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나의 장례식 》
전 7:1~4
〈 어떤 성도의 장례식 〉
신실하신 김 아무개 집사님…,
하나님이 좋아서, 예수님이 좋아서, 믿음이 좋아서, 교회를 참으로 열심히 섬겼습니다.
구원받은 확신이 너무 기뻐서, 그 기쁨을 남편에게 자녀에게 전하는 한편, 기도했습니다.
돌아보니 수십 년 기도했습니다. 때로는 눈물로 기도하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남편도, 자녀도, 예수 믿음이 아닌 다른 일에는 속도 안 썩히고 온유한 편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마이동풍입니다. 꿈쩍도 안 합니다.
안 믿는 가족을 생각하여 자신도 교회를 등질까 생각도 많이 했지만, 믿음이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신앙 생활 하다가 어느덧 인생이 저물었습니다.
총기도 흐려지고 거동도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앉고 일어서는 것조차 힘 들더니 결국은 요양병원에 입원합니다.
여늬 인생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그렇게 의식이 꺼져가고 결국은 호흡도 꺼집니다.
장례를 치릅니다.
장례 예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유가족들이 결정합니다.
유가족에게 기독교 신앙이 없으니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치르지 않습니다.
영정 앞에 잔뜩 음식을 올리고, 찬송가도, 기도도, 예배도 없습니다.
☞ 만일 망인이 자기 장례식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심정이 어떠할까요?
‘이것이 나의 장례식이라고?’
내가 부르던 찬송도 없고,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은 물론 성도 한 사람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의 장례식이야? 아니지, 아니지, 이건 아니지…’
장탄식이 쏟아지지만 이미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었습니다.
소통의 강은 깊어졌습니다. 누구도 그 강을 사이에 두고 소통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된 성도가 아무리 절규해도, 유가족에게 전달이 될 리 만무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성도가 꽤 많습니다. 부지기수입니다.
☞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나의 장례식’입니다. 오호 애제라~
〈 나의 생일 vs 나의 장례식 〉
오늘 이 설교를 들으시는 성도 여러분!
저와 함께, ‘나의 장례식’을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나의 장례식은 어떤 풍경일까요?”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는 중, ‘나의 생일’ 의미 있게 지냅니다.
생일을 대충 보내도 괜찮다는 이는 드뭅니다.
생일은 태어난 날입니다. 생일은 해마다 찾아옵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생일이 쌓이고 쌓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일의 되풀이는 반드시 ‘죽음’에 도달합니다.
☞ 생일과 대칭하는 말은 죽음입니다.
☞ 물론 저나 여러분이나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 달갑지 않습니다.
죽음은 두렵고, 죽음의 실체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생일만 이야기하면서 살아도 부족한 세월, 죽음을 이야기하는 바보가 어딨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세상을 삽니다.
☞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할까요?
전 7: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참 뜻밖입니다. 그렇지요?
“~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어떤 분들은 “말도 안 돼” 할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것, 달갑지 않습니다.
‘성경에 얼마나 좋은 말씀이 많은데, 하필 이 구절로 설교를 해?’
☞ 목사님들을 굳이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 진리는 외면한다고 덮여지지 않습니다. 진리에는 담대히 대면해야 합니다.
☞ “나의 장례식, 준비함이 옳습니다.”
〈 장례식을 준비하는 법 〉
“~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이거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예수 안 믿으니까요!
예수 믿는 사람들, 이거 꼭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었으니까요!
알았다면, ‘나의 생일’ 이상으로 ‘나의 장례식’을 의식해야 합니다.
“나의 장례식을 외면하지 맙시다!”
☞ 어떻게 하는 것이 나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일입니까?
나의 장례식이 오기 전까지, 3가지를 해야합니다.
첫째,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위해 살자! (1절)
둘째, 잔치집보다 초상집에 가기를 힘쓰자! (2절)
셋째, 나의 장례식 유언을 해 두자! (2절)
〈 첫째,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위해 살자! (1절) 〉
오늘 본문 1절에서 솔로몬은 말합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음을 선포하기 전 좋은 이름과 좋은 기름을 언급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보다 죽는 날까지 ‘좋은 이름’을 위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이름’은 명예입니다.
우리는 간혹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자기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자기 이름을 깨끗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언제까지요? ~ 나의 장례식이 이르기까지입니다.
〈 둘째, 잔치집보다 초상집에 가기를 힘쓰자! (2절) 〉
생활의 지혜이고 삶의 방법론입니다.
2절에서 말씀합니다.
(2절 A)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
잔치집에는 축의금을 온라인으로 송금해도 괜찮습니다.
초상집에는 가능하면 직접 찾아가서 조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 교회 주보에는 광고란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을 표시해 줍니다.
결혼, 이사, 개업 그리고 사망 소식이 게재됩니다.
교회에 출석하여 사망 소식이 광고에 올라오면, 참석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망인과 잘 알지 못해도, 성도가 함께 장례식장에 가서 예배합니다.
그때 함께 가서 각종의 장례 예배에 참예함이 좋습니다.
☞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중에 기독교식 장례에 대하여 알아두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예수 믿는 집안에서는, 임종이 임박하면 바로 교회에 알립니다.
목사님은 임종 직전에 ①‘임종 예배’를 집례합니다.
숨을 거두면 장례식장으로 옮기게 됩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객 맞이 준비가 끝나면 곧이어서 ②‘천국환송예배’를 합니다.
천국환송예배 역시 목사님이 준비하여 집례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염을 마치고 입관할 때 ③‘입관예배’가 있습니다.
보통, 관 뚜껑을 열고, 고인의 얼굴을 드러내놓고, 유가족과 교회 성도가 함께 예배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장지로 출발하면서 ④‘발인예배’를 합니다.
운구차에 유해를 싣고, 장지로 출발하기 전,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예배합니다.
장지에 도착하여 관을 미리 파둔 묘지에 내릴 때, ⑤‘하관예배’를 합니다.
이렇게 다섯 번의 예배로 장례식 예배가 마무리 됩니다.
요즘은 대부분 화장을 합니다.
화장장 화구에 들어간 이후 ⑤‘승화원예배’를 합니다.
화장을 마치고 유해를 최종적으로 안치할 때, ⑥‘봉안예배’를 하게 됩니다.
신실한 기독교인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5~6회의 예배를 하게 됩니다.
장례식을 집례하는 목사는 이 모든 예배를 준비하고 진행하게 됩니다.
이 순서에서 망자와 연관있는 타교회 목사님이 계실 경우 설교를 맡기기도 합니다.
☞ 기독교 신자라면, 이렇게 진행되는 장례 절차를 알고, 평소에 대비하여야 합니다.
〈 셋째, 나의 장례식 유언을 해 두자! (2절) 〉
본문 2절 뒷부분을 봅니다.
“~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 지어다”
_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
_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_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그러니 산 자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것을 마음에 둘 지어다! 할렐루야~
마음에 두어라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_ 나의 장례식이 기독교식으로 치러지도록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_ 나의 장례식을 집례할 교회를 정해 두어야 합니다.
_ 나의 장례식에서 설교해 주실 목사님을 지정해야 합니다.
살아생전에, 자기 장례식을 치를 자에게 유언을 해두어야 합니다.
“나의 장례는 OOO교회, OOO목사님이 집례하도록 해 다오!”
이 유언이 매우 필요합니다.
이 유언을 해 두면 자식간, 장례 절차를 두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장례식이 거행될 때,
☞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유가족에게는 위로가 되며, 안 믿는 자에게 권면이 됩니다!
☞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렇게 ‘나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나의 장례식’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