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길을 걷고 또, 한 길을 걸어]의 앞표지(좌)와 속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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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을 걷고 또, 한 길을 걸어]
한정찬 시집 / 제17시집 / 월간 소방문학(2015.08.27) / 값 비매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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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美學. 70
- 왕피길 1
한정찬
산수가 빼어나서
골 깊고 아름다워
길손들 피로 심신
바람에 풀어놓고
탐욕은 냇물이 씻어냈다
오월 유월 사이로
실록이 우거져서
초목이 병풍이고
길목에 산양 놀고
물속은 어류세상
한가론
이색의 별천지를
여기 두고 말한 듯
우리의 역사 속에
질곡의 한 페이지
이 깊은 왕피길을
가슴에 새겨두자
힘 길러
애국하는 일
잊지 않는 역사관.
▲ 왕피王避길 : 경북 울진군 서면(금강송면능으로 명창 변경)에 소재한 우편도로명으로 정확한 왕은 고증되지 않고 있으나 왕王이 피신避身한 길이라 왕피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詩의 美學. 78
- 유량동 봄
한정찬
연두 빛 피어나는
정겨운 숲속에는
오늘도 산새소리
하루를 열고 있다
지난해
켜켜이 쌓인
묵은 낙엽 밟는다
옅은 봄 일렁이는
골짜기 나무마다
불다가 맴맴 도는
봄바람 우쭐댄다
지난해
접어두고 온
내 게으름 떨군다
꽃구경 봄꽃구경
지천에 핀 들꽃들
그리운 얼굴처럼
솟구쳐 피어났다
지난 해
잊고 온 사람
가슴조려 그린다.
詩의 美學. 86.
- 가소지 연가 2
한정찬
고목된 포도나무
절반을 캐어내어
밭고랑 곱게 내고
연못도 한 곳 팠다
중장비
지나간 흔적
오래된 밭 정갈해
구거에 마구 자란
칡넝쿨 걷어내고
촘촘히 고랑에다
미나리 심고 나니
이른 봄 즐거움 찾아
오고가는 이 기쁨
농막을 짓고 나서
이어 낸 휴게 공간
그 양옆 뜨락에서
자라는 줄기식물
가을 날
가슴 벅차게
주렁주렁 기대돼.
詩의 美學. 105
- 코스모스 2
한정찬
네 삶이 올곧다고
말해서 무엇 하랴
내 목표 바르다고
힘주어 무엇하랴
사는 일
침묵이 외도
같이 살라 하였지
네 갈길 내가 갈길
물어서 새워볼까
네 흔적 내 흔적을
남겨서 세워볼까
사는 일
의문이 외도
같이 살라 하였지
네 영혼 나의 영
즐거움 된다면야
네 배려 나의 배려
사랑이 된다면야
사는 일
복에 겨워도
같이 살라 하였지.
詩의 美學. 70.
- 기도가 그리운 날
한정찬
오늘도 내 마음에
평화를 주는 기도
오늘도 나는 혼자
기도에 간구한다
하느님
보잘 것 없는
내 기도를 보소서
정직과 알뜰함은
높낮이 아니 되길
진실로 용서함은
앞뒤가 아니 되길
평화로
영광이 되게
들꽃처럼 살게요
천박을 드러내는
그런 일 없게 하고
욕심의 어둔 터널
교만의 불안한 삶
기도로
진정 저에게
경건함을 주소서.
생 모래의 辯. 118
- 봄풍경
한정찬
꽃샘에 일어나서
오한에 온몸 떨고
봄 산하 함초롬히
피어난 야생화에
자욱한
안개 휘젓는
경이로운 일이네
불어오는 바람에
구름은 밀려가고
진종일 바다 건넌
황사黃砂도 밀려가고
어느 새
파란 색깔을
선 듯 내준 일이네
지난밤 잠 못 이룬
슬퍼서 모로 누운
하늘의 달과 별들
옆에서 소근대고
차창 밖
가장자리는
아직 차서(寒) 일이네.
생 모래의 辯. 121.
- 시는 밥이 되어야 1
한정찬
한 편 시 한 끼 밥이
한 편 시 한잔 커피
되는 거 아니지만
산술로 하다가는
세 끼 밥
다 챙겨먹고
커피 잔에 졸음 와
한권의 시집 안에
백여 편 시간 앉아
어느 땐 큰 눈 뜨고
제 새끼 잘못 거두는
흥부처럼 닮았나
시가 된 글자들이
배곯아 주저앉아
나더러 주인이라고
다소곳 머문 이때
고마운
디지털시대
정겨워서 눈물 나.
생 모래의 辯. 129
- 유월 2
한정찬
다 못한 삶의 여정
떠도는 한마디 말
헤어져 파란 낙엽
잎새가 되었지만
그리움
흔들릴 때에
아파오는 긴 통증
당신이 떠나간 날
아침 해 저녁노을
아무런 의미 없는
헛것에 불과해서
비워둔
여백의 몫에
온갖 고뇌 보인다
빗줄기 휘몰리는
하오의 이 한 때에
인연의 시작과 끝
비워 둔 여백에서
아직도
잊지 못하는
떠난 그대 그리워.
