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2,12-18; 2코린 5,20-6,2; 마태 6,1-6.16-18
+ 찬미 예수님
명절 잘 쇠셨어요? 어제가 설이라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고 새로운 마음을 가졌는데, 오늘 또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이고 오늘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잠시 후에 재를 머리에 얹게 되는데요, 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첫째, 재는 우리가 육체적으로 연약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 상위 1%의 인구가 가진 총자산은 7조 원의 일만 배에 해당하는 7경 원 정도인데, 이는 하위 95%가 가진 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라고 합니다. 또한 세상에는 이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수많은 불의와 비리를 저지르는 권력가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100년 뒤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모두 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힘 있는 사람이나 힘 없는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재로 변합니다. 재는 이처럼 우리가 육체적으로 연약하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둘째로, 재는 우리가 영적으로도 연약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나약하기에 죄를 짓습니다. 죄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상처를 입힙니다. 우리 머리에 재를 얹는 것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세 번째로, 재는 희망의 표징이자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초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이 덧없음 가운데에서 놀라운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작년에 전국적으로 많은 산불이 났습니다. 수많은 집과 나무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재로 변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터 나오고 있습니다. 재는 칼륨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에 식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좋은 비료가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머리에 바르는 재는, 우리의 육체적 영적 연약함을 나타내지만, 이 연약함의 한가운데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일을 하실 것임을 드러내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새로운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회개하는 것이고, 둘째는 진정으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재를 바르면서 이 두 가지 말씀을 듣게 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단식과 자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세 가지는 유다인들에게 회개의 징표였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으로서,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는 방향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단식은 자기 절제와 희생의 표현으로서 죄에 대한 슬픔과 뉘우침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자선을 뜻하는 ‘쩨다카’라는 단어는 ‘정의’를 뜻하는 ‘쩨데크’에서 비롯하는데,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마땅한 의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 가지 덕목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 계시기에 우리 눈에는 숨어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 하느님을 무시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행동할 때, 나의 신앙은 ‘공연’이나 ‘퍼포먼스’가 되고 사람들은 ‘관중’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작 주인공이신 하느님은 소외됩니다.
사람들의 칭찬은 입술에서 나와 공중으로 사라지지만, 숨어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해 주시는 칭찬은 우리 존재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진정한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재와 같이 연약한 우리 존재 한 가운데 하느님께서 계심을 깨닫고 주님의 자비에 우리를 내맡기는 것입니다.
이제 재의 예식을 준비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한 변화의 여정을 시작하여 주시기를 청합시다.
재의 수요일 전례 꽃꽂이, 노은동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