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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0일 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복된 화요일 아침이 시작 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더운 열기가 많이 물러나간 느낌을 갖습니다.
-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 열심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허물이 되고 죄가 되므로 그 열심과 열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음을 기억합시다.
- 원치 않는 환경이지만, 어렵다고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힘과 능력이 함께 하심을 믿고, 힘차게 달려가는 복 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역대상 13장 1- 8절 }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2.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4. 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5.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7.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 제 목 ◑◑◑◑
◗◗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과정과 사고
◑◑◑본문 이해와 요약 ◑◑◑
◗ 13장에서는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통일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 첫 번째 숙원 사업으로 법궤 이동을 계획했습니다.
- 그 동안 이 법궤는 예루살렘에서 40리가량이나 떨어져 있는 기럇여아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중대한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 회의를 소집한 다윗은 먼저 군사 관계 지도자들을 모아 법궤 옮기는 문제를 의논하게 되었는데, 그는 법궤 이동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 하지 않고 백성의 뜻을 묻고 수렴하는 정치적 지도력을 보였던 것입니다.
- 다윗은 온 백성 앞에 법궤 이동을 제안하면서 법궤를 소홀히 했던 지난 시대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옮겨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기에 다윗은 법궤 이동을 계획하고 이를 백성에게 제안함으로써 좋은 신앙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 그런데 놀랍게도 언약의 법궤를 실은 수레 행렬을 쫓으며, 힘을 다하여 춤추고 뛰놀았습니다.
- 법궤를 옮기는 수레의 행렬이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 소들이 뛰므로 수레를 몰던 웃사가 급히 손을 뻗어 법궤를 붙잡았는데, 경황없이 붙잡은 실수 때문에 웃사는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이 명하신 규례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부른 법궤 이동 사업을 계속 진행시키기를 두려워했던 것이며, 그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옴으로써 그 자신에게도 진노가 임할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수한 열정과 기쁨으로 착수했던 법궤의 예루살렘 운반은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고 법궤이동에 대한 기본 상식을 파악하지 못한 실수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 그래서 예루살렘으로의 운반이 중지 된 법궤는 스스로 자원한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 오벧에돔은 레위족의 거주지인 가드림몬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레위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는 베레스 웃사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법궤를 그의 집안에 안치하는 일에 위험을 감수하고 모셔 들이기로 동의했던 것입니다.
- 법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되어 석 달 즉 약100일 동안 그의 권속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안과 소유에 많은 축복을 베푸셨으니 오벧에돔의 축복을 지켜보았던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새롭게 법궤 이동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사무엘하 6장1-11절에 기록 된 내용과 동일하지만, 그 문맥상의 위치가 조금 다르고, 내용면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기록 되었습니다.
- 다윗이 통일 왕국이 결성 된 직후에 제일 먼저 숙원 사업이었던 언약궤를 옮기는 기사를 기록한 이유는 신정 국가의 면모를 분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 이스라엘 장로들에 의해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다윗이 왕위에 오른 그가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려는 시도를 했던 것과 법궤 운반 도중에 일어났던 불상사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궤에 대한 다윗의 태도를 통해 그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애썼는가를 잘 알 수 있으며, 이러한 다윗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당연한 것입니다.
-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잘 듣고, 잘 배워서 말씀대로 적용하는 것이,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오늘을 사는 성도들도 다윗처럼, 하나님 제일주의와 말씀중심으로 살아야 형통한 삶을 허락시고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말씀 따라 행함이 안전하다. (역대상13장7,8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므로 말씀 따라 행함이 안전합니다.
➩ 7-8절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다윗은 숙원 사업이었던 일인데, 마침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언약궤를 운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다윗은 자신이 준비한 새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언약궤를 보관하고 있던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히오를 운반 책임자로 임명하여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리고 찬양대를 조직하여 자신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각종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여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 이 자체만 본다면, 언약궤 운반 모습은 참으로 기쁘고 가슴 벅차며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언약궤 운반함에 있어서 사전 상식이 전혀 없었기에 하나님의 규례에 맞지 않는 운반이 시작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언약궤 운반 규례에 의하면, 언약궤는 오직 레위인 가운데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어 운반해야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5장 14-15절에서 “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민수기3장30-32절에서“ 웃시엘의 아들 엘리사반은 고핫 사람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의 지휘관이 될 것이며 그들이 맡을 것은 증거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들과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 쓰는 기구들과 휘장과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레위인의 지휘관들의 어른이 되고 또 성소를 맡을 자를 통할할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는 단순하게 열정만 앞선 나머지 하나님의 규례에 주의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실수를 통해서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죄 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이처럼 실수할 가능성을 늘 갖고 있습니다.
- 그래서 때로는 감정에 이끌려 실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지로 인해 실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 본문의 다윗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늘 신앙적으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 그래서 잘 준비한다고 하였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말씀을 어기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을 보면, 이런 실수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 우리는 이 사실을 다윗 왕 이외의 다른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의 대를 이을 이삭까지도 바치는 신앙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벗이라고까지 칭함을 받았습니다.
- 야고보2장23절에서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 하지만 이런 아브라함조차도 하나님이 주신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창 12장).
- 그리고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는 어떻습니까?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영웅이었고, 그를 하나님과 대면하던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34장10절에서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지만 그는 므리바에서 저지른 분노의 실수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바라보는데 만족해야 했던 것입니다.
-민수기27장12- 14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이처럼 사람의 속에 있는 간사한 죄 성은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조차도 실수하게 만들었습니다.
- 에베소2장 3절에서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런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더군다나 오늘날은 죄에 대해 실수하기 쉽도록 모든 환경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 눈만 돌리면 음란과 쾌락이 우리를 유혹하고 부정과 부패가 우리의 눈을 가리 웁니다.
- 우리 안에 있는 죄성도 다스리기가 어려워 실수하는데, 환경까지 이러하니 우리가 죄에 대해 아무리 경계하고 조심한다고 해도 실수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살고 싶어도, 또한 죄에 대해 실수하지 않으려 해도 스스로는 범죄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 물론 이는 우리는 실수할 수밖에 없고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실수와 범죄에 대하여 자신을 합리화시키라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 이는 다만 인간의 연약한 한계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예레미야17장9절에서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자만하지 말고, 더욱 조심함으로 실수와 범죄의 가능성을 줄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아울러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부지중에 실수하고 죄와 허물을 묻어두지 말고 철저히 회개하며 겸손히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나는 나의 허물과 죄와 연약함 가운데서 결코 헤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항상 인정해야 합니다.
- 잠언 20장9절에서 “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 무엇보다 내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외형적인 열심이나 감정에만 치우쳐 행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부분은 없는지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살핀 다음에 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열심과 열정이 말씀 앞에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과 칭송에 들뜬 분위기에서 말씀을 잠재우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습은 아닌지? 또한 혹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서 이런 모습을 본다면, 나는 어떤 자세로 주를 섬길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회개는 용납하지만, 죄는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발에 등불처럼 앞에 두고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 열심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허물이 되고 죄가 되므로 그 열심과 열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 또한 나 자신들에게도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해가 될 뿐이므로 말씀 묵상으로 나의 삶을 돌아보고, 죄와 허물을 덥고 갈 것이 아니라, 더렵혀진 마음 그릇을 완전히 쏟아 내고, 깨끗하게 새로이 씻음 받아서 귀하게 쓰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받는 것을 기대합시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을 내되, 혹 실수하며 죄와 허물이 되는 것은 항상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하고, 그 수고함이 보람되고 그 열심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돌아오게 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