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노동시간·비싼 육아비 등 한국 특수배경 최저출산 불러 일-가정 모두 선택 가능해야 가족형태따라 맞춤형 지원을 인구 감소해도 미래성장 가능 젊은층 교육강화 생산성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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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문화미래리포트(MFR) 2023 인구-21세기 국가 흥망의 열쇠’ 1세션에서는 ‘글로벌 인구 위기의 현상과 본질’을 주제로 한 세계적인 석학의 강연이 이어졌다.
제임스 레이모 미국 프린스턴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초저출산율은 전 세계 공통의 저출산 요인에 한국의 독특한 사회·문화 배경이 더해진 결과라고 분석하고 현금 지원(금전 인센티브)보다 다양한 가족 양태에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볼프강 러츠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인구통계학과 교수 겸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원(IIASA) 부원장은 고등교육을 통한 생산성 강화와 ‘가족 웰빙(복지)’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일회성 현금 효과 없어”= 레이모 교수는 출산율 하락에 따른 인구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도 유독 한국 출산율만 급속히 감소하는 데 주목했다. 저출산 원인에 대해서는 “전 세계의 낮은 결혼율과 출산율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요인에 한국의 특수성까지 작용하면서 한국 출산율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레이모 교수는 한국은 남녀 불평등, 과도한 노동 시간, 높은 가사 및 육아비용,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불확실성, 유교적 규범 등이 추가로 작용하면서 다른 나라보다 결혼과 출산율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이모 교수는 출산율 확대를 위한 정책 지원을 촉구하면서도 현금지원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을 지지하는 정책적 노력이 아니라 가족 형성의 장벽을 낮추는 데 정책적 노력을 우선적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이모 교수는 “출산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가 출산율 증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다양한 가족 양태에 맞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혼외 출산·한 부모·맞벌이·다문화 가정 등 각기 다른 상황의 가족형태에 맞춘 출산지원책이 나와야 실제 출산율 확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레이모 교수는 특히 “부모가 일과 가정 중 한 가지가 아닌 ‘둘 다’ 선택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유연근무제 도입 확대를 주장했다. 또 한국의 높은 가족 구성 비용을 지적하며 “사회 구성원 누구라도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사치로 느껴져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사회·경제적 최하계층을 포함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가족 형성에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는 폭넓은 정책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구 감소 꼭 재난 아냐”= 러츠 교수는 많은 국가들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를 재난이나 재앙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러츠 교수는 “인구 감소를 하나의 ‘트렌드(경향)’로 보고 적응하면 된다”면서 ‘인구통계학적 분석’에 기초한 새로운 인구 감소 해법을 제시했다.
러츠 교수는 저출산 문제를 단순 연령의 문제가 아닌 성별, 교육 성취도, 노동력 참여도, 인종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분석했다. 그는 인구통계학 이론인 ‘인구배당 효과’를 설명하며 절대적인 출산율보다 그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최적의 ‘인구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구배당 효과는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 인구 비율을 높이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러츠 교수는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에 대한 인구통계학적 분석 결과를 인용해 “젊은층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중·장년층이 됐을 때 더 오래 일하고 건강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젊은층에 대한 고등교육 확대를 통한 생산성 증대를 인구 감소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러츠 교수는 특히 한국에 대해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층이 많은 만큼 미래에 예상되는 인구감소 부작용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러츠 교수는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최적의 상태가 아니라며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족 웰빙(복지)’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러츠 교수는 “가족 웰빙은 현대사회 가족 계획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면서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는 주거공간, 육아, 일·가정 양립, 교육비용, 여가 및 오락을 위한 충분한 시간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들로 가족 웰빙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츠 교수는 특히 한국 젊은층의 가족 형성 부담에 주목했다. 러츠 교수는 “한국의 20∼30대는 결혼 시기에 취업과 집 마련 등의 부담을 한꺼번에 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서 “이런 부담을 장기간에 걸쳐 나눠주고 분산해주는 것이 가족 웰빙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또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대책보다 장기적·포괄적인 대책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혜진·김유진·이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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