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러운 자유(롬8:18-25)
갈등
1. 파리 올림픽이 오늘 밤 폐막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예상보다 두 배 이상 잘해주었습니다. 금메달을 다섯 개 정도 예상했는데 13개 이상을 받았습니다. 금메달리스트들 가운데는 고등학생들도 있고, 올림픽 경기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그중에 베트민턴 안세영 선수가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1위에 이어 올림픽 금메달까지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이 쾌거를 이루고 안세영이 기자 회견을 통해서 그동안 마음에 두고 온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베트민턴 협회를 향한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어요. 양궁 대표 선수 선발처럼 공정성도 없고,
선수가 부상을 당해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등 잘못된 관행을 이야기하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안세영은 올림픽에서 우승 후 이 이야기를 하려고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면 안 된다는 유명 스포츠 선수의 탄식입니다. 이 기자 회견 후 안세영을 보호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귀화하라, 안세영은 영재(100점)를 넘어 천재(1000점, 10000점, 무한대, 서사와 낭만을 이야기하는)이다-일반 선수와 동일하게 관리해서는 안되다는 말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과 피조물-자연의 탄식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피조물들이 탄식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때(19절)를 고대하고 있어요.
2. 피조물의 상황은 20-21절,“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피조물은 그것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지만 허무한 데 굴복하고, 썩어짐의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편지를 보냈던 때부터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갈수록 더할 것입니다.
만물이 썩어져 허무한 데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22절,“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피조물들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이 시작되고 계속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이렇게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이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사도 바울은 피조물의 탄식 이야기에 이어 그리스도인들도 탄식한다고 말했습니다. 23절,“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고 표현했어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성령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들을 일컫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포함됩니다.
하나님 자녀들의 탄식을 말하며, 사도 바울은 양자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되는데 바울은 굳이 양자라고 말했어요. 15절에서도 양자의 영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구별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겸손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탄식 가운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탄식은 몸의 속량이 이뤄질 때까지라고 했어요.
4. 사도 바울은 소망 이야기로 오늘 본문을 맺었습니다. 24-25절,“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릴지니라.”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니고 소망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소망) 참음으로 탄식의 때를 기다리라고 바울이 로마 교회에 권면했어요.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엡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믿음은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 바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선포한 의미가 궁금합니다. 믿음과 소망이 구원에서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 것일까요?
실마리
5. 사도 바울은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 이야기를 했습니다.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면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원죄를 범한 사람들이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피조물(자연)이 에덴에 있을 때와 달라졌습니다. 원죄 이후에 땅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고, 아담은 평생에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없던 가시덤불과 엉겅퀴도 등장했습니다.(창3:16-18)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는 밭을 갈아도 이전만큼 효력이 나지 않았습니다.(창4:12) 노아 홍수 후에는 엄청난 지각 변동과 더불어 날씨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 등 계절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창8:22)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은 이처럼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죄는 사람들이 범했는데, 피조물이 탄식하는 사태가 이어졌어요.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고통당하는 것은 20절, 굴복하게 하시는 이-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음이라고 했습니다. 피조물은 에덴에서 사람들에게 최고의 환경과 풍성함을 제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사람들을 만드시고(에이전트 왕) 주신 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6. 사람들이 죄를 범할수록 피조물들이 사람들에게 최고의 환경과 풍성함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썩어져 허무한 데로 돌아갔습니다. 피조물이 최후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비전을 말씀해요. 이 세상이 지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를 말합니다. 종말이 오기까지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더합니다.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 내려가고 있고, 바다의 온도가 정상보다 차갑다가(라니냐) 뜨겁기를(엘니뇨) 반복합니다. 이로 인해서 가뭄과 홍수가 극단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자연의 회복은 종말이 지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이뤄짐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이 진행되면 사람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요.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불편과 고통을 겪습니다. 피조물이 새 하늘과 새 땅을 고대하듯이, 사람들도 몸의 속량을 기다립니다. 영혼 구원이 아니에요. 몸의 속량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영혼 구원만이 아니라 몸의 구원까지 이뤄져야 완전합니다. 몸의 속량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피조물과 그리스도인들이 고대하는 때는 결국 동일합니다.
7. 사도 바울은 피조물과 우리의 소망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하나님의 선물(은혜)로 받는 것이 아닌가요? 바울이 여기서 선언한 것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소망의 역할을 이야기했습니다. 존 번연의『천로역정』에 믿음과 소망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은 주인공 크리스천과 순례길에 오릅니다. 믿음은 허영의 시장에서 시장 사람들에게 밉보이고 감옥에 갇힙니다. 재판에서 허영의 시장 사람들에 맞서 자신과 크리스천을 훌륭히 변호했습니다. 믿음은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허영의 시장 사람들에게 고문당하고 결국 화형당해 순교합니다.
믿음이 화형을 당하는 그의 머리 위에는 날개 달린 마차가 그의 영혼을 천성으로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크리스천보다 먼저 천성으로 가게 됩니다. 소망은 크리스천과 믿음이 시장 사람들에게 괴롭힘당하고 믿음이 순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후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천국)으로의 여정을 떠납니다. 소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아 종종 절망에 빠지는 크리스천을 격려합니다. 마지막에는 크리스천과 같이 천국으로 갑니다. 크리스천이 천국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소망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천국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소망임을 전해줍니다.
복음 제시
8. 피조물과 사람들이 모두 기다리는 시간은 자유-해방의 때입니다. 21절“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자유는 보통 자유가 아니라‘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요. 이 자유와 해방은 영혼 구원만이 아니고 23절, 몸의 속량까지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서 우리가 영적인 자유를 얻지만, 몸의 속량은 부활 때에 가능합니다. 부활 때에 사람들만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도 이때를 기다립니다. 이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피조물이 창조 때의 모습과 같이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완전한 세상-완전한 천국이 도래할 것입니다.
기대
9. 오늘 본문 시작은 18절,“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이 메시지는 앞서 17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에 이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살면서 고난을 상당히 받는다고 말했어요. 장차-미래에 영광을 받을 것이지만, 현재는 고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잉크 한 방울이라면 영광은 태평양 바다와 같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광복 79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광복의 때를 기다리며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서 일제와 싸웠습니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었지만, 특히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자원하여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더욱 영광스러운 자유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영광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의 탄식과 고통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게 하옵소서.(오늘 찬양: 샘물과 같은 보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