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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의 문집
제목: 하반하 3년 보고서
목차
1. 프롤로그
2. 8기
(1) 세계 여행?
(2) 고난과 시련(3) 성장의 발걸음
(4) 끝, 그리고 시작
3. 비밀병기
(1) 내적 갈등
(2) 점점 초라해지는 나
(3) 다시 활력을 되찾다
(4)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2학기
(5) 한 번 더
4. 9기
(1) 내 인생의 첫 회장
(2) 책임의 자리
(3) 슬럼프
(4) 인간 관계란 음식과 같다
(5) 후폭풍
(6) 3년을 되돌아보며...
5. 에필로그
1. 프롤로그
올해 9기는 나의 마지막 하반하 기수였다.
그런 만큼 더 조심스럽고, 생각이 많았던 한 해였던 것 같다.
9기가 끝나면 이제 곧 난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하반하 3년이라는 시간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난 하반하 3년을 다니면서 인정을 많이 받지 못했다.
질타도 많이 받고 동생들에게도 무시 받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반하 3년을 택한 이유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하반하가 더 나를 바꾸고, 성장시키고,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었기 떄문이다.
그래서 난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지 않은 것을 고르라고 하면 하반하에 온 걸 고를 것 같다.
만약 내가 하반하에 오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고 확실하 계획없이 게으르게 살았을 것이다.
하반하는 나에게 꿈과 계획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이번 문집은 여행 초반부터 어떤 식으로 쓸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나의 마지막 마무리 문집이라고 생각하니 그만큼 더욱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3년을 통틀어서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8기 문집 때와 비병 문집 때를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난 나의 생각 위주보다는 에피소드 위주로 썼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일기를 쓸 때에도 생각이 많이 없다는 평을 많이 봗는데 그래서 이번엔 나의 느낌, 생각 위주로 쓰기로 결정했다.
나의 마지막 문집, 시작하겠다.
2. 8기
(1) 세계 여행?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의 중학교 시절은 조금 혼란했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오면서 어머니와의 싸움이 잦아지고 인간 관계에서도 많은 문제가 생겼다.
초등학생 때 친했던 친구와 멀어지기도 하고 진짜 친구라고 생각할 만한 친구는 거의 없었다.
거기에 게임 중독으로 인해 떨어지는 성적, 그리고 게으르고 의미없는 생활들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고 있을 때쯤, 어머니께서 나에게 세계여행을 가보라고 하셨고 그게 바로 하반하였다.
그때 당시 나는 너무 무의미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노는 곳이라는 소리를 듣고 가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대 반 격정 반으로 난 출국 날을 기다렸다.
출국 날,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하자 나의 초등학교 불알 친구 호준이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단체 생활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과연 내가 한 달 동안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근심들을 뒤로 한 채 나와 시즌 15기는 인도네시아 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인도네시아 공항에 내리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제 진짜 나 혼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이렇게 멀리, 긴 시간을 떨어지게 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초조하면서도 은근 신이 났다.
엄마랑 처음 떨어진 게 두렵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내가 조금 더 성숙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과연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가 되었다.
도착하고 다음 날, 난 하반하의 정산, 워커 시스템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하반하에서는 자기가 공부한 만큼 돈을 받을 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산 시스템이다.
그리고 요리, 설거지 등 집안일들을 돌아가면서 하는데 이게 바로 워커 시스템이다.
이 두 가지의 시스템들을 들으면서 정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집에서 집안일은 물론이고 용돈도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받았었다.
그래서 당연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첫 2주간은 너무 힘들고 아이들과의 불화가 계속 생겼다.
하지만 어머니와 통화하고 나서 큰돈내고 온 거 이렇게 지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산 시스템을 하면서 벌어지는 빈부격차를 보며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비굴하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주는 열심히 민승 형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았다.
그 결과, 돈을 벌었고 처음으로 여기 와서 매우 뿌듯함을 느꼈다.
하반하는 작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열심히 한 만큼 돈을 버는 게 정산 시스템인데 사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거랑 똑같은 것 같다,
비록 힘들었던 한 달이었지만 이 한 달은 나에게 많은 걸 깨닫게 해주었다.
그땐 나도 내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고 이렇게 계속 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써니쌤께서 나에게 10개월 여행을 제안하셨고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하반하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시즌이 끝나고 돌아와서 또 게임에만 빠지고 어머니와의 마찰이 생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굳은 다짐을 하고 8기를 결정하게 되었다.