생 모래의 辯. 147.
- 이 좋은 날에
한정찬
꽃피니 새가 오고
술 익자 자네 왔어
반가워 흘린 눈물
만남은 찡한 거여
친구야
이 좋은 날에
아니 졸지 못하지
꽃 지고 잎이 나니
시원한 훈풍 불어
노동은 신선한 것
아하는 일 실實한 거야
친구야 이 좋은 날에
아니 놀지 못하지
생 모래의 辯. 70.
- 나의 에필로그 7
한정찬
마지막 봉사기회
거창한 명제지만
내색을 적게 하고
기량을 발휘하여
만나는
사람들마다
배품 배려 늘리리
조직은 리더의 몫
교육은 교수수준
제도를 운영하다
긍정의 평가 앞에
씨 뿌려
가꾸고 살펴
알찬 알곡 보리라
편향된 밀린 안아
자생한 정서 언어
웃음 띤 밝은 표정
상대의 마음 열어
긍정에
협조 끌어내
소통의 힘 되도록.
사모곡思母曲 29
― 보실까
한정찬
삼복 때 옆구리에
찬바람 분다하신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쯤 저승에서
아직도
옆구리 시려
이 세상을 보실까
한 세상 일속에서
고달피 지내오신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쯤 저승에서
아직도
일을 못 놓고
이 세상을 보실까
젖은 눈 젖은 마음
애타게 살아오신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쯤 저승에서
아직도
눈물 흘리며
이 자식을 보실까.
사모곡思母曲 29
― 침묵으로
한정찬
삶이란 모여들고
삶이란 도랑처럼
깊었다 얕아지듯
이 세상
사는 동안에
고달프게 사셨어
내 몸이 태어나기
이전에 어머니는
내 전부 아시고도
언제나 침묵으로
쉼표를
물음표처럼
이미 알고 계셨어
노을이 붉게 타듯
아픔을 달고 살다
도시로 나간 자식
그리움 품고 살다
혼자서
아픔보다 큰
외로움을 느꼈어.
사모곡思母曲 34
― 굴렁쇠
한정찬
어머니 못 잊어서
사무쳐 불러보면
위로가 애처롭게
또 다시 방황하고
굴렁쇠
무진장 굴러
일어나는 아픔 맘
감꽃이 피고 지는
오월의 한나절에
마음이 허구하여
휘젓는 내 손등은
오로지
어리광 부린
그리움이 커지고
천개의 이별 안에
한 개로 가두어진
어머니 사랑만은
위대한 동그라미
눈물샘
마를 날 없어
달래보는 목마름.
사모곡思母曲 42
― 잊으셔요
한정찬
생전에 남긴 흔적
몇 점만 반짝이는
어머니 그리우면
무덤에 왈칵 와서
웃자란
잡풀을 뽑고
그만발길 돌려요
서편 말 입구에서
세상사 잊으시고
오가는 길 손보며
한시름 놓으셔요
어머니
망태 꽃 쇠뜨기 풀
뽑고 뽑아 버려요
눈 들어 바라보면
황마로 훤히 트인
해 떠서 해질 때에
하루 또한 지나지만
아무리
세월이 가도
가슴속이 아려요
사모곡思母曲 53
― 사랑으로
한정찬
사랑이 세월처럼
영겁을 흘러가고
눈물이 솟아나고
가슴이 메말라도
저리듯
짠한 그 사랑
사랑으로 섬기리
은혜가 너무 깊어
그 깊이 높이 넓이
셈으로 못하지만
늘 주신 무한 사랑
울먹한
가슴에 담아
사랑으로 섬기리
속 타고 입 마르고
눈시울 적셔져도
내 사는 일생동안
다 못한 지극정성
전율로
몸과 맘 깨워
사랑으로 섬기리.
사부곡思父曲
― 농사일
한정찬
조선 낫 한 자루에
하루가 저물도록
땀으로 뒤범벅 된
그 모습 아련한데
칠팔월
긴긴 시간을
논밭에서 보냈다
매미도 허기지면
울음을 더해가도
더위가 더할수록
땀방울 흘러내려
이쯤은
늘 해온 일상
인내로만 살았다
농작물 타는 가뭄
가슴을 옥죄지만
정성을 다한 돌봄
하늘로 알았는지
해마다
풍요한 알곡
식구들을 먹였다.
사부곡思父曲 31
― 가지를 말리다가
한정찬
포기에 달린 가지
팔보다 더 길쭉해
찬거리 남은 것을
썰어서 말리다가
갑자기
아버지 생각
주렁주렁 열렸다
아버지 이 모습을
보시면 뭐라할까
아직도 마른가지
바람에 흔들리듯
아버지
맑은 영혼이
가지에서 머물까
아버지 그리움에
일부러 남긴 한 텅
내년에 씨앗으로
대물림 해볼 요량
영원은
보장 없지만
사는 동안 약속해.
