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신수진
밤의 카드게임 외
어둠이 어둠을 부르기 시작했다
개시라는 소리가 들렸다
제각기 방마다 불이 켜진다
빛을 망각할까봐 빛을
잠시 꺼내보았다
카드를 뒤집고 이것은 냉정이다
믿고 싶지 않다 잠시 잊어본다
패에는 갖가지 꿈이 배분되고
히든카드를 들키지 않으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밤이라는 치부책을 펼쳐보았다
검은 종이에 적힌 흰 글자는
초승달로 긁어놓은 자국이다
장막을 닮은 사람들은
칙칙한 불빛 속에서 동화되어 간다
절망은 뿌옇게 방 안을 메운다
돌아가며 판돈을 먹는다
그것이 그들의 규칙인 듯
새벽이 가까워지면
약속한 듯 게임을 마친다
가로등이 뚜렷해지는
안개 속에서 터벅거리는 걸음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뱉었나
한바탕 잘 놀다가는 일
그걸로 족한 게임
실컷 날린 돈은 허공에서 찢어진다
소쩍새들이 분주히 나르는 쥐처럼
살아있음은 거대한 쥐덫이다
카드게임을 멈출 수 없다
덫에 걸린 쥐는 발버둥치며
굶어 죽어갈 수밖에 없다
세상의 치부책은
달빛으로 적어놓은
밤의 역사를 기억한다
치부책은 어둠이 어둠을 부르기 전에
어둠아 도망가라 말한다
어둠이 소쩍새가 되기 전에
어둠아 쥐덫을 피해 멀리 멀리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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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쇼
그가 나오고 있었다
번쩍 든 얼굴로
환하게
치즈, 스마일, 김치
그는 화면을 들고 나왔다, 쇼호스트의 얼굴은 밝다, 엄마를 찾는 아빠, 아빠는 검다, 텔레비전을 틀지 않았어, 누가 나올까, 어떤 채널이 웃고 있을까, 할리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들리고, 저 배기통 소리, 커다랗게 빵빵거리며 시시껄렁하게 웃고 있을 할리 아저씨, 데이비슨이라는 별명을 빼도 좋을까, 어떤 것이라도 그의 얼굴처럼 밝지 않다, 화면을 켜면 그는 간장게장도 팔고, 폴로 티셔츠도 팔고, 냉장고도 팔았다, 모든 걸 팔아도 다 매진시킬 수 있어, 황제는 진실을 팔지 않는데
금이라는 것과 돌이라는 것이 놓인 저울대에서 우리는 그쪽으로 손이 갈 뿐이다, 그는 돌을 황금으로 팔고 있는 걸까, 그가 시간이 없다며 손목시계를 두드리고 저 시계 가짜같아, 누군가 돌을 던지듯 말해봤을까, 치즈 김치 볶음밥 밀키트를 사고자 이리저리 핸드폰을 둘러본다, 아 고장난 것은 저 홈쇼핑 방송국일까
브이를 해도 좋으니, 사진이나 찍자, 흠칫 고장난 사람이 된다, 얼굴이 뒤틀리고 일그러졌는데, 사진 잘 나왔네, 넌지시 던지는 말, 트루먼은 평생 잘 나온 채로 살겠어, 동창생이 오래전부터 연예인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더 환해보이지는 않는데, 저정도면 실물은
창문에 비친 것들이 신기루 같아서, 오늘도 실물없는 삶을 산다, 골목마다 CCTV는 잘 있는 걸까, 누군가 문자로 사진을 보냈을 때, 어떤 것이라도 칭찬해주곤 했다, 참 시끄러운 배달기사의 오토바이 소리, 정말 그것이라도,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가고 있다
더 크게 내지르며
화면에 나오는 정치인처럼
손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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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1989년 출생으로 2023년 《시와사람》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청주무시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