(2) 고난과 시련
그렇게 시작된 8기 생활, 합숙은 4번을 했는데 합숙은 재미있고 힘들지가 않았다.
밥도 너무 맛있어서 오히려 살이 찔 정도였었다.
그래서 합숙을 하면서 이 정도면 버틸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니 엄청난 고통들이 나를 찾아왔다.
일단 조깅, 아침마다 하는 이 운동은 정말 돼지였던 그 때의 나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86KG의 몸으로 40분 이상을 뛰어야 한다니, 지금도 그 때를 상상하면 정말 끔찍하다.
게다가 조깅을 뒤처지면 써니쌤께서 계속 아침밥을 굶기신다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정말 죽기 살기로 뛰어야 했다.
정말 매번 아침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떻게든 조깅을 안 나갈 구실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조깅말고도 많은 고난들이 날 찾아왔다.
일단 정산, 우리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일기를 내야 했다.
하지만 잠이 많은 나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여행초반에는 일기를 아예 쓰지 않고 독해나 단어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빚이 엄청나게 늘었고 다른 과목에서도 패널티를 엄청나게 받아왔었기 때문에 나의 빚은 200$를 돌파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산을 열심히 안하는 나에게 써니쌤께서 신데렐라를 시키셨다.
신데렐라란, 공부 안하는 애들을 위해서 생긴 제도인데 워커를 계속 시켜서 게으름을 부리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공부도 해야 하고 만약 하지 않으면 밥을 굻기기 때문에 나에겐 매우 큰 시련이었다.
신데렐라가 된 이후에도 난 당연히 여전히 게을렀고 그래서 많이 혼나고 밥도 많이 굶었었다.
그러다가 산티아고가 끝난 직후, 써니쌤의 화가 터지시고 말았다.
시즌이 왔다간 뒤로 우리가 많이 풀어졌었는데 그래서 점점 우리의 할 일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게다가 산티아고 때는 남자와 여자애들끼리의 재판이 많이 열리고 다툼과 문제가 많아서 아미 써니쌤께서 화가 많이 났던 상태였을텐데 산티아고가 끝난 직후에도 우리의 할 일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서 빈둥거리니 써니쌤의 화가 머리 끝까지 터지신 것이었다.
그래서 써니쌤께서 이제부터 우리는 여행사이고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반하는 이번 년도가 끝이라고 선포하셨고 우리랑 말을 하시지 않으셨다.
우린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써니쌤의 화를 풀어드리려고 노력을 했다.
절대 방에 들어가지 않고 책상에 나와 있으려고 노력했고 웃거나 깔깔대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아라 부르지 마라고 하셨지만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어떻게 하면 써니쌤이 화를 푸실지 고민을 했다.
이런 우리의 노력이 통했는지 2주 정도의 냉전 끝에 다행히 써니쌤께서 다시 회의를 하셨고 화를 풀으셨다.
매우 답답한 뭔가가 한꺼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그렇게 8기는 도중에 참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고 순탄하지 않았던 한 해였다.
(3) 성장의 발걸음
그래도 잘 버텨냈고 확실히 난 1년 전과 비교를 하면 굉장히 많이 변화했다는 게 느껴졌다.
일단 조깅, 내가 제일 싫어하던 운동이지만 지금은 잘한다.
이 운동 덕분에 난 86KG에서 70KG까지 살을 감량할 수 있었고 체력도 좋아지고 정말 건강해졌다.
그리고 정산에서는 부지런함을 배웠다.
덕분에 이제는 누가 깨우거나 알람이 있으면 잘 일어나게 되었고 전처럼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난 아직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직 난 정산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게으름을 완벽하게 떨쳐낸 것도 아니었다.
1년만으로는 아직 내가 완벽히 변한 것 같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뭔가 좀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 기수인 비밀병기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4) 끝, 그리고 시작
8기 여행이 끝나갈 때쯤, 써니쌤께서는 또 나에게 1년을 제안하셨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 스스로도 일 년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꼈고 하반하에서 아직 더 배울 게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정말 하반하를 다시 가야 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게임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또 다시 게을러지고 시간을 낭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과연 내가 한국에 남아있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을 해봤는데 왠지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난 다시 하반하 비밀병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3. 비밀병기
(1) 내적 갈등
그렇게 난 하반하 비밀병기를 다시 선택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많은 내적 갈등이 있었다.
막상 한국에서의 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8기가 끝나고 돌아와 보니 내 또래 애들은 이제 고등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졸업식을 가보니 중 3때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나도 세계여행을 하고 온 것이었지만 나의 또래 친구들과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내가 없는 동안 나랑 조금 친했던 애들은 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그렇게 나는 혼자 남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비해 하반하는 너무 힘들었다.
