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회 20210421 포항 죽장면 두마동 녹유정 답사
초록이 아름다운 4월 봄날 90회 숲과 문화반 답사가 시작되었다. 대구에서 출발한 일행은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달려 임고IC에서 내려 풍광이 끝내주는 영천댐 주변 풍광을 보면서 망향정에 도착하였다. 아마 영천댐 공사로 고향을 잃어버린 수몰지구 사람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세워놓은 정자 같았다. 출발지가 달랐던 4대의 자동차들이 모이도록 기다렸다가 최종 목적지인 면봉상 아래 두마동으로 함께 출발하였다. 영천댐에서 죽장면으로 향해 달려가는 시골 국도는 한산하였고 주변의 농촌은 봄철 농사준비에 한창이었다. 죽장면소를 지나 면봉산 아래 있는 두마동으로 올라가는 골짜기의 자동차 길로 들어섰다. 무학사 앞에서 마중 나온 녹유정 최명식 대표의 안내를 받아 무학사를 둘러보았다. 계곡 건너편 큰 바위아래 지어진 사찰이 늙은 소나무와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어울려 아름다웠다. 들어가는 계단 옆에 아름답게 활짝 핀 쇠물푸레나무의 하얀 꽃이 우리를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차가 다니는 건너 산 아래 넓은 터를 닦아 새로 불사를 하고 있는 무학사를 돌아 내려왔다.
자동차를 타고 두마동으로 올라가는 가는 도중 최명식 대표는 계곡아래 폭포로 안내를 했다. 이 계곡에는 폭포가 두 군데 있는데 위쪽은 남성들이 그리고 아래쪽은 여성들이 목욕하는 곳이라고 했다. 두 폭포사이에 평평하게 넓은 바위가 있는데 이곳은 목욕이 끝나고 남녀가 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는 장소란다.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몰려올 것 같은 좋은 계곡이다. 이 계곡물이 1천 미터가 넘는 약초가 많은 보현산과 면봉산에서 내려오는 약수라 생각하니 한번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동차로 2, 3분 올라가 동네 입구에 있는 마을 표지석을 만났다. 아주 큰 자연 바위 위에 높이가 2m가 넘고 너비는 3~4m가 됨직한 큰 바위 돌에 ‘두마동’이라 쓴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눈에 보아도 아주 잘 쓴 글씨임을 알 수 있었다. 뒤쪽에는 기증자 최명식 녹유정 대표 성함이 적혀있고 그 옆에는 글씨를 쓴 최병익 선생의 이름이 있다. 최명식 대표의 이야기로는 마을에 4가지 유명한 보물이 있는데 그 첫째가 이 표지석이라고 했다. 글씨도 잘 썼지만 돌의 모양도 좋았다. 斗摩란 북두칠성을 어루만진다는 뜻이라고 했다. 자연석 위에 올려진 글씨 쓴 바위가 멋이 넘친다. 전라도 고흥군 거금도에서 가져온 바윗돌에 글씨는 경주 남산 정산표지석을 쓴 부산에 사는 최병익 선생이 썼으니 이만하면 마을의 보물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았다.
농촌 마을이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140여호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외지에서도 이곳으로 새로 이사 온 사람들도 있어서 인구가 새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두마동 동네 표지석 앞에서 바라다보니 1000m가 넘는 보현산과 면동산이 감싸 안고 있는 수려한 풍광은 이곳이 사람이 살기 좋은 길지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골짜기에는 물이 많아 논농사가 주였으나 최근에는 기후 온난화로 대구 등 평지에서 재배되어 왔던 사과농사가 이곳 농사의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 이제 새로 조성하고 있는 과수원들이 많이 보였다.
