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근교에사는 가까운 친척들끼리 매년2월 봄방학때 2박3일 여행을 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구상리 춘수리 부안촌 황새고개 만수동 에사는 친척들 입니다
종친회 회원8명중 올해는 5명이 친척결혼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참 하였습니다
그래서 3가족 6명이 12인승 봉고차로 지리산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두근이 광덕이 두조카들이 모두들 장손이고 부부가모두 열렬한 불교의 신자들이고
우리부부도 불교를 좋아하기에 지리산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지리산주위의 큰사찰인 함양 벽송사 (서암정사) - 남원 실상사 - 구례 천은사 - 화엄사 -
문수사 - 하동 쌍계사 - 칠불사 - 산청 내원사 - 대원사를 돌아보면 지리산 일대의
큰절은 모두돌아 보면서 지리산을 한바퀴 돌아보는것 입니다
코스가 지리산 이다보니 지리산을 많이다니는 내가 자연스럽게 가이드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전국을 한바퀴씩 돌아보며 2박3일간 장거리 여행을 하였으나 이번에는 참석치못한
친척들도 많기에 1박2일로 단축했습니다
푹신하고 여유있는 스타렉스에는 여러과일등 먹을것도많고 손주들 이야기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기도 하였습니다
실상사
08:00시에 2호선 방배역에서 만나 옥산휴게소에서 한번쉰후 이곳에 왔습니다
실상사를 돌아본후 칠선계곡 입구에있는 벽송사와 서암정사를 돌아보고
뱀사골로 이동하여 조금늦게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는 벽송사부터 가보면 처음부터 힘들어 할것같아
논가운데 들판에있는 실상사부터 가보았습니다
코스 : 서울 - 경부고속도로 - 대진고속도로 - 함양 IC - 인월 - 실상사
실상사
신라 덕흥왕때 (828년) 창건된 실상사는 국보11점등 문화재가 16점이 있기에
우리나라 전국의 사찰들중 가장 문화재가 많은 절이라고 합니다
야산 자락아래 논가운데 있기에 깊은산속의 절보다도 접근하기도 용이합니다
공부에 정진하는 진보적인 젊은스님들이 많이있기에 조계종에서도 실상사스님들은
야당으로 취급하며 조심스럽게 대한다고 합니다
몇년전 부안 위도에 방사선폐기물 처리장 유치문제로 데모할때 문규현신부님과
부안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3보1배를한 수경스님도 실상사에 있으면서
데모를 열렬하고 무지하게 하였습니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하며 화장실도 재래식이고 절에오는 신도들에게
신세를 안질려고 하기에 절집자체가 다른절에 비해서 노후되어 보이는절 이기도 합니다
인근 주민들과 마라톤 축구 족구를하면 언제나 실상사 스님들이 1등을 한다고 합니다
실상사 철불상
철불상 부처님이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일본을 감시하고 일본의 기를 누른다고 합니다
부처님께 절을하고 나무로 깍아만든 좌측손을 만지면 소원을들어 준다고해서 좌측손이
옷칠을한듯 번질번질 하였습니다
안내문
지금의 우리가 타임켑슐을 묻듯 옛날사람들은 불상속이나 불상밑에 보물이나
중요한 자료를 감춰두었기에 보물이 있을까 발굴한다는 내용입니다
아버지 (세종대왕) 형(문종)의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조부인 태종보다 더악날한
수양대군이 어린조카 단종 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목을졸라 죽인후 어느날
형수인 덕현왕후가 꿈에
"이더러운놈아 조카를 죽이고 왕이되니 좋으냐?"