일단 막내 라인이었던 나는 형님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고 24시간 내내 다 같이 지내다 보니 친해지기보단 오히려 미운 정만 늘어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차라리 일반 학교를 갈 걸이라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일단 한국에서는 시험을 노패스한다고 밥을 굶기지도 않고 낮잠을 자도, 인터넷을 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반하 규칙 밖에서 생활을 하니 난 너무 많은 자유를 느꼈고 내가 왜 다시 간다고 선택했는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1년을 갔다왔는데 다시 가서 사서 고생을 하겠다고 결정한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나의 마음은 너무 혼잡스러웠다.
나도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고등학교 진학을 해서 한국 생활을 즐겁게 하고 싶었고 또 10개월을 외국에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기간동안 게임만 하고 너무 막 살았던 것 같다.
게임만 하고 다시 게으르게 지내다 보니 당연히 어머니와 또 마찰이 생기고 그러면서 내 자신 이 너무 한심해보였다.
8기가 헛수고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 어처피 가게 된 거 다시 한 번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2018년 3월 18일, 내 두 번째 여행을 시작했다.
(2) 점점 초라해지는 나
비밀병기는 8기와 다르게 동갑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작년에는 동갑이 호준, 원혁 밖에 없었고 막내라인이었지만, 이번에는 동갑들도 많아지고 동생들도 많이 늘었기 때문에 굉장히 새로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만큼 나의 입지도 올라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아직 정산이 익숙치가 않았다...
물론 나도 잘하고 싶었지만... 비밀병기 첫 정산부터 나는 깨지고 말았다.
정산을 처음하는 애들보다도 정산을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 기수인 내가 정산표 형식에 대해 알려줘야 하는데... 그것마져도 잘 알려주지 못해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 때 아이들의 눈빛은 마치 ‘2년 차가 그것도 못해?’라는 눈빛이었다.
그때부터 점점 초라해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난 정산에서 계속 부진했고 다른 애들에게 엄청난 패널티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연히 애들과의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고 애들한테 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2년 차인데도 불구하고 난 정산도, 인간 관계도 엉망이었다.
그렇게 1학기는 엉망이었다.
정산은 계속 부진하고, 동생들, 동갑 애들과의 불화도 계속 생기고 그래서인지 더 열심히 하기가 싫었다.
때로는 어머니와 전화를 할 때 너무 힘들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정말 비밀병기 1학기는 무의미하게 지냈던 것 같다.
(3) 다시 활력을 되찾다
그렇게 점점 하반하 생활을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던 중, 시즌이 찾아왔다.
비밀병기 애들과의 관계가 힘들던 때라 시즌은 나에게 매우 큰 활력을 넣어주었다.
그래서 시즌 애들과 매우 잘 지내고, 시즌 때 했던 모든 활동들도 다 열정적으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반면에 시즌 동안에는 비밀병기 애들을 완전히 등한시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당시에는 매일 다투기만 하던 비밀병기 애들보다는 새롭고 더 다양한 시즌 애들이 더 좋았다.
그래서 비밀병기 애들에게는 조금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시즌이 가고 나니, 다시 비밀병기 애들만 남았고, 시즌이 떠나갈 떄 너무 많이 정들었는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시즌을 통하여 난 많은 교훈들을 깨달았다.
그동안 비밀병기 애들과 불화가 있었던 이유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1학기 때를 되돌아보면 사실 처음부터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는데 애들이 나를 위해 해주는 말들을 자존심상해서 무시하고 정산에서 막대한 피해를 실수를 해도 적반하장으로 나왔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시즌 때처럼 좋게 지내려고 했다면, 좀 더 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산을 2년차인 만큼 열심히 잘했다면, 1학기 때 난 그렇게 힘들지 않고 애들과도 더욱 잘 지냈을 것이다.
그래서 2학기 때는 마음가짐을 바꿔보기로 결심을 했다.
(4)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2학기
2학기가 시작되자, 일단 난 관계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잘못을 하면 먼저 사과를 하려고 노력을 했고 애들이 하는 말들을 좀 더 귀 기울여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니, 확실히 1학기 때보다 애들이 나에게 좀 더 호의적으로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난 나의 문제점을 늦게 자각했을까?
이렇게 관계각 개선되고 나니 확실히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내 스스로도 활력이 다시 솟아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활동들은 다 열정적으로 해보려고 노력했다.
