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목. 밥 먹기 쌀 팔기
밥만 먹기
가끔은 밥만 먹는다. 새로 쌀을 팔았을 때, 반찬이 당기지 않을 때, 밥맛이 그리워서, 아니면 밥만으로 충분해서 그냥.
나는 밥하는 냄새가 좋다. 뜨거운 솥단지에서 김이 폭폭 새어나오고 특히나 요즘 같은 추위에 집안을 훈훈하게 덥히고 구석구석 밤 냄새가 스미는 게 좋다. 그러면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인다. 엄마가 솥을 열면 밥을 푸기도 전에 성급하게 한 숟가락 떠 맛보던 어린 시절처럼 마음이 앞선다. 드디어 밥이 되면 공기에 숟가락으로 밥을 담고, 한 숟가락을 떠먹으며 밥 냄새와 밥맛과 윤기 나는 밥알들을 음미하며 먹는다. 그럴 땐 밥이 너무나 맛있어 반찬이 외려 먹히지 않는다. 반찬의 여러 가지 맛들이 밥맛을 헤치기 때문이다. 맛 때문만은 아니어도 힘든 시절 흰쌀밥 한공기가 소원이었던 조상들의 간절한 마음을 조금치라도 추측하게 된다. 그렇게 밥은 간절한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밖에서 밥을 사먹을 때 제일 아쉽고 그리웠던 것 중 하나도 이렇게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먹을 수 없다는 거였다. 소위 만난 것을 시켜먹고 사먹어도 마음 한쪽이 언제나 서늘했다. 어쩌면 내가 도시를 떠나게 된 것도 그런 밥이 그리워서였는지 모른다. 내 안 밥의 원체험이 그렇게 강렬하다.
티베트를 여행하며 유목민들이 보릿가루에 차를 뭉개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에 비하면 보드랍고 달콤한 밥은 얼마나 상찬인가? 사람이 먹고 사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늘 무엇엔가 굶주릴까?
내가 아직 해보지 못한 일은 혼자 누리는 밥만 먹기의 호사를 지인들과 나누어보지 못한 것이다. 손님이 오면 국이라도 끓이고 찬이라도 내게 마련이다. 아무리 밥이 좋아도 아직 맨밥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밥을 나누고 싶다.
쌀 팔다
그런데 처음 글을 시작하며 ‘쌀을 판다’는 말을 썼을 때, 나는 또 다른 감성의 자극을 느꼈다. 알다시피 요즘 우리의 상식으로는 ‘쌀을 사다’고 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언어 습관은 아직도 ‘쌀을 판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쌀을 사다’라는 말 대신 ‘쌀을 판다’는 말 안에는 문화사적인 흔적이 느껴진다.
왜 파는 것이 사는 게 되었을까? 추측만 해도 간단하다. 우리는 지금 거의 도시에서 살지만, 근대화가 되기 전만해도 우리의 전 역사기간은 농경사회였다. 자급자족이 기본이었고, 쌀이 주식이었다. 특히 전국 곳곳에 오일장이 정착한 뒤에는 장에서 주식인 쌀을 구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농촌 산촌 어촌에서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뭔가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팔아야 쌀을 살 수 있다. 돈으로도 살 수 있지만 돈도 물건을 팔아서 사는 거였다. 그래서 물건끼리 흥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는 주식인 쌀이 귀하였으니 충분히 돈 역할을 했다. 엄니 아버지만 해도 어릴 때 쌀이나 보리 콩 따위를 장에 내가 먹고 싶은 것 바꿔 먹은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 쌀이면 뭐든 살 수 있었다. 먹을거리가 없는 서민은 주식인 쌀을 구하는 위해 뭔가를 팔아야 했다. 나무든 짚신이든 베든 옹기든 날품이든 팔아야 쌀을 샀다. 그래서 장에 가는 것은 무엇인가를 들고 가서 파는 행위와 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쌀을 판다’는 문화사적 맥락의 말이 생긴 것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이 쌀(食)을 구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팔아야 하는 상황의 변화다. 또한 그것이 농촌의 자급자족 경제가 무너진 것과 관계가 깊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렇게 ‘판다’는 말의 뜻을 다시 생각해보는 이유는 자본주의사회에서 피상적으로 단순화된 말의 쓰임 이전에 존재하다가 사라진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과 결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팔다’라는 말이 ‘사다’ 앞에 전제 되고 이후 삭제된 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팔린 것들
그렇다면 무엇이 팔렸는가? 예전 장에서 쌀을 팔 때는 자기의 노동으로 생산한 물품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자본주의사회가 되면서 자기가 생산한 물품을 파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대신 노동력을 팔아 번 돈으로 물건을 산다. 그러니 ‘사다’라는 행위 앞에 ‘노동을 판다’는 행위가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노동을 파는 행위는 비단 자본주의사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품 판다’는 말이 그렇다. 품을 파는 일은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삼국시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를 지킬 수도 없는 상황이 되면 품(노동)이 아니라 인격을 파는 일도 생겼다. 굶주려 자식을 팔거나 스스로 노비가 되는 경우가 그런 예이다. 