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하시고 때가 되면 부르시는 하나님!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5,26)
비전의 사람은 또 무엇을 확신해야 합니까? 준비하시고 때가 되면 부르시는 하나님, 즉 하나님은 비전의 사람을 위해 준비하시고 때가 되면 부르시는 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울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그가 주도 했던 스데반 순교의 피를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즉 이 일을 계기로 복음이 확산되게 하시고 최초의 이방인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사울을 이 곳으로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스데반 순교를 주도했던 그가 오히려 스데반 순교의 수혜자가 되다니 말입니다.
사실 사울은 예루살렘 방문 이후 수리아를 거쳐서 길리기아 다소로 보내졌는데,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행9:30)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나 제자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힌 듯 했습니다. 이 때까지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로 말미암아 전혀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준비하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부르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어찌 할 수 있었습니까? 그의 고향 다소에서 묵묵히 복음을 전파하면서 후일을 기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다 넓은 무대로 옮겨주실 때까지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사람들에게 잊힌 것 같아서 서운해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 같아서 절망스럽습니까? 그런 생각들일랑 버리고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 날까지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기 바랍니다.
안디옥 지역의 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자, 예루살렘 교회는 누구를 그곳으로 파송해서 교회 설립을 돕게 했습니까? 바나바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22절) 그리고 이 같은 결정은 무엇으로써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입증되었습니까? 그 결과입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23,24절)
그러나 바나바 혼자서는 무리였습니다. 집중적으로 제자훈련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때 바나바는 이 일의 적임자로써 누구를 떠올렸습니까? 얼마 전에 자신이 사도들에게 천거했던 사울입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행9:27)
그래서 바나바는 어떻게 했습니까? 다소에까지 직접 가서 사울을 데리고 왔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25,26절) 함께 얼마동안 집중적으로 제자들을 양육했습니까? 1년입니다.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26절 중)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절 하)
당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유대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들의 수효가 급증하게 되자, 마침 이들을 통칭할 만한 명칭이 필요했는데,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채택된 것입니다. 물론 이 명칭은 애초에는 외부사람들에 의해 명명된 ‘예수쟁이’ 같은 비난조의 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에까지 성도들을 일컫는 대표적 명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26:28) /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후4:16)
한편, 사울은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① 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즉 이전까지는 주로 단독으로 움직였다면 이후부터는 팀 사역의 유용성을 깨닫게 하시고 팀으로 움직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도,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13:1) 그의 모든 전도여행 중에서도 말입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 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행13:4,5) /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의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15:40,41)
② 제자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제자들을 양육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안디옥(26절)을 비롯해 고린도(행18:7-11), 에베소(행19:9,10) 등지에서 적게는 일 년, 많게는 삼 년 가까이 집중적으로 제자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행18:11) /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애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19:9,10)
③ 체계적으로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즉 안디옥 교회를 이방선교를 위한 전초기지로 삼고, 1차(구브로, 밤빌리아, 비시디아, 갈라디아 등), 2차(마게도냐와 아가야 등), 3차(소아시아 등), 4차(로마) 전도여행을 통해 체계적으로 복음을 확신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에 일일이 개입하시고 주장하셨지만 말입니다(행16:6-10).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고 때가 되면 부르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물론 그 이전이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작은 일들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최선의 준비는 곧 맡은 바 일에 열심 하는 것임을 명심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