승마도 열심히 하고 정산에서도 전보다 패널티가 줄고 시키는 건 불만 없이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정산을 못했고 게으름이 아직 줄어들지가 않았다.
하지만 엣날에 비해 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치려는 시도를 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난 비밀병기가 너무 아쉬웠다.
1학기 때부터 제대로 했다면 후회될 게 하나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비밀병기는 정말 확실히 8기 때에 비해 더욱 배운 게 많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해였다.
(5) 한 번 더
비밀병기가 끝나갈 때쯤, 써니쌤께서 나에게 9기 제안을 하셨는데 그래서 난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밀병기는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았고 아직 한국에서의 계획도 불투명하고 1년을 더 갔다오면 내 스스로도 많이 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해 9기를 한 번 더 가게 되었다.
비병이 끝나고 나서 돌아온 한국에서의 마음가짐은 꽤 평온했다.
8기 때는 비병이 너무 가기 싫었지만 9기는 내 스스로 내 문제점들을 잘 파악했기 때문에 선택한 길이여서 가기 싫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평온해져서인지 이번에는 그렇게 막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검정고시 학원도 다니고 배드민턴 학원도 다니는 등 전보다 자기 계발 시간을 조금 더 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서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친가 쪽도 방문하는 등 한국에 있는 동안 그래도 꽤 보람차게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은 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또 어머니를 걱정시켜드렸다.
비병 애들과 같이 게임을 하느라 새벽에 게임을 하는 횟수가 많아져서 어미니께서는 또 많이 한다면서 걱정을 하셨다.
그래서 아직 내가 바뀌려면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 늦게까지 컴퓨터, 핸드포늘 하다 보니 자연스레 늦잠을 자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게으름이 또 슬금슬금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욱 9기가 나에게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의 문제들을 고쳐 오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난 2019년 3월 17일, 나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했다.
4. 9기
(1) 내 인생의 첫 회장
비행기를 타면서 올해는 과연 어떨지 너무 설렜는데 작년보다 더 많은 애들과 여행을 하게 되었고 20살이 넘는 형님들도 계셨다.
올해는 작년 비병처럼 인간 관계 면에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3년 차인 만큼 내가 나서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가짐을 다르게 먹어서인지 올해는 처음부터 순조로웠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잘 되었고 작년에 많이 싸웠던 준우와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정산도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애들에게 매우 잘 가르쳐줬다.
그래서 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데...
바로 회장이 되어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난 인생을 살면서 회장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회장을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난 1학기 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회장 선거에 나가면서 정말 마음 속으로 절실히 기도했다.
나의 기도가 통했는지 난 동군이를 가볍게 제치고 회장이 되었고 지윤이와 함꼐 1학기 회장단이 되었다.
회장단이 되고 나니 기분이 정말 너무 좋았다.
내 인생의 첫 회장이 된 것이었기 때문에 느낌이 너무 새로웠고 정말 뿌듯하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일단 확실한 건 많은 애들이 날 뽑았다는 것이고 그만큼 내가 첫 이미지를 잘 만들었다는 소리였기 떄문이다.
애들이 날 믿어준 만큼 나도 맏음에 보답하는 회장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의 1학기 회장이 시작되었다.
(2)책임의 자리
막상 회장이 되고 나니, 회장은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순탄하지 않았다.
정산에 대한 공지나 주의사항을 내가 다 숙지하고 있어야 했고 써니쌤과 애들 사이를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이라 만약 내가 공지를 실수하면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첫 회장은 실수가 많았다.
처음부터 정산을 받으러 가는 것을 깜빡해서 애들 모두에게 큰 빚을 지게 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애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리더의 자리라는 것은 정말 큰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부지런해야 하는 자리인데 나의 게으름 때문에 참 많은 정산 낙제들과 공지 실수 등이 많았고 그래서 난 애들에게 좋은 회장보다는 최악의 회장으로 기억되었다.
회장을 하면서 참 많은 질타와 비난을 받았고 그러면서 회장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회장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생각해도 정산 낙제와 공지 실수 등의 실수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죄책감이 많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시즌 때도 나의 무능력함을 깨달았다.
시즌 때도 실수를 많이 하다 보니 시즌 애들은 오히려 동군이가 나보다 더 회장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3년차인 내가 또 2년차에게 밀리고 있다는 게 너무 자존심 상했고 무능력한 나에게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시즌 때 제대로 회장 노릇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경 형님이나 동군이가 문제 해결을 더 잘했고 난 오히려 또 정산에서 부진하고 시즌 때는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내 한계를 깨닫고 2학기 때는 재경 형님이 회장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재경형님이 더 회장 일을 잘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즌 때도 정산 낙제를 받을 뻔했는데 재경 형님이 살리셨고 여러 가지 공지 전달이나 회장 역할을 나보다 훌륭히 해내셨다.