하면서 세조의얼굴에 침을 뱉았다고 합니다
그후부터 세조는 나병과 비슷한 악성피부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온양온천 목욕과 속리산계곡등 좋은물로 목욕과 좋은약을 다써도 효과가없자 금강산등
명산 대찰을 찾아다니며 부처님께 기도를 하였으나 병은 낫지를 안했습니다
당시의 고승인 신미대사의 권유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불공을 드리기로하고 왕위에오른지
10년만인 1464년에 시종을 거느리고 피부병 치료를위해 월정사위의 상원사에 갔다고 합니다
상원사 계곡에서 목욕하던중 문수동자가 등을밀어준후 10년간 고생한 피부병이 쾌유되었다고 합니다
1984. 7.21.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을 보수하던중 동자상속에서 부처님 진신 사리와
세조의 둘째 딸 의숙 공주가 왕세자의 만수무강과 아버지 세조의 쾌유를 발원한 발원문
세조가 입었던 저고리 다라니 불경 13권 당시의 실세인 신숙주 한명회등 상원사에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과 시주액수가 적힌책같은 장부가 발견 되었습니다
그 저고리에는 세조의 악성피부병(나병?) 종기로인한 피고름등이 묻은채 였습니다
상원사에서 몇년간 유리관에 보관되어 전시되다가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실물과 똑같은 모조품이며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 되어있습니다
세조의 고름묻은 저고리는 500년전 의상연구등 국보급 유물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진품 명주옷을 상원사에 갔다가 두번보았는데 크기도했고 미싱으로 박은듯한
바느질솜씨가 놀라웠습니다
저고리 동정도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오래된 사찰의 불상속에서 진귀한 자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래된 불상만 뒤지는 문화재 도굴범들도 있다고 합니다
벽송사
6.25 때 빨치산들의 야전병원 이었던 절입니다
그바람에 토벌대에의해 완전히 소실되는 아품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당시 야전병원 의사들은 경성의전 (지금의 서울대의대)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호남지역 굴지의 재벌사위도 벽송사에 있다가 전남 도당위원장
박영발의 주치의로 반야봉 폭포수골 위에서 토벌대에 사살 되었다고 합니다
(넌픽션소설 남부군과 빨치산의딸 등에도수록)
벽송사 목장승
목장승 설명판
벽송사 서암정사
서암정사 석굴법당 앞입니다
주지스님이 바위를 정으로 수십년간 다듬고 바깥쪽 일부는 큰바위와
큰돌로 마무리한 완전히 바위속의 법당입니다
뱀사골 산채식당
맛있는 산채정식 입니다
파전과 버섯국등 몇가지 덜나온 상태입니다
모두들 맛있다고 칭찬하며 좋아했습니다
7 - 8 년전 폭설로인해 지리산이 통제 되었을때 눈때문에 버스가 못다녀서
인월까지 30리를 걸어가던중 농협에 회의가던 산채식당 주인인 최성영 사장님을
만나서 인월까지 차를타고 간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에 최사장님은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후부터 산채식당의 단골이 되었고 홍보를 해주고 있습니다
( 뱀사골 지리산 산채식당 : 063 - 625 - 9670 )
와운마을 천년송
구름도 누웠다가 간다고해서 와운마을 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저 할머니 소나무는 둘레가 어른손으로 3아름이 넘는 큰소나무 입니다
천년송 설명판
앞쪽은 할머니 소나무이고 뒤쪽은 할아버지 소나무인데
할아버지 소나무는 할머니 소나무보다 훨씬 적습니다
와운마을 전경
6.25 때는 8가구 였는데 지금은 22가구 라고합니다
지난 2월초에 이마을에 한집에 4대가 살고있는 모습이 KBS
인간극장에 방영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좋은 버섯이나 좋은 산나물을 채취해도 교통이 불편해서
