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몰라서 슬프다
2024 - 11 - 23
수학을 공부하며 가장 당황스러울 때는 뜬금없는 문제를 마주칠 때다. 분명 차근차근 개념을 이해하고 유형을 배웠다. 그런데 문제집이 갑자기 딴소리하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문제를 툭 내놓는다. 배운 것과 연관성을 못 찾겠다.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이 나오니 당황스럽다.
최근, 문제집 밖에서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이 여기저기서 발굴되고 있다. 부모님에게서도 그렇다. 몇 달 전, 차를 타고 갈 때 어머니께서 노래를 트셨다. 그런데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여쭈어보니 좋아하시는 가수라고 하셨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그런데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노래는 이제야 알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내가 무엇을 알까? 어떤 사람인지는 어느 정도 안다. 습관과 말투를 안다. 이 표정이 무슨 뜻인지, 앞으로 어떤 말씀하실지 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계시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도 얼핏 알 것 같다.
하지만 심유라, 신하루, 이 두 사람에 대해, 그들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나는 부모님이 어디 사셨는지, 어떤 친구가 있는지, 어떤 직장에 다니셨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그림을 잘 그리신다. 왜 그림을 잘 그리시지? 미술 전공이 아니신데. 잘 안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부모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면 다른 것에는 얼마나 많을까?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학교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다. 입학은 어떻게 하고 면접은 어떻게 볼까? 대학은 어떻게 운영되고, 수업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울까? 학생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는 홈스쿨을 하기에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집 근처 초등학교를 지나면서도 저 건물 안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한데 대학교가 어떤 곳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직업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다. 대학에서 특정 분야를 공부하면 특정 직업을 얻는다. 전에는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직업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 애초에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또 순전히 일을 하기 위해, 거래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런 관계에서 나에게 어떤 책임이 있을까?
나는 사회생활에 대해서도 모른다. 몇 년 전, 결혼식장에 가 친척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척분이 애가 홈스쿨을 해서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했다고 전해주셨다. 사회생활에 대해 아는 것은 부모님이 욕먹지 않으려면 내가 인사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또 집에 대해서도 모른다. 집은 돈 주고 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게 쉽지 않다. 집은 어떻게 사는 걸까? 부동산은 왜 있는 걸까? 전세 사기는 또 뭘까? 나는 인터넷 공유기 설치하는 법도 모르는데 말이다.
더 나아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내 사명은 무엇일까?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해, 사회생활에 대해, 내 인생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도 모르는 것이 생기니 모르는 것이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갑자기 생기는 느낌이다.
삶이 모르는 것을 마주치는 것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앞으로 모르는 것은 늘어날 것이고, 나는 모르는 것들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대학은 가야 한다. 가보면 어떤 곳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일하다 보면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사회에서 내 책임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이 즐거울까? 아니다. 불편하고 무섭다. 예를 들겠다. 몇 주 전, 나는 홈스쿨 기관이 속해 있는 교회에 갔다. 점심에 지하 2층에서 밥을 먹고 친구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른 사람이 없어서 손에 들고 있던 칫솔을 입에 넣었다. 조심했어야 했다! 감히 신성한 교회 엘리베이터에서 양치하다니. 곧 심판이 닥쳤다. 거의 닫혔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정장을 입은 남자 4명이 들어왔다. 그때 나는 칫솔을 입에서 뺏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멍청한 17살이기에 그럴 생각을 못 했다. 칫솔질하지는 않았지만, 입에 칫솔을 물고 있었다.
“너.” 안경을 쓴 남자가 말했다.
“네?”
“그래, 너.”
이때가 돼서야 나는 내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재빨리 칫솔을 입에서 빼고 치약을 삼켰다.
“너 몇 살이야.”
“17살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너 홈스쿨이지.”
“네.”
“너 계속 집에서 학교 다니고 싶지?”
“네?”
“너 계속 집에서 학교 다니고 싶어?”
이건 무슨 소릴까? 나는 말을 못 알아듣고 그냥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양치하면 돼 안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오자 나는 자동으로 남자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90도 인사가 몸에 뱄었나 보다.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양치하지 마.”
“네, 죄송합니다.”
나는 다음 층에서 내려 칫솔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입을 헹구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 남자가 나를 협박했던 것이다! 선지자인 것이 분명했다. 신성한 교회 엘리베이터에서 양치한 죄인을 심판할 만한, 홈스쿨 부서에 속해 있는 가정의 앞날 정도는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나중에 같이 타 있던 친구가 그 남자가 목사님이었다고 알려 주었다. 심히 당황스러웠다. 나는 친구에게 담임 목사님께 이 일에 대해 편지를 써야겠다고 했다. 친구는 담임 목사님이 백억 이상을 횡령한 것이 드러나 지금 담임 목사 자리가 비어있다고 알려 주었다.
이날 나는 내가 많은 것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나는 밟힌 벌레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양복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압박감이 대단했다. 이때까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직업은 목사님이었다. 목사가 머리카락 짧은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레위 지파 제사장은 십일조에 대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교회가 이런데 사회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사회성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이처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불편하고 불쾌하고 무섭다. 나중에는 이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남자 같은 사람을 만나도 웃어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무뎌지려면 많이 맞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모르는 것이 더 생기고, 내가 그것을 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갑자기 화가 난다. 내가 왜 불안에 떨어야 하나? 17년이나 살았는데 말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왜 이리 많을까? 모르는 것을 왜 알아야 하며 그 과정은 왜 이렇게 힘들까? 알아야 할 수밖에 없나?
슬프고 당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