사부곡思父曲 37
― 아버지 이력
한정찬
손가락 휘어지게
농사일 해온 흔적
아버지 이력서를
한 줄로 요약하면
흙을 파
물도랑 내는
운명이 된 흙과 물
아버지 흙 사랑은
순전히 오해였다
미열과 발열 사이
강우량 사랑으로
위도와
경도 사이를
괭이로 판 인내심
남루를 소각하는
한 해의 그루터기
침묵의 훈장처럼
온 세상 숨을 쉬듯
땅바닥
아버지 이력
소금 같은 강다짐
사부곡思父曲 42
― 한 동안
한정찬
한 동안 목욕탕에
간 일이 참 지났다
아버지 저 세상에
가신 후 그러했다
목욕탕
구석구석에
그때 생각 찼었다
한 동안 방안에서
잠 잔지 참 지났다
아버지 저 세상에
거실에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나았다
한 동안 두문불출
해온 일 당연했다
아버지 저 세상에
가신 후 그러했다
나들이
한다는 일을
사치처럼 여겼다.
사부곡思父曲 48
― 묘원에서
한정찬
여기에 안식중인
아버지 어머니는
내 사는 일생 동안
별동별 되시는 일
날마다
두 손 모아서
감사함을 전하리
예전에 불효한 일
뒤늦게 알았으니
그 불효 세월 속에
무성히 자라남을
날마다
내 허물 지워
반성하며 살리라
정갈히 잘 단장 된
아버지 어머니 집
이승에 이룬 흔적
저 세상 빛이 되어
그 표징
고이 남아서
천년사랑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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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서自序
내게 주어진 한 길은 늘 내 주변에서 머물고 있었고,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노년기를 준비하는 요즘에도 내 주변에서 떠날 줄도 모르고 나와 함께 있다. 당연한 일인가 보다. 이제 ‘한 길을 걷고 또, 한 길을 걸어’볼 일은 쏠쏠한 재미로 승화하는 내 사유思惟의 뜨락에 수다히 피고 지는 들꽃처럼 너무 아름다워 보여 무척 흐뭇하기도 하다.
내게 주어진 한 길은 내 삶의 보자기에 싸서 생활의 묵은 장롱에 넣고 겸손을 인식했을 때는 나는 내가 가장 존경했던 사랑하는 내 아버지 어머니를 이미 닮아 있었다.
한 길을 살아가면서 배려를 조금씩 알아가고 실천하는 요즘에 하늘의 별과 달을 보고 아버지 어머니는 한 해 농사 이야기와 세상사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셨던 그런 아날로그가 더욱 그리운 요즘이다.
처서處暑가 지나자 이 여름의 한 복판에 비켜난 들꽃이 무수히 피고 지는 것을 보며 머지않아 다가 올 가을의 풍경을 그려본다. 나의 손길과 발길 닿을 속을 예단하며 이웃의 눈높이와 발걸음에도 맞춰가 갈 또 다른 한 길을 모색해 본다.
나의 한 길은 내게 있어서 지난 날 내 삶의 밑거름이었으며 앞으로 맞이할 웃거름으로 참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인연의 연속들이라 굳게 힘주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는데도 말이다.
이번에 150편을 게재하게 되었다. 지난 정월에 ‘내사 살아오는 동안에’ 그리고 오월에는 ‘세월에게 길을 묻고 그 답을 찾다’를 발간했다.
‘한 길을 걷고 또, 한 길을 걸어’는 지난 5월 8일 ‘세월에게 길을 묻고 그 답을 찾다’ 출간 이후 꾸준하게 시작詩作해 온 작품들로 문예지 등에 발표작보다는 미 발표작이 더 많다.
올해에 3권의 시집을 출간하려고 단단하게 각오한 일이 지난해 겨울이다. 마음먹은 일에 충실하려고 무척 고민하며 많은 습작을 했다. 작품이 내 창작의 토대에서 충실하게 활착하여 결실과 수확을 이루고 못 이룸은 전부 나의 책임이자 몫이며 멍에다.
이순耳順을 맞이한 해에 부지런함과 근면에 대해 늘 챙겨온 내 삶을 올곧게 다시 한 번 추슬러 세워본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015년 8월 27일
천안시 월봉산 아래에서 한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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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찬 시인∥
∙ 1955년 경남 거창 마리 대동리(서편)에서 한유복, 이영애 님의 차남으로 태어남.
∙ 대학 공업분석화학, 농학(학사), 대학원 환경공학(연구), 사회복지학(석사) 전공
∙ 시집『한줄기 바람(1998년)』외 16권, 시전집『한정찬 시전집 1, 2(2002년)』2권 출간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근정포장(대통령), 국무총리상, 장관표창 5회 등 받음
∙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등 역임
∙ 현)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소방문학 주간 등 등
∙ 중앙소방학교 전임교수, 소방방재청 소방상황팀장, 경북소방학교 교학과장, 예산소방서 소방행정과장 등 일함
∙ 현) 충청소방학교 교육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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