팔아먹지도 못하고 산나물에 보리밥과 감자와 고구마만 먹으며
가난하게 살았으나 지금은 아주 부자동내가 되었습니다
고사리등 여러가지 산나물과 고로쇠물을 택배로 팔기에 좋은집에
좋은차들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심원마을
차를타고 하늘아래 첫동내라는 심원마을 내려갔다가 올라왔습니다
지리산 국립공원 남부사무소 관할에서 유일하게 산속에 있는마을 이라고합니다
원래는 4가구였는데 계곡이좋고 물이좋아서 사람들이 많이찾아 오는덕에
지금은 20가구라고 합니다
민박과 토종닭 판매등 장사가 잘되어서 비싸게 땅을사서 장사를하고 사는데
6 -7 년 전부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철수하라고 졸라데니 땅값이 뚝떨어지고
매매도 안되기에 목돈들여 장사하던 사람들이 큰손해가나고 전전긍긍 한다고 합니다
한창때는 1년에 40000명 가까이오던 관광객이 요즈음은 5000 명정도 온다고 합니다
(70대의 마을이장님이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25년전에 150만원주고 땅을사서 2-3년만에 10몇억에 팔아먹은 구례사람만 노났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못찍었기에 다른 산행기에서 찾아왔습니다
성삼재
지리산 노고단에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사람은 공짜로 들어가지만 주차비는 서울과 거의 비슷합니다
죄측 아래로 큰주차장이 3개나 있기에 관리공단도 큰돈을 벌고있습니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성씨가 각각다른 장군3명이 달궁의 왕궁을 경비 하기위해
이곳에 주둔 하였기에 그때부터 성삼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늘아래 첫동내에서 남원으로 가는길의 정령치는 정씨성을갖은
장군이 주둔하였기에 지금도 정령치 입니다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우리나라 절중에서 가장 욕을 많이먹는 절입니다
구례에서 버스를타고 성삼재로 올라가는 사람들중 좌측에앉은 사람만
저 일주문을 반절쯤 볼수있는데 무조건 1600원씩 버스에 올라와서
강제로 징수 해갑니다
천은사의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말입니다
배낭메고 지리산에 올라가기에 바쁜데 누가 버스에서 내려서 저 천은사에
들어가서 무슨 문화재를 관람한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항의하고 전화하고 인터넷에서 별짓을 다해도 아무소용 없습니다
종교권력이 참으로 대단 하기도 합니다
조계종 에서는 묵묵부답 이라고 합니다
지난달에 광주고법에서 1600원 강제징수는 무효라고 판결이 났으나
천은사측 변호사가 대법원에 항소를 했다고 합니다
금년들어서 2월말까지 경찰 순찰차가 50번넘게 출동했다고 합니다
천은사와 가까운 거리에있는 화엄사는 입장료를 3500원 받아도 모두들
이해하고 그러려니 하지만 노선 버스를타고 지나가는데 돈을 받는것은
천은사 스님들이 중생구제보다 돈맛을 알아버린것 같습니다
이렇게 버는돈이 한해에 5 - 6억원쯤 된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에서 문화재관리 유지비를 매년주는데 자기땅을 지나간다고
돈을 강제로 받는것은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김선달보다 한수 위인것 같습니다
천은사 경내
몇년전봄에 고향동생 정한영과 바래봉을 구경하고 오느라 17:00 시넘어서 와보니
젊은스님이 북을 기막히게 잘치기에 끝날때까지 넋을놓고 본일이 있었습니다
화엄사
화엄사 각황전
목조2층 건물로 보물급 문화재로 방염처리된 건축물 이라고 합니다
무슨 보수공사를 하는모양 입니다
큰절인 화엄사와 쌍계사는 몇년을두고 1년 내내 불사를 하고있습니다
문수사 반달곰
큰곰 2마리와 중간곰 3마리가 있었습니다
곰우리 지하에서 잠자던곰이 사람소리가니 5마리가 모두나와서 먹을것을
달라고 응얼 거렸습니다
곰에게 먹을것을 사줄려면 종을치라고 쓰여있어서 종을 두세번씩 몇차례치니
쉬고있던 스님이 나오셨습니다
두근이 조카가 20000원주니 냉동된 조고만 사과를 4개를 주었습니다
