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한글잔치/靑石 전성훈
세종임금님 마음을 알고 싶다. 임금께서는 무슨 심정으로 많은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안질에 걸려 고생하면서 한글을 만드셨는지? 무지렁이 백성을 한없이 불쌍히 여기시어 언문을 창조하셨다는 그 말씀뿐이신가. 언문이라는 생명이 찬란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4백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언문을 정식으로 나랏말로 불렀으니, 올해 한글날은 언문이 국문으로 불린 지 130년이 되는 해이다.
“언문(諺文)이 국문(國文)이 되다”라는 표어로, 쌍문동 소재 원당샘공원에서 제13회 ‘도봉한글잔치’ 행사가 열려, 가족 단위의 많은 사람이 찾아와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한글날 기념행사를 정부 차원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에서 시행한 것은 도봉문화원이 유일하다고 한다. 작년 행사에는 비가 내려서 불편했지만, 올해는 하늘도 푸르고 맑게 빛나고 구름도 한가로이 떠도는 화창한 날씨이다. 도봉한글잔치는 사전행사와 연계행사 그리고 본행사로 나뉘어 열렸다. 사전행사로는 연산군묘 일원에서 “모두 한글을 기본으로 하고”라는 제목으로 한글연보전(年譜展)을, 원당샘공원 잔디밭에서는 “한글 꽃 피우다”로 기획전을, 원당샘공원 연못 울타리에서는 “우리 동네 한글을 찾아서”로 사진전을, 방학동 은행나무 옆에서는 “도봉의 문인들” 시화전을 열었다.
연계행사로는 제18회 “도봉 글짓기 및 그림 그리기 대회”가 유치부에서 일반부까지 도봉구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본행사는 도봉공연장에서 1부[한글, 정식으로 나랏말이 되다], 2부[한글, 우리 민족의 흥이 되다‘]로 참가자와 구경하는 사람의 흥을 북돋웠다.
이와 함께 한글과 함께 추억을 쌓고 싶다면 ‘놀이체험장’에서, 한글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도봉탐방소’에서, 왕실문화체험은 ‘연산군강학’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체험하고 즐겼다. 각종 부스에는 다양한 형태의 잔치가 열렸는데,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도봉사진소, 지역작가와의 만남에서는 향토작가의 서명이 든 책을 선물하고, 우리 집 가훈과 현판을 만들고 싶으며 도봉서예협회에서, 자개 필통을 만드는 체험과 한글 이름표를 만드는 체험은 문화원 문화학교 부스에서 참여하고, 1년 후에 도달하는 타자기로 쓴 느린 편지는 도봉우체국통에 넣으면 되었다. 모든 행사에 먹거리가 빠지면 재미가 없듯이, 저렴한 가격으로 빈대떡, 떡볶이, 순대, 커피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솜사탕을 비롯한 간식거리를 판매하였다.
원당샘공원 풀밭에서는 부모와 함께 집에서 가져온 방석과 간이 야외용 식탁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무척 많다. 글짓기에 참석한 아이나 어른들은 어디서 숨어서 글을 쓰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글을 길게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단문 위주로 소통하는 세태의 영향이리라.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이모티콘과 외계인이 사용하는 듯한 전혀 알 수 없는 줄임말을 쓰는 요즈음 우리 사회 풍조가 그대로 반영되는 듯하여 약간 씁쓸한 마음이 든다. 나이가 상당이 들어 보이는 여성분이 커다란 나무에 기대여 원고지에 부지런히 글을 적고 계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살아오신 세월만큼 숱하게 힘든 과정을 겪으시며 마음에 담아 놓았던 사연을 이번 글짓기 대회를 통해서 풀어버리는 듯하다. 수백 년 된 은행나무 주변에서 시화전을 여는 도봉문인협회, 나의 출품작인 ‘벚꽃이 필 때면’ 현수막 앞에서 멋쩍게 사진을 찍어 친구들 단톡방에 올린다. “ 흰색과 분홍색 꽃이 하늘을 뒤덮은 날/하늘에서는 소리 없이 눈 같은 꽃비가 내리고/꽃잎이 춤추는 거리에는 웃음꽃이 수를 놓으니/꽃향기에 취해 길을 잃어도 얼굴엔 미소가 넘쳐흐르는데/검버섯 속에 맺힌 눈물은 잃어버린 옛날을 그리워하네! ” (202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