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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8월 4일 화요일
[(백)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1786년 프랑스 리옹 근교에서 태어났다. 181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시골 마을 아르스의 본당 사제로 활동하면서 겸손하고 충실한 목자로 존경받았다. 그의 고행과 성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오자, 그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영적 가르침과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평생을 아르스에서 겸손하고 가난하게 산 그에게 해마다 이 만여 명이 고해성사를 받으러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1859년 선종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시성하고, 1929년에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제1독서
<네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내가 야곱의 천막을 되돌려 주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0,1-2.12-15.18-22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적어라.”
12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의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너의 부상은 심하다.
13 네 종기에 치료 약이 없고 너에게 새살이 돋지 않으리라.
14 네 정부들은 모두 너를 잊어버리고 너를 찾지 않으리라.
참으로 나는 네 원수를 시켜 너를 내리쳤으니 그것은 가혹한 훈계였다.
너의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컸기 때문이다.
15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1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야곱 천막의 운명을 되돌려 주고 그의 거처를 가엾이 여겨
그 언덕에 성읍을 세우고 궁궐도 제자리에 서게 하리라.
19 그들에게서 감사의 노래와 흥겨운 소리가 터져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지 않고
내가 그들을 영예롭게 하리니 그들이 멸시당하지 않으리라.
20 그들의 자손들은 옛날처럼 되고 그 공동체는 내 앞에서 굳건해지며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은 모두 내가 벌하리라.
21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2.10-14
1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2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10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2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바리사이들이 그 말씀을 듣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아십니까?”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14 그들을 내버려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제 3,16-21)와 복음(마태 9,35―10,1)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시며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으셨다고 하십니다(창세 1,27-31 참조). 이렇게 하느님께서 보기 좋게 만드신 인간인데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마태 15,11 참조) 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인간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중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사는 까닭은 자유 의지를 주님께 선물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바로 가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좋은 것이 쓰게, 나쁜 것이 달콤하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 ‘나에게 달콤한 것을 선이라 부르고, 쓴 것을 악이라 부르고 싶은’ 유혹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모두 선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두 악이라고 자신을 속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희망해 봅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사람에게서 나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으니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우리 안에 있지 않을까요?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선을 좇으려는 마음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불의와 불신이 널리 퍼져 있어도 정의와 신뢰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쁜 것이 빠르고 쉽게 퍼진다고들 하지만 좋은 것도 그에 못지않게 퍼집니다. 내 작은 말, 생각, 행동 하나가 사람들을 살리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유청 안셀모 신부)
단 한명의 죄인도 남겨두지 않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비안네 신부님의 영성생활 안에서 제 눈을 확 잡아끄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본질에 대한 충실입니다. 그는 사목자로서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영적인 것, 하느님, 신자들의 영성생활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따라서 비안네 신부님은 세상 것들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나 럭셔리한 가재도구, 메이커 옷, 취미활동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사제관은 거의 ‘유령의 집’과도 비슷했습니다.
그 대신 그는 하루 온 종일 신자들 영성 생활의 쇄신만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심성의껏 고해성사에 전념하셨습니다. 매일 봉헌하는 미사는 마치도 생애 마지막 미사를 드리듯 정성을 다했습니다. 이 지상에 단 한 명의 죄인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영웅적 사도직을 수행했습니다.
만학도로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 기적적으로 사제로 서품됩니다. 그러나 서품 즉시 시작된 가난하고 착한 목자로서의 삶은 이제 역사에 길이 남을 별이 되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청빈한 생활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단 한 벌 밖에 없는 수단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습니다. 워낙 전반적으로 너덜거렸기에 수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신자들이 사람들 보기에 민망하니 수단 하나 새로 해 입으라고 돈을 마련해드렸습니다.
꼭 새로 해 입겠노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 그 옷 그대로였습니다. 화가 난 신자들이 다그쳤더니, 그 돈은 이미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준 후였습니다. 구두는 한 번도 약칠을 하거나 솔을 댄 적이 없이 그냥 되는 대로 신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이 왜 그렇게 하고 다니셨을까? 묵상해봅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어떤 날 하루 24시간 가운데 18시간을 고해소 안에서 보내셨다고 합니다. 사제로서 고해소에만 앉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남은 6시간 가지고 미사도 봉헌해야 했습니다. 강론준비도 해야 했습니다. 잠도 자야했습니다.
외모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쓰지 않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목에 전념하느라, 영혼구령에 시간을 바치느라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아침식사는 언제나 우유 한잔이면 족했다고 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할 시간이 없으셨던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하루 한 끼로 때우셨답니다. 식사 시간은 길어봐야 5분 내외였답니다.
비안네 신부님 성덕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특별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충실, 그것이 그분 성화의 비결이었습니다. 본당 사제로서 가장 중요한 성체성사를 지극정성으로 준비하고 경건하게 봉헌하는 것, 그리고 성체성사에 앞서 꼭 필요한 또 다른 성사 고해성사를 통해 신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것, 그것을 충실히 행함으로 인해 성인이 된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서울 대교구 사제 모임 마지막 날에는 콜롬비아 ‘교황 대사관’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콜롬비아 교황 대사관에는 한국인 몬시뇰이 계셨습니다. 몬시뇰은 저희가 교황 대사관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고, 미사 후에는 교황 대사관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보통 대사는 그 나라를 대표합니다. 미국 대사, 한국 대사, 영국 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교황청 대사를 흔히 ‘바티칸 대사’라고 하지 않고 ‘교황 대사’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교황님께서 단순히 바티칸이라는 작은 나라를 대표하는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대표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교황의 자리는 인간의 능력이나 정치적인 힘으로 세워진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신 사명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황님께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교황님 개인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리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일치와 친교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콜롬비아 교황 대사관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저는 다시 한번 교회가 얼마나 크고, 깊고, 넓은 신앙의 집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제들이 남미 콜롬비아에서, 교황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대사관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은총이었습니다.