곰이 5마리니 더달라고해서 한개씩 먹였습니다
곰들은 앞발로 사과를 붑잡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곰들이 먹이를 달라고 응얼 거리는데 사과를 안사줄수가 없었습니다
2004년에 우리부부가 왔을때는 큰곰만 2마리 였는데 그이듬해 근100 kg 나가는
숫놈이 우리를 부수고 산으로 도망 갔었습니다
새금도 안내는 문수사에서는 곰을찾을 생각도 안하고 곰을 잡아다주 는것은
나라에서 하는일 이라며 나몰라라 했다고 합니다
그바람에 국립공원 관리공단 곰사육 관리팀과 구례군 경찰서 예비군들만 혼났다고 합니다
결국은 관리공단에서 며칠을 고생하여 마취총으로 곰을잡아서 힘들게 실어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민간사육자가 관리소홀로 그랬드라면 큰곤욕을 치루었을 것인데 문수사 에서는
막강한 종교권력덕에 신경도 안썼다고 합니다
문수사 대웅전
운조루
구례군 토지면 에있습니다
운조루 설명판
타인능해
타인능해 설명판
피아골 가는길
잘조성된 녹차밭 입니다
녹차밭이 많은 하동과 인접하고 있기에 구례쪽에도 저런곳이 많이 있습니다
피아골 종점
저곳에서 등산로를 따라서 3시간쯤가면 피아골 산장이 나옵니다
6.25 때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이 빨치산들의 전공치하와 훈장수여등
행사를할때는 주로 피아골에서 하였다고 합니다
토벌대로부터 탈출로가 잘발달 되어있고 방어 경계하기도 좋은 위치여서
항상 피아골에서 행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풍체좋고 잘생긴 이현상은 피아골 인근주민 들에게 악수를 하면서
곧 좋은 세상이올것 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피아골에는 이현상과 악수를 나누었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러명 살아 계신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정치보위부 문화공작 대원이든 최순희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빨치산 들에게 러시아식 포크땐스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80대 후반인 최순희 할머니는 결혼도 안하고 살았으며 몇년전까지
음력 9.9.에는 노고단과 치밭목등 지리산 곳곳을 돌면서 자정넘은
시간에 빨치산들의 제사를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잘준비한 제물을 운반하는 삯꾼을 2-3명씩 대동하였고 언제나
커피를 큰주전자에 가득 끓여갖고 어려서 죽어버린 젊은 빨치산들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000 아 XXX 야 커피갖고왔다" 했다고 합니다 ( 최화수 지리산365일)
연곡사
토지 소설에는 악양 평사리에서 이곳에 불공 드리러온 최치수의 어머니를
동학군의 장군인 김00가 겁탈하여 구천이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절에서자라 청년이된 구천이는 어느날 생모의집에 머슴으로 들어와서 살다가
형수인 별당마님과 눈이맞아 둘이서 지리산으로 도망가고 서희아버지
최치수는 성이다른 한뱃속 에서나온 구천이를 찾아서 엽총으로 쏴죽인다고
강포수를 데리고 지리산 골짜기를 헤메고 다녔습니다
연곡사 설명판
연곡사 해우소
내가본 지리산 사찰암자 들중에서 가장 품위있고 멋있해우소 입니다
다른 해우소에비해 깊기도하고 용변후 여러가지 낙옆을 뿌리기에 냄새도 덜났습니다
쌍계사
신라 문성왕때 최치원 (857년생 사망은?) 이 지팡이로 쓴글 이라고 합니다
주차장에서 1km 이상을 올라가야하고 다른곳을 구경해야 하기에 타협후
쌍계사는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은 다른 산행기에서 찍었습니다
칠불사
아자방
칠불사 아자방 설명판
과학적으로 구들을 두껍게 잘 만들었기에 장작불을 하루종일 때놓으면
겨울에도 방이 보름씩따뜻 하다고하니 믿어도 될런지 궁금합니다
칠불사 대웅전
화개장터 다리들
앞쪽 다리는 하동 - 구례간 벚꽃길인 19번도로의 다리고 뒷편 아치형 다리는