소농이 몰락하고 계급화 된 사회에서는 어김없이 노예화가 일어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계약의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노예제 사회와 동일하다. 자본제 계약이 자리 잡기 전 인클로저로 내몰린 빈농들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가 하루 8시간 일을 하자고 계약을 했다면 그 시간 노동자의 인격도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귀속되어 버린다. 고용과 피고용 관계는 갑을관계를 떠날 수 없다. 그게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인격과 노동을 분리시켜 이야기 하며, 애써 진실을 외면해버린다. 자기를 팔아야 쌀을 구하는 노예적 현실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계약의 간계가 숨어 있다. 인격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노동을 분리하고, 판매할 수 없는 인격을 노동의 형식으로 팔았던 것이다. 자본가가 소유하거나, 경영인이 지배하는 기업과 관료제는 효율과 합리성으로 위장한 권력의 인격 지배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여기 선뜻 동의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 눈에는 제한된 인격으로 보이지만 당사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뉴스를 보니 공무원이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위에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팩트체크가 나왔다. 당연한 일 아닌가? 국민이 정치적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그런데 그것이 팩트체크를 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비상식의 상식이 놀랍다. 학교에서 교사들과 학생들도 그렇다. 지금 광장이야말로 역사와 민주주의의 교실이 아닌가? 그런데 아이들이 나갈까봐 혹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 회손 될까봐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런데 보자.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말이 과연 성립하는가?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이상 정치적 위치와 입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외려 중립이란 권력에의 복종 내지 협조를 의미할 뿐이다. 권력이 부당할 때는 절대 중립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중립을 요구한다면 공무원이 권력기관에서 일하니까 정권에 복종하라는 말 외 무엇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쌀을 구하기 위해 노동을 판 것이 아니라 인격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격을 찾으려면 정치적 당파성을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밥
나는 가끔 밥만 먹는다. 밥 한 공기는 1홉이다. 1홉을 80그램이라고 치고 하루 세 끼를 밥만 먹는다고 치면 하루 240그램을 먹는다. 그걸 1년 내내 먹는다고 계산 해보면 240×365=87600그램이다. 킬로그램으로 환산하면 87.6킬로그램이다. 그러니까 80킬로그램 한 가마를 조금 더 먹는 셈이다. 쌀 20킬로그램이 보통 4~5만원 한다고 하면, 밥 한 공기는 400원 정도인 셈이다. 양이 적은 여성이나 도시인들 같으면 밥 한 끼 300원, 하루에 천원이고 한 달이면 3만원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연명에는 지장이 없다. 농촌에서 벼농사를 하지 않고 쌀만 사먹고 나머지는 텃밭에서 가꿔 먹으면 영양과 맛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왜 자급자족을 두려워할까?
나는 순수한 자급자족을 주장하지 않는다. 한 달 5만원 어치 쌀만 팔면 굶어죽을 일은 없다. 그것을 위해 하루 쌀 파는 일을 할 수 있다. 나머지 29일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하지만 진수성찬을 위해 인생을 팔수는 없다.
내가 밥 한 공기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 자유의 냄새를 의미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유는 밥 한 공기에서 나온다.
첫댓글 밥이 주는 참 의미와
밥-먹고사는 문제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가
마음먹기 따라서 공존가능함을....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한때는 돈 벌고 출세하느라
이런 저런 일들로 분주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음의 자유를 추구하느라
그런 외부적인 시간들을 최대한 줄이려다보니
의식주 역시 최소한으로 유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반찬도 없는 밥 한 공기만의 즐거움이 뭔지를 알지요.
그것도 개발이 됩니다.
잘 하면 기름기 물기가 좌르르 흐르고 살짝 눌어붙은 맛까지 가미되면...
너무 맛있어, 물이나 반찬을 같이 먹으면 고유의 밥맛이 희석될까봐
밥만으로 무아지경 상태에서 뚝딱... ㅋㅋㅋ
그렇죠 ㅎㅎ
밥 한 공기의 참맛을 누리는 자😂😁😊
자유의 맛과 멋도 함께~!^^
쌀 한톨에 우주가 들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