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대교가 건설되며 뭍과 가까워졌지만, 섬을 좇는 사람들의 '안단테(느리게)' 템포에 대한 로망은 여전하다.
증도에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새로 지은 멋진 펜션보다 면 소재지에 있는 소박한 민박에 하룻밤 묵으면 좋다. 자식 기르느라 농사지으며 평생을 보냈다는 주인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눠야 제 맛이다. 섬을 오가는 버스가 20~30분 늦는 것은 넉넉한 품새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뚝뚝해 보여도 섬에 대한 설명을 찬찬히 늘어놓는 기사 아저씨와 맞장구칠 때쯤이면 슬로시티 증도 감상에 필요한 워밍업은 갖춘 셈이다.
길이 뚫리고 우전해변 쪽이 번잡해졌지만, 느린 여행을 즐기려면 증도 주민이 주로 거주하는 면 소재지 쪽에 숙소를 잡는다. 새벽이면 닭이 울고, 밤이면 골목에 개가 짖는 수더분한 동네다. 세월과 탈것이 아무리 빨라도 섬사람의 인심조차 앗아 가지는 못했다. 이곳에 태평염전, 짱뚱어다리, 한반도 해송 숲까지는 제법 멋지고 느린 길이 기다린다.
이른 새벽이면 태평염전 길을 걷는다. 해무가 걷힐 무렵 염전 길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갯벌 염전에는 소금 창고들이 가지런히 늘어섰다. 그 길이가 3km에 달한다. 이곳 갯벌 염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전체가 약 460만 m2로 여의도 면적 2배에 가깝다. 태평염전 전체가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증도가 세계슬로시티로 지정되는 데도 갯벌 염전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 2007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증도를 아시아에서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하며, 인류의 생명을 위해 갯벌 염전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그 가치를 인정했다. 길을 걷다 보면 생각 없이 스쳐 지나던 염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세월에 빛바랜 나무 창고와 소금을 싣고 오가던 나무 수레가 낯설게 다가선다. 창고 가득 쌓인 천일염은 한때 천시 받던 염부들의 땀방울로 얻어낸 귀한 결과물이다. 국내 생산되는 천일염 가운데 6%가 이곳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