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yF2PxKxLjA
제54회:남도에서3년•조희룡적거지에서(임자도)
1.일시:'23.6.20.화
2.장소:조희룡유적지외
요즘 후쿠시마 핵폐수 바다 방류로 나라가 시끄러운데 그 여파로 때 아닌 신안천일염 소금 사재기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24번국도변에는 재빠르게 부스를 설치하고 작년에 18000원하던 20kg 굵은 식용소금을 4만원에 팔고 있다.
동네 테니스회원의 부탁도 있었고 하여 찾아간 곳이 임자도 이흑암리 마을 앞 염전이다.
은동마을 지나 어머리 해수욕장 가다가 조희룡적거지 안내판을 보았는데 별관심없이 지나 친 적이 있었다.
이름없는 유배객들중 한사람 이겠지하는 무지의 탓이다.
흑암리에는 조희룡(趙熙龍.1789~1866.순종.헌종.철종.고종시대)이 유배 와서 행적을 남기고 간 곳이다.
조희룡은 조선개국 공신 조준의 후손이자 추사 김정희의 제자다.
조선 문인화의 선구자요 영수라 불리는 우봉 조희룡 (1789~1866)은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 와 쌍벽을 이룬 문인화의 대가라 한다.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까지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한국인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조선문인화의 시대를 개척한 인물로서 1851년 조정의 예송논쟁에 개입하였다가 이곳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 유배되었다.
유배생활에서 기량이 절정에 오르면서 매화에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접목시킨 용매화 를 더욱 발전시켰고 임자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소재로 한 괴석도 와 묵죽도 등을 그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흑암리 마을은 마을 뒤 대둔산(320m)과 삼각산 (214m)의 산그늘이 커서 해가 일찍 넘어가고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큰 검은 바위가 두 개라는 뜻도 있다.
이흑암리에 조희룡의 적거지(謫居地)에는 그가 살던 옛집을 복원한 만구음관(萬鷗吟館)이 있다. 그리고 대기리(대광해수욕장입구)에는 기념관이 있다.
만구음관이란 일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는 집이라는 뜻이며 적거지란 귀양살이 집을 의미한다.
햇수로 3년(1851.8.22.1853.3.14.)동안 이흑암리 적거지에 황토 움집을 짓고 만구음관이라 하였던 바 당시에는 집 앞까지 바다물이 철썩 거렸다고 한다.
만구금관에 서면 저 멀리 뚝이 보이고 그 아래로 염전 촌이 보인다.
조희룡은 임자도의 자연을 자신의 산문집 화구암난묵(畵鷗盦譋墨)에 임자도에서 삼절(三絶)을 얻었다고 기록하였다.
삼절은 ‘작도(鵲島)의 가을새우’. ‘흑석촌(黑石邨)의 모과’. ‘수문동(壽門洞)의 밝은 달’을 칭한다.
작도는 전장포 남쪽 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 새우잡이로 유명한 곳이며, 흑석촌은 현 이흑암리로 모과가 많았으며 수문동은 현 은동(隱洞)해수욕장 부근이다.
조희룡은 ‘바다가운데 수문동과 같은 명승이 있을지 몰랐다. 내평생 달구경중 최고’라고 극찬하였다.
염전촌 끝자락 소명 염전에서 소금을 구하고 이흑암리 마을앞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마을은 온통 푸른색의 지붕이다.
이정표를 보고 적거지로 향하는 마을 담장에는 연분홍 색의 홍매화를 그려놓았다.
매화를 사군자(매화, 소나무, 국화, 대나무) 중에 으뜸으로 치고, 매화 그림 또한 선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조희룡은 조선을 통틀어 매화를 가장 즐겨 그린 사람이라 전한다.
사군자와 산수화의 대가로 매화서옥도와 홍매대련이 있다.
예송사건(현종때 계비인 조대비의. 상례문제로 남인과서인이 대립)에. 휘말려 이흑암리에서 유배하며 병풍.화첩.대련의 대작 8점의 작품을 완성하고 섬의 아름다운 매화를 그려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마을은 파란지붕으로 단장하고 골목담장에는 홍매화가 화사하다.
정겨운 골목길을 오르니 당시 동네 사람들이 길어갔을 우물에 정자를 세워두었고 그 위쪽에 "又峰 趙熙龍 謫居址" 라 새겨진 석비가 자리하여 이곳이 우봉 조희룡 선생의 유배지임을 알리고 있다
만구음관 초가 뜰 아래 야외에 전시한 매화 그림들이 암묵의 묵직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묵화들이 적거지를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만들고. 있다.
조선 후기 선비가 그려낸 옛정취다.
만구음관에 방두칸과 쪽마루와 부엌 구조인데 열쇠를 채워놓지 않아서 들에다보니 작은 방이 앙증맞다.
집뒤에는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매화나무 가지런히 심어 놓고 산책하기 좋게 조성해 두었다.
뒤에는 산 앞에는 넓은 들판으로 어촌풍경의 운치 가득하다.
만구음관 앞에서 바다물이 출렁거리며 들락거렸을 것이고 갈매기 끼륵끼륵 노래하니 어촌의 자연은 시가 되었으리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시리도록 저린다.
양지바른 어촌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적거를 벗어나 돌담사이 골목길 따라 끝까지 걸으니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고 마을 버스 종착지다.
조희룡기념비는 화강암과 오석으로 제작되었다.
"조선 문인화의 영수 조희룡 기념비" 라는 글씨와 함께 조희룡 선생의 초상 그리고 선생의 대표작 홍매도를 새겨 놓았으며,
기념비 바로 옆에는 "만구음관 조희룡 적거지" 라고 새겨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매화나무 한그루는 마치 한마리의 용이 하늘을 오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불긍거후(不肯車後). 남의 수레뒤를 따르지 않으리 라는 글에서는 선비의 굿굿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묵장의 영수 우봉 조희룡이라 쓰여있다.
황산냉운도라는 그림은 적거지 풍경과 작가의 심정을 그린작품이다.
매화서옥이라, 그림은 매화를 사랑하여 백발이 되었네
‘버려진 괴석에서 미를 발견하는 태도는 예술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탐미적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하며
‘텅비어 광활한 세계, 맑은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한다.
유배지의 생활은 더없이 큰 고통의 시간들이었겠지만 정약용의 수많은 저서들과 함께 조희룡과 김정희 선생의 그림들은 다 유배지에서 완성되었다.
그분들이 유배되지 않았다면 이런 역사물들이 나왔을까. 자랑스런 유배문화 유산이다.
노년에는 혼자서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 했다.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하라는 뜻이라 생각한다.
오늘 남도에서 숨은 보물을 나만 찾은듯 하다.
인사동에 들러보았으나 새한도를 찾을 수 없었다. 매화서옥도를 볼 수 있을까. 고묵화 한점 집안에 걸어 두면 좋겠다.
25일 뫼두열 산행과 27일 이순테니스모임에 맞추어 상경하려니 괜시리 바빠진다.
6월 뫼두열 산행에 양푼이 보리 비빔밥을 먹자.
2023.6.24.토.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