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절정으로 치닫는 집 앞 화채봉 10월에 접어들고 가을이 익어갈 무렵, 세 자매는 곱게 채색될 화채봉을 마음에 안고 영월행을 강행했다. 그곳을 향함엔 언제나 여러 가지 목적이 있으나 우선은 일상에 찌든 영혼의 휴식이고 잠시나마 답답한 공간의 이탈이다. 고작 3, 4일의 집 떠남이지만 그 시간은 또 다른 일상을 위한 재충전의 환경이고 의미 깊은 심적 휴식의 공간이다. 짧은 여행에 동반자의 부재함에도 함께 숙 박할 자매가 존재함에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굳이 관광 차원이 아니더라도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숫자에 지배받는 빈곤 한 육신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세속적, 감감적 느낌을 통째로 얻는 기쁨도 만끽한다. 창밖의 산야는 사계의 특성으로 숨 쉬고 저 마다 고유의 생김새로 곱게 채색된 그 오묘함이 순간 조우하는 겸허의 마음은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여러 단체 혹은 절친들과 함께하는 단풍놀이도 좋지만, 자매끼리의 여행은 운행 중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부담 없는 매 력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우리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비워 둔 집에 앉은 먼지를 깨끗이 털고 닦아내는 것이 급선무로 각자의 일손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청소가 끝나면 가장 편안한 복장으로 환복하고 각자의 자유로 운 시간에 집중한다.층층이 나이 차이도 당연하지만 이미 황혼에 진입한 세월임에 세 자매의 사고도 살아가는 패턴도 거의 비슷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대화가 연속되고, 인생을 논하고, 작은 소망을 피력하는 혈육 간 넘치는 정과 사랑은 서로의 생각을 존 중하고 힘을 실어주는 긴밀한 유대감의 철옹성이자 늘 애잔함으로 깔린 서로의 연민이다. 영월, 10월의 장미꽃 온종일 햇귀가 덱크 위에 뻗치는 한낮에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는 막내. 앙상한 몸울 여과 없이 들어낸 고추나무, 동생의 수고가 보물 찾기 하듯 하나 붉은 고추는 보이지 않네. 동생이 어렵사리 몇 개 건진 붉은 고추는 불타고. 마지막 영월행 때 이웃 주민이 자기 밭 언덕에 심어 누렇게 잘 익은 호박 한 덩이를 주셨다.우리는 고맙게 받아 쥐고는 잠시 고민 끝에 이 호박은 여기 두었다가 다음에 와서 호박죽 끓이기로 약속했다.그날이 이번 11월 초입의 영월행이었다. 약속대로 동생이 쌀 한 되를 빻아 왔고 호박죽에 첨가할 곡물도 준비해 왔다. 사실 나도 동생도 호박죽을 실제 끓여 먹은 경험이 없었지만 매사 완 벽성을 요구하는 언니는 잘 알고 있었다.호박씨가 농부의 정성과 자연의 혜택으로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살아 남기 위한 본능적 방어가 만든 단단함의 강도는 정작 무쇠로 만든 갑옷이다. 애당초 천적을 염두에 둔 그 단단함에 세 자매 도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호박에 묻힌 칼이 세 자매의 힘을 테스트하고. 기어코 내린 결론은 여러 등분으로 썰어 먼저 삶은 후 호박 껍질을 처리하기로 했다.우선 무딘 칼날을 좀 더 예리하게 가다듬고 이등분으로 쪼개기 위해 호박 중심부에 칼날을 고정시켜 손잡이에 힘을 준다 어찌저찌 칼날은 호박 속에 묻혔는데 뽑으려고 안 간힘을 쓰나, 정작 묻힌 칼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결국 호박 한 덩이에 세 자매가 메달린다. 각자 온 힘을 쏟고 칼잡이인 언니가 사력을 다하니 비로소 칼은 자유로운 움직임이 되고 두 동강 난 호박 속의 진면이 적나라하게 전시된다. 난 어릴 적 엄마가 만드 시는 호박죽을 곁에서 본 적은 있지만 숙성된 늙은 호박 안의 생김새가 이리 예쁘고 찬란한진 미처 몰랐었다. 정말 보석같은 익 음으로 호박씨앗과 거미줄처럼 엉긴 주홍색 속살의 노란 분이 너무나 풍요롭고 아름다워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죽으 로 끓여 먹기 아까운 호박의 참모습을 보니 새삼 호박꽃도 꽃이냐고 이쁘지 않은 대상을 비유하고 조롱할 때 사용한 언어적 학 대가 천부당 만부당할 뿐만 아니라 호박엔 억울하고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부가 탄 박인들 이리 아름다울 수가 있으랴. 난 옛날부터 호박꽃을 단 한 번도 타박한 적이 없었다. 늘 그런 호박꽃을 볼 때면 저절로 되뇌어지는 말은, 꽃은 다 이쁘다였다. 어디 그뿐이랴, 온전히 영근 호박의 식용 성은 무궁무진하지 않은가. 약성과 영양적 가치로서도 으뜸일 뿐만 아니라 어떤 부작 용도 초래하지 않는 완전식품 매체이다. 특히 여성 산후조리에 도움 되는 약성과 영양소 적 가치는 당연히 동의보감에도 기록 될만한 완전 식물이 아닐까. 우리는 잘 영근 호박에 보답하는 길은 정성껏 조리하여 맛있게 먹어 노쇠한 육체에 골고루 영양소 를 공급해주는 결론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호박죽 타령에 침을 꼴깍 삼키는 긴장감도 마다할 수 없었다. 