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태장동 태실석함.
국립춘천박물관 이층에는 반구형 뚜껑이 있는 사람 키 높이만한 태실석함이 자리 잡고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석함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태아의 모습과 닮은 좌대위에 편안하게 놓여있다. 사람은 본향으로의 회귀 본능이 있기 때문일까? 태아를 닮은 부드러운 곡선과 화강암의 질감이 아주 편안한 느낌을 준다. 투박한 화강암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뚜껑이 없다면 친정집 헛간 옆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돌절구 같아 가만히 끌어안아주고 싶어진다.
1992년 한림대학교에서 발굴한 강원 유형문화재 제 66호 원주 태장동 왕녀 복란 태실비 옆 3m 쯤 떨어진 곳에 있던 성종 임금의 왕녀 복란( 정순옹주)의 태실석함이다. 왕녀 복란은 1486년 10월 13일 진시생이며 그해 12월 29일 봉안을 하였다는 태지석과 토기 내호와 백자 외호가 같이 전시되어 있다. 백자 외호의 뚜껑은 부활, 생명 탄생, 이상향을 상징하는 연꽃봉오리 형의 꼭지에 구명이 네 개 있어 몸체와 묶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탯줄은 어미가 아기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감성을 교류하는 통로다. 탯줄이 튼튼해야 남자 아이는 학문을 좋아 하고, 벼슬이 높고, 병이 없으며, 여자는 예쁘고, 단정하다고 하였다. 태에는 아이의 생명력이 깃들여 있다고 하여 출산 후에는 함부로 버리지 않고 깨끗한 곳에서 태우거나 단지에 넣어 묻었다. 왕실에서는 절차에 맞게 예의와 정성을 다 하여 태실을 만들었으니 왕손은 몸가짐을 더욱 바르게 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태실이 왕손 숫자에 비하여 아주 적은 것은 국왕이나 특별한 한 왕자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왕실에서도 지속적으로 많은 태실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 망실되었을 것이다.
왕실에서는 비나 빈의 출산 예정일을 3개월 남겨두고 부터는 길일을 택해 내의원 도제조를 책임자로 제조, 부제조, 의관, 의녀등 약 22명 내외로 산실청이 꾸며졌다.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점검하고 출산일이 임박하면 산실청에 말가죽을 깔아 자리를 만들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대신 중에서 아들이 많고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을 선정하여 권초지례(惓草之禮)로 산 줄은 맸다. 출산 후 태는 산실의 길한 쪽에 모셔두었다가 날을 받아 약 100번 정도 깨끗이 씻은 다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약제 처리를 한 후 항아리에 넣고, 남은공간은 기름 먹인 한지로 채운 다음 붉은색 끈으로 밀봉을 해, 남색 보자기로 싸서 백자외호 바닥에 개원통보(開元通寶 )를 깐 다음 봉안하였다.
명산을 찾아 태를 묻었으며 태가 묻힌 장소를 태지 또는 태봉이라 부른다. 왕자나 공주, 옹주는 출산 의식과 절차에 따라 태를 봉안 할 장소를 관상감에서 물색하고 선공감에서는 태를 봉송할 도로를 정비하고 봉송관을 임명한다. 당상관으로 안태사(安胎使)를 정하고 태를 봉송하는 도중에 일어날지 모르는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길일을 택해 봉송을 하고 태함에 넣어 매장을 한 후 봉토를 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태실의 역사를 마치면 토지신에게 보호를 기원하는 제례를 올린다. 태실 주의에 금표를 세워 함부로 투장하는 것을 막고, 채석과 벌목, 개간, 방목의 행위를 금지 시켰다. 특히 왕세자나 왕세손은 다음 보위를 이어 받을 몸이니 태라하여도 왕세자나 왕세손의 행차에 버금가서 안태사가 태를 봉안 할 때는 음악과 춤을 성대하게 동반하여 주민들이 나와 구경을 하였다고 전한다. 후에 태실의 주인공이 왕으로 등극하면 주위에 8각 난간을 설치하고 새로운 태실비를 세웠으며 3년에 한 번씩 태실 안위제를 지냈다.
태실이 들어선 고을은 지방행정상 읍호를 올려주어 고을백성은 그 자체를 은혜로 여기며 긍지를 가졌다. 조선시대의 태실은 주로 경기도와 하남도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일제는 1928년 전국에 산재한 조선왕조 역대 왕실의 태실 53위를 서삼능에 모아 놓았다. 망국과 함께 태를 수호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고 도굴꾼들의 화를 피하며 임도를 내거나 개발을 할 때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태실을 훼손하였다. 장엄하고 격조 높은 왕실의 태실과는 거리가 먼 작고 단순하며 볼품이 없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지금은 병원에서 출산을 하기 때문에 태의 처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태반과 탯줄에 남아 있는 혈액을 제대혈이라 부르는데 소수의 사람들은 제대혈을 채취하여 난치성 혈액질환이나 면역결핍증에 대비하여 냉동보관을 하여 둔다.
제대혈은 골수와 마찬가지로 혈액을 만들어내는 조혈세포와 연골, 뼈, 근육, 신경 등을 만들어 내는 줄기 세포가 들어 있어 의학적으로 활용을 하며 약품과 화장품등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니 더 이상 태실은 만들어 지지 않는다.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이 이어져 역사가 되고, 문화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일이다. 문화재 속에는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생각과 예술성, 정서, 환경.... 등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우리는 보존을 잘 하여 후손에게 남겨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출생과 함께 육중한 돌을 쪼아 석함을 만들어 태를 보관하였던 정성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첫댓글 지식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 꺼진 방에 불을 밝히려고 졸작 한편 올립니다.
와! 이거 웬만한 시력으로 읽을 수가 있나? 내가 보기 쉽게 아래에다 다시 올려볼께요.
장희자 선생님 해박한 지식에 감탄!
박물관에 있는 태실 석함 보았습니다.
선생님 글 읽고 보다 자세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분 선생님 관심가지고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토요일 박물관에 오시면 커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해박한 글에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