하동 화개면과 광양 다압면을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앞에 보이는 강은 섬진강 입니다
화개장터
오늘이 장날인지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옥수수 작은쥐포 올계쌀을 사서 새참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최참판댁 별채
소설 토지에서 서희와 엄마가 살았던 별채입니다
서희와 길상이가 놀았던 연못이네요
최참판댁 문간채
하동군에서 2000년초에 20몇억을 들여서 박경리의소설 토지속의
최참판댁을 만들어 놨는데 아주 큰힛트를 쳤다고 합니다
입장료 수입과 인근주민들의 각종토산품등 판매수익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토지 드라마 쎗트장도 기름기가 번드름해 보였습니다
꽃샘추위로 좀쌀쌀 한데도 관람객이 아주 많았습니다
매화
산위에는 눈이쌓여 있어도 양지쪽에는 매화가 꽃망을을 터트리기 시작 했습니다
평사리들판 부부 소나무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들판의 유명한 부부 소나무 입니다
인터넷덕에 미국 독일 캐나다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소나무라고 합니다
멀리서보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비올때 눈올때 달밤에 안개 끼었을때등 저소나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해서 상을탄 사람이 셀수없이 많다고 합니다
조금있으면 저소나무 주위의 논에서는 자운영꽃이 만발합니다
하동군에서 논주인들과 타협하여서 매년 장관을 아루고 있습니다
여여식장
하동에서 재첩국을 제일로 맛있게 잘하는 如如식당 입니다
늦은점심을 아주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하기에 입금하면 택배로도 보내준다고 합니다
하동 한전앞 있습니다
( 여여식당 : 055 - 884- 0080 )
내원사
지금도 나무로 밥을짓는 조고만 절입니다
우측은 장당골이고 좌측은 안내원마을 입니다
우측의 장당골은 가을이면 각종 단풍이 아주 아름다운곳 입니다
좌측으로 6km 들어가는 안내원 마을은 지리산에서도
오지중의 오지로써 삼복 더위에도 솜이불을 덮고자는곳 입니다
안내원마을 에서는지리산에서 제일로 마지막까지 숨어다니던
이홍희와 정순덕이 일망타진된곳 이기도 합니다
이홍희 : 남 31년생 산청 삼장면 홍계리 출생 미혼
정순덕 : 여 31년생 산청 삼장면 내원리 츨생 결혼 (남편 성석근 50년 토벌대에 사살)
정순덕은 안내원 마을에서 태어나 16세때 한살 더먹은 아랫동내 성석근과 결혼
시어머니가 없어서 시동생들을 잘기르며 키가큰 남편과도 금슬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듬해 6.25 가나자 여순반란사건의 14연대 좌익군인들과 삼장면의 빨치산들이
남편 성석근을 강제로 산으로데려 갔다고 했습니다
삼장 지서에서 날마다 정순덕을 불러들여서 때리고 협박하여서 남편을 찾아서
입산 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깊은산속 빨치산 취사장에서 남편을 단한번 잠시 만난후 동생들 소식만 전해준뒤
두달후 남편은 토벌대와 교전중에 사망 하였다고 합니다
화가난 정순덕도 다른여자 빨치산들처럼 칼빈총으로 사격연습 하면서 전투하는
여자전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군경 토벌대와 수백번의 교전을 하였다고 합니다
53.7.27.휴전후에도 산에서만난 이홍희 이은조(이북출신 아버지뻘 인테리 간부빨치산
62년 겨울에 선녀굴에서 사찰유격대와 마천지서 순경팀에 사살됨) 등 3명이 한조가 되어서
지리산 곳곳과 함양 백운산 황석산 거망산 금원산 황매산 일대를 전전 하다가
63.11.12.자기 고향마을 안내원에 내려와서 생활필수품을 받아 가려다가
정보를 입수하고 2주째 뒷집에서 잠복중인 삼장지서 지서주임과 순경에게
이홍희는 사살되고 정순덕은 허벅다리에 관통상을입고 붙잡혔습니다
그다음날 저녁에 정순덕은 산청보건소에서 손발을 꽁꽁묶인체 나무자르는
톱으로 마취약이 없어서 마취도 안하고 허벅다리를 잘랐다고 합니다
그후 재판에서 사형 - 무기 - 23년복역후