이런 점들을 보았을 때 나는 회장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시간은 빠르고 나의 1학기 회장은 임기가 어느덧 끝이 났고 회장을 해보고 느낀 것은 리더의 자리는 신중하고 진지하고 책임감이 막대한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힘든 1학기 회장이었지만 회장 자리를 해봄으로써 난 더욱 성숙해진 것 같고 좀 더 진지해진 것 같다.
(3) 슬럼프
올해 초반에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4가지의 목표를 출정식에서 말했었다.
첫 번째는 정산 1등을 꾸준하게 해보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영어를 열심히 하는 것, 세 번째는 게으름 없애기, 네 번째는 운동을 꾸준히 하기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대로 지켜낸 것이 거의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슬로바키아 시절에는 정산에서 빚을 지지 않았고 영어를 위해 독해, 단어 두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노패스를 받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도 조금 힘들었지만 할 일을 미리미리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거나, 운동은 도윤이와 같이 하려고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난 또 다시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여행 초반 때는 패널티를 받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자기 합리화를 하며 노력하지 않기 시작했고 영어도 필요성을 못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할 일을 미루고 어떻게든 더 자려고 하는 등 게으름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운동도 당연히 귀찮아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또 당연히 3년차인 만큼 비난을 3배로 받게 되었고 내 신새는 정말 처량했다.
이번 년도는 정말 바뀌겠다고 해서 온 것이었는데 또 난 다를 게 없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잘하고 오겠다고 떵떵거리고 왔었는데...
또 다시 이러고 있는 게 정말 걱정스러웠고 정말 면목이 없었다.
과란다 때가 제일 심했는데 그때는 5시 가상에 7시 테스트라 아침잠이 많은 나는 결국 버텨내지 못했고 결국 난 이 때 노패스를 밥 먹듯이 하며 빚더미에 앉아버렸다.
그렇게 또 작년과 비슷하게 1학기가 끝나가던 중, 시즌이 찾아왔다.
(4) 인간 관계란 음식과 같다
시즌은 새벽에 찾아왔다.
그래서 패딩을 입고 쌀쌀한 날씨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시즌을 맞이 했다.
작년 시즌 애들과는 관계를 꽤 원만하게 잘해서 평이 좋았는데 올해 또 이렇게 새로운 아이들과 3주를 같이 지낼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시즌 애들과 친해지기 전에 너무 힘든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선을 어디까지 잡아야 하나? 였다.
작년에는 너무 시즌 애들하고만 놀고 동생들의 심한 장난들도 다 받아주며 완전 시즌처럼 지냈는데 그러면서 본 기수 애들하고는 많은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 내가 생각해야할 것은 소속감, 그리고 선을 정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게 쉽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시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소속감을 지키면서 지내고 싶었는데 내 눈에는 벌써 시즌 애들끼리 뭉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고 또 그 사이에 껴서 시즌 애들하고만 놀면 또 본 기수 애들하고는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참 많이 갈팡질팡 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은 내가 느끼기에 너무 예의가 없는 애들이 많았다.
모두가 보는 문집이라 실명을 말할 수는 없지만 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계속 도를 넘거나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 등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애들이 많았다.
그리고 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물건을 너무 함부로 빌린다는 것이었다.
시즌 애들은 분명 한국에서 학용품이 부족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9기 애들의 학용품을 많이 빌리고 막 쓰는 것을 많이 봤는데 보면서 정말 배려심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한국에서 막 온 애들이라 그런지 욕과 반말을 많이 하는데 그거까진 봐줄만 했다.
하지만 형님에게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 애들이 좀 많이 보여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게다가 시즌 애들은 너무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것 같아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힏들었다.
그렇게 시즌 때는 이런 고민들과, 그리고 애들이 갑자기 불어나니 회장으로서 통솔해야 하는 게 더 많이 생기니 내 성격도 신경질적으로 변해서 작년보다 시즌 애들에게 화와 짜증을 많이 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올해 시즌을 자기 평가를 해보자면 난 잘 지내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는 나랑 맞는 애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1년 여행을 끝내고 남는 애들은 결국 본 기수 애들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본 기수 애들과의 관계를 더욱 신경쓰느라 물과 기름처럼 시즌 애들과 잘 섞여지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점들을 통하여 느낀 점은 인간 관계란 정말 음식 같다는 것이다.