표지석을 지나 동네 입구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그 위에 위용이 대단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함께 자라고 있는 쉼터가 있다. 쉼터 앞에는 조선 말 이 동네에 많은 돈을 희사하고 떠나신 서필도 인동부사의 은덕을 새겨 놓았던 비가 깨어져 흙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다시 찾아 옛것과 함께 새로 복원한 비를 세워놓았다. 그 옆에는 동네의 지도를 그려놓고 가볼만한 곳을 표시해 놓았다. 동네 앞에 석자쯤 된 ‘두들리‘ 비가 있고 그 뒤쪽에는 고우회(睾友會) 친구들 이름이 적혀있다. 두들이란 여자의 음부를 의미한다고 했고 고우는 불알친구라는 뜻이라고 하니 참 재미있는 비라고 생각되었다. 바로 이곳이 최 대표가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마을에 두 번째 보물은 동네 앞에 기와지붕을 이고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여집이라고 했다. 허물어졌던 것을 새롭게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기와로 지어진 상여집은 예사롭지 않았고 지금도 백사십여호가 살고 있다는 두마동에 오래된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24명이 매고 나가야 할 정도의 큰 상여가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보물 하나는 오늘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한 산중턱에 있는 천지인 천재단이라고 했다. 아마 신라 때부터 이곳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흔적이라고 생각된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갈 목적지 녹유정은 이곳에서 700m 위에 있는데 바로 면봉산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 보문산 천문대 팬션을 지어 놓았고 주변에는 두릅, 오미자 농사를 짓기도 한다고 했다. 금년 초 영남 산림치유지도사협회를 이곳 녹유정에서 창립하여 최 대표 본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녹유정 입구 느티나무 아래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주반장의 능수능란한 솜씨를 앞세워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져 나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다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즐거운 이야기 시간을 가졌다. 맛있는 돼지고기 요리에 화전은 아니지만 전까지 나와 막걸리 생각이 난다는 말에 최 대표, 자기 친구가 철도청에서 기차 운전을 하다가 정년하고 이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설 선생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 분이 가져온, 집에서 담았다는 맛이 진한 막걸리를 한잔씩 돌리면서 즐거운 여흥을 즐겼다. 마침 우리 팀에 같이 온 철마를 모는 기사님과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우리들과도 바로 친해지게 되었다.
최명식 녹유정 대표는 경북대학교 농학과 70학번으로 고등학교 교직에 근무하다가 이곳 자기 고향에 자리를 잡고 이 넓은 땅을 장만하여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두마동(斗摩洞)은 북두칠성을 어루만지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역사가 있고 이곳은 1000m가 넘는 세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로 풍수지리를 아는 사람들은 길지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이곳 마을 사람들은 6.25때나 월남전쟁에 가서도 아무도 해를 입은 사람이 없다고 자랑했다. 산 넘어 경북대학교 학교림 있는 청송 월매 마을은 6.25한국전쟁 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길 들어 알고 있는데 산 능선 하나 건너온 이곳은 이렇게 길지라고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좋아해 대학도 임학과를 가려고 했으나 70년대에는 경북대학교에는 임학과가 없어서 농학과를 갔다고 했다. 이제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의 역사를 정리하고 고향의 추억을 스토리텔링을 하여 아름다운 마을 두마동을 챙겨 가고 있는 그만의 고향 사랑은 누가 무어라 해도 그 뜻을 높이 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한번 사는 인생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계획을 세워 밀고 나가는 모습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 미국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으로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윤여정의 ‘사치스럽게 살고 싶다.’는 말처럼 최 대표도 사치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윤여정이 말한 ‘사치’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식사 후에 펜션을 같이 구경한 최 대표, 자기 집 앞 정원 정자에 앉아서 보현산, 면봉산을 바라보면서 면봉과 보현의 두 봉우리가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곳, 그 아래 바로 자리한 포근한 자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집터가 천하명당이 아닌가하고 말을 이었다. 펜션도 방이 3칸이고 각각 크기가 달랐다. 가격은 주중은 가장 큰 것이 이십만원, 주말은 이십사만원이라고 했다. 여름에는 인기가 높아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물이 많은 곳이라 했는데 집 마당에 연못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연못이 적막하지 않게 큰 오색잉어 두 마리가 사이좋게 헤엄치고 있었다. 다시 아래로 돌아 나와 사방댐 위에 지어서 이곳에 와 처음 살았던 집을 구경하였다. 그 집 바로 아래 만들어져 있는 사방댐에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사방댐 바로 옆에 서있는, 이제야 꽃이 만발하여 물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산벚나무의 암영을 보면서 곱고 아름다움을 디시 느끼게 된다.