몬시뇰은 교황 대사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외교 의전의 선임 자리를 맡는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교황 대사는 특정한 이념이나 체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각국의 대사는 자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지만, 교황 대사는 교회의 일치, 인간의 존엄, 평화와 화해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사제의 자리도 생각했습니다. 사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제는 어느 한 편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는 바로 그런 사제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 주신 분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배가 빠르고 튼튼해도 목적지를 잃어버리면 표류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때로는 멈추어 서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이 물음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삶은 바빠질 수는 있지만 깊어지지는 않습니다.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있지만 평화를 얻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약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길을 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멈춤이 아니라, 하느님께 방향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것은 단지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적이 강해서 무너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마음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하느님을 떠난 마음, 우상에 기울어진 마음, 감사와 신뢰를 잃어버린 마음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하느님께서는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상처 입은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벌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우리 마음의 자리를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환경 때문에 내가 흔들린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고, 상황이 나를 무너지게 하고, 세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외부의 어려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나를 흔드는 것은 내 마음 안의 시기와 질투, 분노와 미움, 근심과 걱정일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좋은 음식도 기쁨이 되지 못하고, 아름다운 경치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으면, 고통의 바다에서도 우리는 침몰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머무르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시 파견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미사에서 은총을 받고, 기도 안에서 힘을 얻고, 다시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사제의 길이고, 모든 신앙인의 길입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처럼 우리도 하느님 앞에 머무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말보다 기도로, 판단보다 자비로, 자기 영광보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화려한 업적만이 아닙니다. 깨어 있는 마음입니다. 충실한 마음입니다. 주님께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동안, 우리의 배가 주님께 방향을 맞추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아 그대에게 달렸으니>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 15,10)
아무 것도
더럽힐 수 없는
그대 사람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게나
아무 것도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그대 사람아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게나
오늘의 성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hn Mary Vianney)
신분 : 신부
활동지역 : 아르스(Ars)
활동연도 : 1786-1859년
같은이름 :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는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Lyon) 근교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 농부인 마태오와 마리 블루즈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비안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5세 때에는 파리(Paris)에서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추방되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안네는 어린 시절을 주로 부친의 농장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다. 정규 교육은 몇 개월밖에 받지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비밀리에 첫 고해(1794년)와 첫영성체(1796년)를 받았다.
18세 때 부친의 허락을 받고 에퀼리(Ecully) 본당 발레(Balley)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개인적으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기초 교육이 부족하고 수학 능력도 많이 떨어졌다. 특히 라틴어 공부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신학생이었던 비안네는 1809년에 징집을 당해 갖은 고통을 겪었다.
1811년에 베리에르의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과정을 공부하고 1813년에는 리옹의 대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라틴어 성적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퇴학당한 비안네는 학과 성적은 부족하였지만 발레 신부의 도움으로 신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신심과 성품을 인정받아 1815년 8월 13일 그르노블(Grenoble)에서 시몽(Simon)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후 발레 신부가 있는 에퀼리 성당에서 2년 동안 보좌 신부로 생활한 비안네 신부는 1818년에 230여 명의 주민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42년 동안이나 봉직하면서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비안네 신부의 노력으로 아르스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일신되었고, 그 또한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1827년부터 수천 명의 고해자들이 그에게 성사를 받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 아르스로 찾아올 정도였다. 매년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비안네 신부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는 오전 11시에 설교를 하고 성무일도와 식사, 특별한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약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사제들은 그를 잘못 판단하고, 그를 무식하고 지나치게 열성적이며 허풍선이라고 비난하곤 하였다. 이에 대해 그의 주교는 “저 신부만큼이나 모두 미쳤으면 좋겠다.”고 하며 그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열심한 그 역시 가끔씩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성품은 지극히 단순하였고, 충고는 간단명료하였으나 신심이 차고 넘쳤으며 직선적인 설교를 하였다. 순례자들의 소란, 끊임없는 고해성사 요구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단지 세 번 아르스를 떠났는데, 그것은 모두 수도원에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안네 신부는 열심한 성무에 지친 나머지 1859년 8월 4일 73세의 나이로 아르스에서 사망하였다. 1905년 1월 8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가 된 비안네 신부는, 1925년 5월 3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시성되었으며, 1929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본당 신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엘레우테리오 (Eleutherius)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 +310년
성 엘레우테리우스(또는 엘레우테리오)는 타르수스(Tarsus)에서 순교하여 그곳에 묻혔다. 그의 무덤은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고, 그의 순교 이야기는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는 않다. 콘스탄티노플에는 그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졌다.
볼랑디스트(Bollandists, 성인전집 Acta Sanctorum을 편집하여 간행한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을 가리키는 말)는 2월 20일에 축일을 기념하는 성 엘레우테리우스 주교 순교자와 그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성 아리스타르코 (Aristarchus)
신분 : 바오로의 제자, 주교
활동지역 : 테살로니카(Thessalonica)
활동연도 : +1세기
그리스 테살로니카 태생의 성 아리스타르쿠스(또는 아리스타르코)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의 전교여행의 동료 중 한 명이다(사도 20,4; 27,2; 필레 1,24).
그는 에페수스(Ephesus)에서 사도 바오로와 함께 체포되어 같이 투옥되었다.
전승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테살로니카의 초대 주교이며 네로 황제 때에 로마에서 사도 바오로와 함께 참수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