85년도에 출소하여 가죽공장 이이스크림공장 가구공장 양복걸이 공장등을
전전하다가 좌익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인천에서 살다가 2004년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묘소는 좌익성향의 스님이 주지인 파주 광탄면 영장리 보광사에 있는데 몇년전에
H I D 회원들이 빨치산들이 무슨 열사냐며 묘비를 함마로 부수기도 했습니다
정순덕과 이홍희는 63.11.까지 산속에서 숨어다니면서 값나가는 송이와 석이 버섯과
고사리 취나물등 산나물을 채취해서 말렸다가 빨치산 출신이나 친척들을 협박하여
옷 운동화등 생활필수품과 물물교환을 하였고 자기들말을 안듣는다고 칼과 칼빈총으로
8명을 무자비하게 살인한 살인마들 이기도 합니다
정순덕은 임신도 여러번 하여서 자연유산이 되었다고 하였지만 빨치산 세포를 통하여
아기없는집에 두서넛은 주었을것 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정순덕을 망실 공비라고 불렀으나
북한에서는 지리산의 여장군이라고 부르며 평양에 정순덕의 가묘가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내원사 삼층석탑
장당골 입구인 이곳에서는 6.25 때 전투가 아주 치열했던곳 이기에
삼층석탑은 사방에 소총과 중화기에 맞은흔적이 아주 많았습니다
삼층석탑 설명판
대원사
대원사는 여승들만있는 큰절이고 강원도있는 큰절입니다
천왕봉에서 치밭목을 거쳐서 대원사앞을 지나다보면 저녁 공양을마친
여승들이 운동겸 산책을 하는것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산청 단성면이 고향인 성철스님이 처음으로 출가한곳이 이곳 대원사라고 합니다
그당시에는 남자 스님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웅전앞
대웅전에서 약소한 시주를하고 부처님께 절을하고 나오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스님이 외국인 여자들에게 유창한 영어로 무엇인가 설명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복장으로 보아서 템플스테이 온것같아 보였습니다
이사진은 스님께 양해를 드리고 촬영 하였습니다
밤머리재 간이매점
웅석봉 동부능선 덕산쪽으로 다니면서 이곳에서 커피나 팥빙수도 사먹는곳 입니다
동부능선 산행과 태극종주할때 이곳 매점주인인 권영진님의 화물차에서 침낭펴고
잠도 두차례 잔일이 있습니다
우리차에있는 귤을10여개 비닐봉지에 담아갖고 저곳에 갔으나 문이 잠겼기에 서운했습니다
저곳주인 권영진님은 지리산 태극종주등 장거리 산행을하는 사람들에게 밥도해주고
여러가지 약품 건전지등 산행에 필요한 물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J3클럽과 태달사등 전국의 장거리 산행팀들과는 아주 절친한 사이입니다
밤머리재는 대원사에서 산청읍에 이르는 아주높은 고개입니다
필봉과 왕산
밤머리재에서 산청으로 내려오다본 뾰쪽한 필봉과 왕산 입니다
왕산밑에는 유의태 약수터가있고 그아래에는 가락국 10대왕인
구형왕릉이 있습니다
구형왕릉
왕산자락 유의태약수터 밑에있는 구형왕릉 입니다
삼국시대전 아주 오래되고 기록이 없기에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왕릉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보물이 있을까 보아서 일본인이 인부를사서 돌을몇개 걷어내니
갑자기 천둥이치고 소나기가 내리면서 인부가 벼락맞아서 죽었다고합니다
기골이 장대한 일본인은 그날 벼락칠때 말에서 떨어져서 크게다쳐서 골골하다가
며칠만에 죽었기에 그후로는 아무도 왕릉을 도굴할 생각을 안는다고 합니다.
( 사진 : 영원한리더 전주 이영진님 )
|
첫댓글 참 좋은 여행 하셨네요~
자세한 설명과함께한 사진도 잘봤습니다~~
총무님 항상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반송님 반갑습니다
항상 건강 하세요.
참 자세하게도 기록하셨네요~
이런여행을 함께하는 문중~~~ 한편으론 무척 부럽군요...
잘 보았구요... 건강하세요~
명수동생 반갑네
손주가 자네를 알아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