음식은 셰프의 실력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맛이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셰프를 나라고 치고 음식을 결과라고 치자.
음식은 모든 식재료들이 조화를 이루고 셰프의 간에 의해서 완성이 된다.
여기서 식재료를 씻고 썰고 조리하는 과정은 처음에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단계라고 할 수있다.
식재료들을 잘 조합해서 골고루 익도록 해야 베이스가 완성되니까.
그리고 간을 맞추는 과정은 나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그 사람과 잘 맞추려고 노력을 해야 그 사람도 나랑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다.
싱겁거나 짜면 실패한 거고 간이 맞으면 이제 매우 맛있는 음식이 완성되듯이 나와 그 사람은 서로 잘 맞아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난 음식을 매우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도 음식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은 나에게 조화롭게 지내는 법을 좀 더 깨닫게 해준 것 같다.
(5) 후폭풍
시즌이 끝나고 나서, 9기에 엄청난 폭풍이 찾아왔다.
바로 여행 초부터 시작된 연애 문제가 이번 시즌 때 크게 터져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 써니쌤께서 한 번 봐주시고 2학기를 평화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버렸다.
와이파이 사건이 터져 버린 것이었다.
사건의 정황은 이랬다.
시즌 때 최주원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동감이라서 꽤 가깝게 지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원이가 킨들로도 와이파이가 되냐고 물어보면서 자기 여친과 너무 연락하고 싶다면서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리파인 나는 당연히 빌려줬고 사실 나도 그렇게 인터넷을 좀 이용했었다.
나는 설마 주원이가 우리를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틀렸고 주원이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모든 사실을 불어버렸다.
더 어이가 없던 사실은 내 것 말고도 9기 애들의 킨들을 돌려가면서 썼는 것인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입이 쌀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빌려주기 전에 인터넷 사용은 금지라고 말을 했는데도 자기를 믿어도 된다고 말을 하면서까지 빌렸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는지 정말 신기했다.
심지어 하반하 전체 인터뷰를 했을 때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물어봤는데 약속, 신뢰도라고 대답해놓고 행동은 이게 뭔가.
물론 나도 인터넷을 썼기 때문에 내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시즌동안 최주원이랑 친해지려고 했나에 대한 후회가 들고 아주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겉모습과 행동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시즌 때 내가 최주원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재미있을 때는 재미있고 진지할 때는 진지해지고 시즌 애들도 최주원을 잘 따르는 것으로 봐서 사람이 꽤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의리도 있어 보이고 말이다.
하지만 시즌 때의 그 모든 행동들이 다 가식이 아니였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한달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다 알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나 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우린 거의 1달 정도를 다시 써니쌤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느라 고생을 했다.
그러는 동안 최주원 그 녀석은 한국에서 편안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화가 났고 써니쌤이 늘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라고 하셨던 게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어쨌든 이 일이 터지고 우리는 원래 방학이었지만 학기 중보다도 더 불편하게 지내야 했다.
연애 문제에 이어 와아피이까지 겹치니 써니쌤은 내가 3년동안 보았던 것 중 가장 크게 화가 나셨고 우린 그날 이후로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했다.
되도록 정숙하려고 노력했으며 낮잠을 자지 않고 밖에 항상 나와서 뭐라도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써니쌤께서 매를 드셨기 때문에 너무 두렵고 힘들었다.
이게 다 우리가 자초한 일이었고 그 때 왜 그랬을까, 왜 막지 못했을까 이런 저런 후회들을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하여 난 또 신뢰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신뢰란 레고랑 같은 것 같다.
레고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레고로 나만의 창조물을 만드는 것은 꽤 힘들고 오래 걸린다.
그렇게 힘들여서 만든 레고를 전시해 놓았는데 만약 실수로 떨어뜨린다면 순식간에 다 와르르 부서지고 만다.
신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뢰도를 쌓는 것도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다시 쌓아올리는 건 다시 부서진 레고를 조립하는 게 힘들 듯이 신뢰도 다시 쌓아올리는 것은 힘든 것 같다.
아마 써니쌤은 이번 일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실망을 하셨을 것이고 전보다 우리를 더 신뢰하지는 못하실 것이다.
이렇게 난 신뢰가 인간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앞으로의 인간 관계에서는 절대 신뢰를 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최근 들어서 17살 동생들과의 다툼이 잦아졌다.
