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고디바(Godiva)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대부분에게는 낯선 이름일 테고 간혹 유명 초콜릿 브랜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있겠다. 정확하게 고디바는 11세기 영국의 백작 부인 이름이다. 초콜릿으로 유명해진 것은 벨기에의 초콜릿 회사가 자기네 브랜드로 삼았기 때문인데 그만큼 의미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초콜릿 회사 브랜드로 ‘고디바’ 사용 고디바는 도대체 어떤 여자였을까? 진정한 숙녀, 문자 그대로 레이디(Lady)의 표본이라고 칭송받는 여자다. 레이디에서 떠오르는 이미지, 정숙한 요조숙녀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고디바의 남편은 중세 영국의 레오프릭 백작으로 자신의 영지를 빌려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지나친 세금을 부과해 소작농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 고디바 부인이 농민을 동정해 남편에게 세금을 줄이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부인의 끝없는 간청에 귀찮아진 백작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부인이 알몸으로 말을 탄 채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줄여 주겠다는 것이다. 거절할 줄 알았던 부인이 선뜻 남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에게 모두 창문을 닫고 집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 후 긴 머리카락으로 알몸을 가린 채 나체로 마을을 돌아다녔다. 남편은 약속대로 세금을 크게 줄여 주었고 고디바는 진정한 ‘레이디’의 표상으로 마을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참고로 고디바 부인이 나체로 마을을 지날 때 톰이라는 청년 단 한 명만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창틈으로 부인의 알몸을 훔쳐봤다. 학생 때 배운 ‘(톰이) 몰래 훔쳐보다(Peeping Tom)’라는 영어 숙어가 여기서 비롯됐다. 그런데 고디바 부인을 진정한 레이디의 모델이라고 하는데 레이디의 참뜻은 무엇일까? 레이디는 우리말로 보통 숙녀라고 번역하지만 원뜻은 높은 신분의 귀부인을 가리킬 때 사용했던 단어다. 지도자, 영주, 귀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로드(Lord)의 부인이 레이디로 그중에서도 첫째가는 귀부인이 퍼스트 레이디, 다시 말해 대통령 부인이다. 여기까지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이고 레이디의 원래 뜻은 엉뚱하게도 빵 만드는 여자라는 의미였다. 어원은 고대 영어인 흘라프디게(Hlafdige)로 ‘흘라프’는 빵, 음식이라는 뜻이고 ‘디게’는 일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빵 만드는 여자가 왜 귀부인이 됐을까? 레이디의 남편인 지도자 ‘로드’와 관련이 있다. 지도자, 귀족, 영주라는 뜻의 이 단어 역시 고대 영어 흘라프베아르드(Hlafweard)에서 나왔다. 흘라프는 앞서 말한 것처럼 빵이고 베아르드는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지도자는 곧 빵을 지키는 사람이다. 정리하자면 부하들이, 백성들이 먹을 빵을 만들고 지켰다가 계급에 따라 공평하게 나눠주는 사람이 곧 지도자 부부였던 것이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첫째도, 둘째도 백성을 굶기지 않고 배불리 먹이는 일이다. 고디바 부인이 진정한 ‘레이디’의 표본으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성을 굶기지 않고 풍족하게 먹여야 진정한 지도자라는 사상은 서양과 동양이 모두 마찬가지다. 기원전 202년, 진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한고조 유방도 백성의 양식을 우선 챙겼기에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중국 유방도 식량창고 확보해 천하통일 유방을 도와 한나라의 기틀을 다진 인물 중에 역이기라는 신하가 있었다. 유방이 형양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다가 항우의 공격을 받았다. 유방은 군사를 물려 낙양까지 철수한 후 방어망을 구축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역이기가 단걸음에 유방에게 달려와 조언을 했다. “옛날 말에 하늘의 뜻을 아는 자만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王者以民爲天),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民人以食爲天)고 했는데 형양에서 멀지 않은 오창은 식량 수송의 요충지이며 저장해 놓은 군량미도 풍부한 곳입니다. 항우가 오창을 놔두고 형양을 공격한 것은 하늘의 뜻을 모르는 것으로 하늘이 그 양식을 항우가 아닌 주공에게 주겠다는 뜻입니다.” 역이기가 계속해서 유방을 설득했다. “천하 백성들은 아직 마음을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주공은 하루속히 군사를 일으켜 오창의 식량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창을 얻어 굳건히 지킨다면 천하정세를 관망하던 제후와 백성들이 모두 어느 편에 서야 할지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역이기의 말을 들은 유방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군사를 동원해 오창을 공격해 식량을 확보했다. 이후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유방이 천하를 통일해 한나라를 세운 후 한고조가 됐고 한나라 군사에 포위당한 항우는 애첩 우희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도자 부부를 뜻하는 영어 단어 ‘로드(Lord)’와 ‘레이디(Lady)’는 단지 조상을 잘 만났기 때문에 귀족이 되고 귀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단어의 원래 뜻처럼, 그리고 레이디 고디바처럼 조직 구성원을 보살피는 것이 지도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