이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 보며 먹는 맛이 바쁜 도심생활 속에 여유를 갖게한다.(급하게 먹으면 혀천정이…..)
산수 팥죽은 산수 시장 안에 있어 팥죽 집까지는 가는데 시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맛 볼 수 있어 좋다. 조그마한 네온 간판 하다 달랑 달고 팥죽을 팔고 있는데 이 집은 시장 특성상 주방(부엌)이 밖에 나와 있다. 밖에 내놓은 불화로며 거기에 얹어있는 큰 솥단지들, 팥죽이 상위에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아줌마의 능숙한 솜씨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홀 안을 둘러보면 몇 개 되지않는 테이블과 방이 하나 있고 한 쪽에 새알을 만들면서 하얗게 자취가 남겨져 있는 찹쌀(밀가루)분말, 벽에는 단골 주문객의 전화 번호 옆에 00댁,00댁등 어머니(할머니)들이 자주 부르던 호칭이 적혀져 있다.
산수팥죽의 가격은 시내의 제일 분식보다 각각 500원씩 비싸다.
팥죽 3,500원, 동지죽 4,000원
내 생각엔 반찬때문이지 않을 까 싶다. 팥죽과 함께 반찬이라곤 달랑 죽그릇과 똑 같은 크기의 대접에 열무로 짤박하게 국물을 내어 담은 진국(물김치)하나 내놓는데 이 맛이 또한 쥑인다. 주인 아줌마 왈 ‘나는 멀리서 일부러 우리집까지 오는 단골 때문에 열무며, 찹쌀이며 최고로 좋은 것만 주문해서 쓰제,한 번 온 손님은 딴 데 못가제’ 죽 한 그릇에 물김치 한그릇까지 비우고 나면 장마철 축 쳐진 기분이 확 상쾌하게 바뀐다. 소화도 잘되고 (병든 팥 한 되에 방귀가 세 말이라 했던가)든든하기 까지 하니….
아주머니가 총각 새알 더 묵고 싶냐 물어보며 손에 한 웅쿰 집어 죽 속에 덤으로 더 넣어주기도 하신다.
역시 비내리는 날 백열구에 젖은 시장풍경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생생하게 들어가며 죽을 먹으면 이 맛이 정말 죽을 맛이다.
두 집다 기호에 맞추어 먹으라고 노란 설탕(백설탕은 쓰지 않음), 소금을 내놓는데 제 경우엔 아무것도 넣지않고 먹는다. 또한 잘 끊인 보리차를 차갑게 해두어 내놓는데 정수기 물 보다 훨 맛나고 시원하다.
노란설탕, 소금, 무우절이지, 열무진국,그리고 팥(동지)죽,,,,
장마철 비가 쏟아지면 영화 보기전 항상 생각이 난다.
비오는 날 팥죽 한 그릇 비우고 팥죽(저렴하면서도 먹을 때는 서둘러 먹기도 힘들고 덥고 습한 날씨에 땀까지 쏟아 지지만, 다 비우고 밖으로 나올 때 살랑살랑 느껴지는 청량한 기분과 든든함) 팥죽 같은 영화 한 편 비우러 간다. 패스트푸드 처럼 쉽고 맛이 강한 것보다는 잘 끊여 진국이 오래가는 영화….
주의 : 두 집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가면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아줌마들의 계모임이 있는 날이 많아 좁은 집안이 들썩들썩함. 먹은 후의 아줌마들의 공통된 모습, 손거울을 하나씩 들고 땀으로 지워진 안면 복구하는 진지하고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약간 당황스럽다.
첫댓글 하하 와~ 정말 먹고 싶게 글을 잘 쓰셨네요 ^^ 좋은 곳 소개해주셨으니 한번 가봐야겠네요 ㅎㅎ
충장로에 조흥은행이 있나요??? 조흥은행 365는본듯하지만... 조흥은행이 어딨죠??
정말 맛있게 글을 적으셨네요..ㅋㅋㅋ 다음에 꼬옥 가봐야겠네요...
조흥은행 충장로지점 위치 입니다. 참조하세요. http://www.chb.co.kr/data/map/branch/432.jpg
전대정문에 영분식이라고 팥죽이랑 칼국수 잘하는 집 있는데 여기 열무김치도 쥑입니다 비오는 날 김치라면도 별미구요^-^ 가까운 곳에 계시는 분들은 전대 정문에 있는 태봉골과 해송 사이 골목길로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