동생들이 날 너무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서 많은 말 다툼이 있었는데 생각을 해보면 내가 형님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때가 많은 것 같다.
정산에서도 많은 피해를 주고 동생들에게도 형님으로서 배려를 해줘야하는 부분이 있는데 난 그저 형님이라는 것만으로 배려를 안한 적이 많고 그것 때문에 동생들도 아마 1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막바지에는 좀 더 배려심있는 정우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인데 일단 탐욕부터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음식이 남아도 동생들부터 챙기는 형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6) 3년을 되돌아 보며...
계산을 해보면 난 내 10의 4분의 1 정도를 하반하에 있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벌써 끝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하반하는 정말 내 인생을 바꿔준,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다.
하반하를 다니면서 그동안 내가 정말 인생을 너무 막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행동, 생각 모든 걸 다 바꿔주었다.
하반하를 내 인생에서 한 마디를 표현하자면 번데기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벌레가 번데기 안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힘들게 성장을 하고 그 번데기 안에서 나오면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것처럼 나도 하반하를 통하여 더욱 성숙해지고 성장하였다.
옛날에 돼지였던 나의 몸은 근육질까진 아니지만 건강한(?) 몸으로 바뀌었고, 옛날엔 설거지도 못했던 내가 요리도 해보고, 이기적이고 나만 생각했던 내가 이젠 좀 더 넓게, 그리고 깊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나의 머리를 성장시켜 주었다.
예전에는 인간 관계를 정말 못했었는데 지금은 깊이 고민을 해볼 정도로 내 자신을 더 진지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조금씩 놀라는데 왜냐하면 이제 얼굴과 몸 모두 어린 애 티를 버리고 어른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깨는 더 벌어졌고, 근육도 많이 생겼고, 얼굴도 좀 더 세련되게 바뀐 것 같다.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내가 하반하 3년을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아마 석진 형님만큼의 돼지가 되어있었을 것이고, 공부는 안하고 게임만 하며 폐인처럼 살았을 것이고 어머니와의 관계는 정말 최악이었을 것이다.
물론 하반하가 나에게 쉽지는 않았다.
앞에 썼던 것처럼 정말 많은 시련들이 있었고 솔직히 말해서 중간에 포기하고 한국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하반하를 선택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고 한국에 돌아가면 또 내가 어떻게 될지 뻔히 보였다.
그래서 힘들어도 어머니 생각을 하며 정말 열심히 버텼던 것 같다.
써니쌤께서 에콰도르 과란다에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어내려면 수고로움을 동반해야 한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을 해보면 정말 명언인 것 같다.
내가 하반하라는 수고로움을 동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멋있는 몸, 성숙된 머리, 자신감, 확실한 계획과 꿈들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하반하 3년, 다른 애들을 1억 낭비라며 뭐라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정말 숭하고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평생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다.
이제 난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하게 앞으로 찾아올 고난들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왜냐고?
왜냐하면 난 다른 애들이 학교를 다닐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른 애들은 책에서나 보며 부러워할만 곳들을 다 가봤고 온 몸으로 경험하고 힘든 시련들을 버텨내며 강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난 인생이 두렵지 않다.
이제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난 하반하에서 겪어본 것처럼 슬기롭게 잘 해결하며 하늘 높이 비상할 것이다!
5. 에필로그
이제 하반하가 끝났다.
난 이제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 생활에 다시 적응해서 살아갈 것이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사회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2년 차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서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는 확실한 계획이 생겼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한국에 갔을 때 늘 문제가 되던 것이 게임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어머니와 게임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절제를 할 것이다.
아예 하지 않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노력을 해볼 것이다.
만약 어긴다면 내 손으로 갖다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계획은 두 갈래 길이 있는데 대학과 호주 워홀이다.
써니쌤과 어머니는 호주 워홀을 가라고 하시는데 솔직히 난 자신이 없다.
그 이국 땅에서 혼자 독립을 해서 살아가야 하고 매우 힘든 도전이 될 것이다.
게다가 대학을 가지 않는다면 유치원 선생님이 되기에는 힘들 것이고 나의 장래희망이 또 바뀌겠지만 여행이 끝나기 전에 확실하게 선택해서 뭐든지 열심히 해볼 것이다.