다시 아래로 걸어 내려가 오미자와 취나물 하우스를 구경하였다. 산 중턱에 저수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호-스를 타고 내려온 수압만으로 비닐하우스 안에 노즐에서 시원하게 물줄기가 품어져 나왔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이용한 시설이었다. 잘 자란 오미자 등을 보면서 금년에는 많은 열매가 달릴 것이라는 최 대표의 설명을 들으니 열매가 익는 늦여름 철에 다시 이곳에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나물 오미자 재배농장에서 나와 점심을 먹은 느티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온 산길은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키 큰 소나무와 줄기가 굵은 고로쇠나무가 가득 들어선 숲속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해 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올라가자 산속에 움막 같은 집이 나왔다. 누군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적막할까?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고독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아마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자연의 일부가 된 나는 얼마나 기쁜지’, ‘솔바람 소리 계곡의 물소리 얼마나 정다운지’, ‘이 모든 자연이 내 것인 것인 얼마나 행복한지’, 이런 말을 들을 것만 같은데. 오늘 그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니 느티나무 아래 점심을 먹었던 테이블 위에는 이미 찻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산행 때 만들어진 찻자리는 항상 주반장의 배려였다. 향기와 맛이 진한 우리 녹차를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함께 즐겼다. 차를 마시면서 이번에 내가 준비해간 ‘정부 정책 2050 탄소 중립’에 대한 특강 아닌 이야길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우리 인간의 고향은 숲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숲속에 들어오면 정신과 육체는 힐링이 되어 한결 더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 이런 숲은 우리 건강에도 크게 기여하지만 지구 환경보존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숲은 목재 생산 이외에 다양한 기능 즉 산사태의 방지기능, 수자원의 보존기능, 온실가스 흡수 저장기능, 공기 정화기능, 야생동물 보호기능 등을 가진다. 이러한 숲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을 공익적 자산이라고 한다. 산림청에서 발표한 2018년도 숲이 가지고 있는 공익적 자산은 221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공익자산 중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온실가스 흡수 저장 기능이다. 현재 지구가 당면한 환경 문제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지구온난화 문제이다. 2018년 우리나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UN산하 기후변화 협의체’회의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인류가 온실가스 증가를 줄이지 못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살아간다면 인류의 역사는 2030년이면 종말을 고하게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현재 지구의 온난화는 매우 심각한 정도를 지나서 절박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최소한 현재 우리 인간들이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고 살아간다면 앞으로 9년 이후 2030년에 지구의 종말이 오고 말 것이라고 지구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어제처럼 오늘도 같은 패턴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인간의 무지함에 우리 모두는 반성하고 회개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지구 환경을 위해 바로 지금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무언가가 달라져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종이 한 장 휴지 한 장이라도 적게 버리겠다는 것이나 목욕하는 물을 아끼거나 나무라도 한그루 더 심거나... 여하튼 무언가 새롭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뀌어 해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생활 방식 중에 무었을 바꿔나가야 할 것인가? 하고 진지하게 물어 보고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10여분 간단하게 내 이야길 끝마쳤다.
오늘은 심하게 오염된 도시 근교의 숲과 달리 두마동 숲길과 계곡은 우리의 찌든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준 세심정洗心井과 같았다. 녹유정의 이름처럼 푸르고 파란 깨끗한 이미지와 그곳에서 마음을 풀어 해쳐놓고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곳 사람을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이들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 갈수 있게 되길 소망해 보았다.
오늘 90번째 산행을 어렵게 추진해 주신 주반장님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여러 가지 일로 바쁘신 일정을 과감하게 훌훌 털고 길을 나선 숲과 문화반 회원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방문을 흔쾌히 허락하고 기꺼이 안내해주신 보현산 녹유정 최 대표에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