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제구역이었던 유진상가 지하 구간이 예술 명소로 거듭 나다'
- 홍제천이 흐르는 유진상가가 지어진지 50년만에 건물 지하로 한쪽 편이 '열린 홍제천길'로 개방됐다 250m 구간이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홍제유연’으로 태어났다. 100여 개 기둥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사운드 아트 등을 설치했다.
홍제유연(弘濟流緣)은 ‘물과 사람의 인연이 흘러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하다’라는 뜻이다.
서대문구 홍은사거리에 자리한 유진상가는 사연 많은 건물이다.
1992년 내부순환도로 공사로 건물 한쪽이 잘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물 바로 위에 왕복 6차선의 내부순환로가 있어 건축가들 사이에선 ‘황당한 풍경’으로도 유명하다. 5층 건물의 3개 층을 허문 자리로 내부순환로가 지난다. 또 서울 도심에 ‘싹쓸이 재개발’이 몰아칠 때 재개발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충돌로 사회적 이슈가 된 곳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상가 철거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용케 살아남았다.
□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난 유진상가 지하공간'
- 서울 도심에 시민들이 누릴 또 하나의 공공 문화예술공간이 마련됐다. 홍제유연은 특별한 역사성·장소성을 지닌 곳이 현대미술과 만나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 주목된다. 홍제천을 가운데 둔 너비 30m, 길이 250m의 지하 터널 같은 이 공간은 사실 남북 분단과 산업화시대, 무분별한 재개발시대를 상징하는 현장이다. 1970년 홍제천을 복개, 그 위에 한국의 초기 주상복합건물을 대표하는 유진상가를 세우면서 지하공간이 만들어졌다. 유진상가는 군사용 방어시설이기도 해 유사시 건물을 폭파, 북한 탱크의 남진을 막도록 설계됐다. 그래서 건물은 땅이 아니라 무너지기 쉽도록 100여개의 콘크리트 기둥 위에 세워져 있다.
유진상가를 짓던 시기 김신조 사태 등으로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전쟁 발발 상황을 고려해 상가 지하가 ‘대전차 방호기지’ 역할을 하도록 홍제천을 복개해 지었다. 1970년 당시 최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로 서대문의 랜드마크였다.
유진상가는 11㎞로 연결되는 홍제천길을 가로막았던 유일한 곳이었다.
□ 2019년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로 선정된 유진상가 지하
- 홍제유연은 서울 공공미술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이다.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는 2016년부터 ‘서울의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된다’는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다. 시민의 삶이 담긴 동네의 고유한 이야기를 찾고 예술과 함께 동네마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항상 시민과 함께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해 ‘화합과 이음’의 메시지를 담은 홍제유연과 남북대립 속 북한의 남침을 대비해 지은 유진상가의 역사성, 50년 만에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업 취지와 잘 맞아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간으로 채택됐다.
'홍제유연'은 새로운 형태의 공공미술을 선보이는 예술가들의 전시 무대다. 공간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빛, 색, 소리, 움직임 등 비물질과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이 선정됐다. 이 가운데 사람이 손을 대면 빛이 바뀌는 작품, 3D홀로그램으로 나타나는 영상작업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에 설치·조명·영상·사운드·디자인 분야의 4명의 작가, 2개팀이 참여했다.
□ ‘홍제천은 어떤 곳인가’ 물음에 작품으로 답하다
- 홍제유연은 새로운 형태의 공공미술을 선보이는 예술가들의 전시 무대다. 공간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건물을 받치는 100여 개 기둥 사이로 흐르는 물길 안에서 설치미술, 사운드 아트, 미디어 아트 등 테마로한 작품들이 ‘흐르는 빛_빛의 서사’, ‘미장센_홍제연가’, ‘온기’ 등 8개의 작품으로 설치됐다. 작품들은 각각 홍제천과 유진상가라는 공간을 작가만의 독창성으로 재해석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맨 먼저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홍제 마니차’를 만날 수 있다. 홍제유연 입구에 있는 ‘홍제 마니(摩尼)차’는 시민 1,000여 명의 메시지와 작품을 보고 있는 나와 공간을 비추는 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마니(摩尼)라는 뜻은 불행과 재난을 없애주고 물을 맑게 변하게 하는 보주(寶珠)를 뜻하는 말로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이다. 이 전시물은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 내 인생의 빛’을 주제로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모은 700여 명의 메시지를 정육면체 큐브에 새겨놓은 것이다. 각 큐브를 손으로 돌리면 시민들의 경험에서 나온 ‘삶이 끝날 때까지 즐기다 가길’ 같은 문구를 만나 볼 수 있다. 서로의 빛나던 순간들을 함께 공유하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자는 취지로 설치된 것으로 일부 조각은 아직 빈 상태인데 추후 시민의 온라인 참여로 채워질 예정이다.
□ '흐르는 빛, 빛의 서사' 밤에 빛나는 홍제천 길
- 이 길엔 8개의 작품이 설치됐다. 진기종 작가의 '미장센 홍제연가'는 공공미술 최초로 3차원(3D) 홀로그램을 활용했다. 길이 3.1m, 높이 1.6m의 스크린을 설치해 홍제천의 생태를 다룬 영상들을 입체적으로 떠올리도록 했다. 42개의 기둥을 빛으로 연결한 조명 예술 작품인 '온기'를 비롯해 시민참여로 완성된 작품도 설치됐다. 홍제천에는 하나의 한자가 적혀 있다. 밝을 명(明). 이 한자는 뒤집힌 채로 설치돼 유진상가 지하를 비추었다. 그러자 졸졸 흐르는 홍제천에는 한자 원래대로 모양이 선명히 비추어졌다. ‘SunMoonMoonSun’ 작품을 만든 윤형민 작가는 인간 문화를 대표하는 글자인 한자와 물이 흐르는 소리 같은 자연 그대로의 소리가 결합된 개념에서 탄생됐다고 밝혔다. 자연과 인간의 얽혀 있는 관계 그리고 조화가 빛과 소리로 나타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 초등생이 만든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
- 42개의 기둥을 빛으로 연결한 팀 고워크의 ‘온기’도 눈길을 끈다. 역사적으로는 따뜻한 물이 흐르는 교류의 장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청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몸을 씻으며 마음을 치유하던 곳’이라는 홍제천 물길의 의미를 담아 빛과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돌다리를 밟고 빛 기둥 속에 서면 홍제천 물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센서에 체온이 전해지면 조명색이 변하는 양방향 기술을 적용, 딱딱하고 일방적인 느낌을 주던 기존 공공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또 다른 시민참여작인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는 초등학생들의 참여로 완성된 작품이다. 홍제초, 인왕초 어린이들이 홍제천의 생태계를 탐험한 후, ‘앞으로 이곳에 나타날 상상의 동물과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에 대한 상상력을 담은 벽화다. 블랙라이트를 비춰가며 숨겨진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다.
□ 홍제유연 찾아가는 길
- 소개 : 빛 흐르는 예술길로 8개 작품 설치, 누구나 자유롭게 감상
- 위치 :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48-84 유진상가 지하 250m
-대중교통
지하철 : 3호선 홍제역 1, 4 출구
버스 : 유진상가, 유진상가 다리앞, 인왕시장 떡집 앞
- 개방 : 매일 10:00~22:00
- 문의 : 02-2133-2710(문화본부 디자인정책과)
- 홍제유연은 매일 12시간 동안 공개되며 커뮤니티 공간은 24시간 개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