이젠 더 이상 하반하를 가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에 돌아가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부지런히 살아서 나에게 하반하를 3년 동안 보내주신 어머니께 꼭 보답해드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3년동안 친자식처럼 키워주신 써니쌤, 대장님에게 매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고 그 외에도 3년 동안 같이 했던 찬희쌤, 윤쌤, 진성쌤, 민승쌤, 해인쌤, 충열쌤, 종하쌤 등 모든 선생님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나중에 꼭 성공해서 하반하 건물에 방문할 때 꼭 문을 박차고 들어오기를 기약하며 나의 마지막 문집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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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학과 호주 워홀 정말 고민 되겠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3년동안 하반하의 여행이 큰 힘이 될거야~열심히 한다면 틀린 선택은 없더라 목표를 향해서 가는 길이 다른 것 뿐인것 같아 정우야 힘내 하반하 부모님 모두 응원하고 있단다♡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구나. 성장의 기초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야. 하반하 3년동안 고민이 계속 성숙해왔구나. 이제 행동해야 될 때가 되었겠지. 왜 나는 이것 밖에 안되는가라는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지금 너의 모습을 인정해. 그리고 여기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길 바래. 3년동안 하반하 선생님과 친구들, 형님들, 동생들의 도움을 받았다면 한번 홀로서기에 도전해 보렴. 정우는 잘 해나갈거라 믿어.
멋진 시간 멋진 경험들이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하겠지요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셔요
정우의 3년 총정리 문집
고맙게 잘 봤어ㆍ
정말 큰 배움이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던것 같다ㆍ
앞으로의 인생은
근육질의 멋진 정우로
문을 박차고 다니는 사람으로 살길 바란다^^
어느누가 자기 인생중 3년이라는 긴시간을 정리해볼수 있는 기회를 갖을수있을까~
하반하이고 3년차인 정우이기에 가능하겠지~
고생많았어. 기특하고 대견하다.
많이 부딪힌만큼 많은 통증이 따랐겠지만 그만큼 정우는 3년전 정우와는 비교할수 없는 성장한 정우가 되어있는거겠지.
앞으로 써니쌤이 말씀하신 정우 인생을 위해 기꺼이 수고로움을 선택하며 앞으로의 정우의 인생을 기대해가는 하반하 형님이 되길 응원할께!!!!
정우의 문집속에, 3년의 수고로움과,
3년의 내적외적 갈등을 통해, 발전된
모습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어,
읽는내내, 정우의 다양함을, 얼굴표정을
느낄수가 있었어요.
3년의 번데기 시절이 지났으니,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되어, 힘차게,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길바래요.^^
늘 코믹하고 유쾌해보이는 정우도 속으로 좌충우돌 많이 힘들었구나.
살아가는 데 있어 진실로 필요한 여러 가치들을 체득한 하반하 3년은 정우의 인생에 스며들어 큰 역할을 할꺼야.
신뢰를 쌓는 것이 레고 같다는 말이 확 와닿네..
정우가 가지고 있는 유쾌함과. 하반하의 책임감, 부지런함 등등을 더해 앞으로 또다른 인생 2막을 펼치길 바란다.
하반하 3년이 아무나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얻어맞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똑이같아.
정우가 겪은 넘어졌던 경험이 결국 정우 자신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으로 변화될 것을 믿는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더이상 말하면 잔소리겠지? ㅎㅎ
3년동안 고생많았어 정말 장하다 아들!
끝은 또다시 시작을 의미한단다
내년에 마지막 10대를 계획한대로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가다보면
어느덧 원하는 지점에 와 있을거야 언제나 용기와 자신감 잃지말고..
엄마는 항상 응원하고 기도한단다
정우가 하고싶은일 하면서 하늘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9기생 첫 미팅때가 생각나는구나 정우의 친절함과 배려로 모두 낮선 분위기 속에서 좀 더 쉽게 적응 할수 있었단다
3년이란 시간 속에서 힘들게 부딪치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법을 깨우치며 많이 성장한것 같구나
앞으로의 삶에 큰 힘이되는 좋은 기운들도 가득 저장되었을거라 믿어
정우의 밝은 얼굴로 앞으로의 인생에도 밝은 빛이되길~
정우의 이야기를 읽었드니 많은 일들이있었구나~이제 정우 자신을 찾아서 나도 기쁘다!꼭 하반하 방문할때 문을 박차길 응원할께! 난 정우의 의리있는모습이 멋지다~
출정식때 북을 즐기며 너무 신나게 쳤던 정우가 꽤 인상적이고 보기좋았어..항상 밝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고민이 많았구나..그래도 그 고민을 통해 정우가 성숙해지고 발전할수 있는 기회가 되어 다행이야..꼭 성공해서 하반하 건물에 방문하길 응원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