혹 훗날을 위해 나는 그 순서를 유심히 꼼꼼히 시선에 담는다. 물 한 들통에 작게 여러 등분한 호박을 가득 넣고 오랜 시간 삶는다. 딱딱한 껍질이 곤죽이 되도록 삶아 내어 껍질을 제거하고 노리디노린 노란 속살과 절반 익힌 팥과 또 다른 종류의 콩을 첨가한다. 우리 세 자매는 아니 특히 나는 완성된 호박죽은 이제 시간 문제라는 것을 보고 은근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얼마나 기다린 호박죽이었던가, 난 정말 호박죽을 좋아했다.그럼에도 상 품화된 호박죽은 찾지 않는다. 식성이 너무 토속적임에 그런 버릇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가열된 인덕션 위 뚜껑 열린 들통 속 에서 주홍색 고운빛깔이 파문을 일으킨다. 찰나를 놓칠세라 지켜보는 세 자매 중 언니는 쌀가루에 찬물을 약간 섞어 범벅처럼 버무려 들통 속에 손가락 사이로 슬슬뿌린다. 어느새 긴 나무주걱으로 이리저리 젖는 손길은 범벅 타령의 흥겹고 경쾌한 가락 이다.가열된 호박죽은 동그란 파문을 일으키며 퍽퍽 소리 내는 모양새가 딱 마그마가 끓어 분출하는 화산 폭발 현장같았다. 한 들통 가득 담은 호박인들 나의 먹성에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순간 한 무리가 튀어서 벽으로 철썩 붙어버림에 우리는 놀라서 소리치며 들통 옆에서 잽싸게 뒷걸음 친다. 드디어 호박죽은 완 성되고 30여 년 만에 손수 만든 호박죽을 집에서 오롯이 한 그릇 턱 앞에 놓고 보니 감회는 필설로 부족했다. 푸짐하게 각자 한 그 릇씩 앞에 두고 앉은 세 자매의 흡족한 모습에서, 삶의 행복감이 아침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먹성이 탁월한 나는 자매들과 대화할 여유도없이 뜨거운 호박죽을 연신 입김으로 후후 불어 가며 음미하기에 바빴다. "세상에 먹는 거보다 즐거운 게 있으랴! " 고 떠들 어 대던 학창 시절의 구호가 생각났다. 호박죽은 엄마가 가신 후 집에서 먹은 적이 없었다. 옛날 아줌마가 계실 때도 호박죽은 단 한 번도 해 달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일이 너무 복잡하고 번거로운 줄 알았던 탓이었다. 처음 끓여 먹는 죽 맛도 좋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옛날 엄마가 해주실 땐 단맛을 내는 당원인지 사카린인지 첨가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그걸 깜빡 잊어버렸다. 꿩 대신 닭이라고, 부득이 설탕을 가미하나 옛날 엄마의 맛에 각인된 깊은 맛은 여전히 빠진 듯했다. 한편으론 늙은 미각 탓이라고 위안 아닌 위안으로 아쉬움과 실수를 합리화 하며 키득거리는 세 자매의 모습이 꽤 짓 궂어 보이나 그 참에 올겨울 12월 마지막 나드리할 때 한 번 더 완벽한 호박죽 맛 내기를 시도하기로 약속한다. 맛이 있느니 없느 니 하는 그 와중에도 먹성 좋은 내가 호박죽 절반을 해치우고 남은 죽 또한 내가 다 가져 왔었다. 언니와 동생은 내가 좋아하는 것 들은 언제나 내게 양보하는 입장이다. 당연하게 뻔뻔하게 받아오는 나의 욕심이 때로는 부끄러움도 날려버린다. 나의 급한 마음에 담은 호박죽이 정갈하지 못해(나의 솜씨) 엄한 언니 솜씨를 나무랄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언니와 난 그곳 원주민이 농사지은 고추 20근을 구매해 젖은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귀가하는 길, 황둔에서 고춧가루를 곱게 빻아 막냇동생과 작은아들에게 줄 양을 분배하고, 한 해 영월의 갈무리를 트렁크에 가득 채워 집으로 향하는 기분은 바로 만추의 풍요 로움이었다. 잘 모셔 온 호박죽도 나만의 먹거리로 나 홀로 잘 데워 먹었다. 아들 내외는 호박죽엔 관심 없듯이 손주들은 그런 음 식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른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여러 단계의 성숙기를 거쳐 완벽한 자신의 고유성을 형성한다. 그것이 쇠잔함이든 완벽함이든. 하물며 호박 한 덩이에 눌러앉은 시간이 이토록 아름다운 모양과 맛을 창출하는데 늙은 나는 무엇인가에 기가 꺾인다.설령 성숙 의 단계를 지나면 곧 쇠함이고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은 모두 완벽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에 나날이 맞서 온갖 풍상으로 영글어가는 자연의 셀 수 없는 이름들은 못다 읊을지언정, 한해살이 식물인 늙은 호박의 위력은 대단했다. 단단한 갑옷처럼 영근 늙은 호박은 단 한 가지도 버릴 게 없는 완전한 수확물이고, 덩굴 째 굴러들어오는 복의 상징성으로 손색이 없는 이름이기도 하다. 호박, 애호박도 아닌 늙은 호박의 실체는 주홍빛 속살에 걸맞은 맛 과 영양과 약성이란 삼위일체가 건강식품에 부합하는 완벽한 위력의 열매이고 먹거리였음을 감히 말해 본다, 호박 주인이신 이웃 아재 부인이 그날 담은 김장김치와 삼겹살 수육,(전라도 김치) 수육은 진순이 몫이고 김치는 내가 싹쓸이 해왔음 원주민이 지은 고추 농사, 올해도 스무 근을 구매해 언니와 손질하는 중. 호박죽 너무 많이 드셔서 동생과 함께 소화 차원의(배 꺼주기) 운동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