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775. 깜부기, 피, 가라지 그리고 밀(230828)
강아지 풀과 조 사이에 태어난 가라지는 새들의 먹이로는 쓰이나 사람은 먹을 수 없는 작은 열매가 열린다. 뿌리지 않아도 자라는 가라지는 깜부기와 논의 피와 함께 기피식물이다. 함부로 뽑다 가는 밀이나 벼도 뽑게 된다. 수확할 때 함께 수확 할 수 없기에 수확 전에 분리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깜부기는 병이다. 감염되면 멀쩡한 밀 이삭을 까맣게 썩게 하고 포자로 바람에 날려 번지게 한다. 깜부기는 완전히 자랐을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심기 전에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깜부기 병균이 없는 땅에 심거나 소독하고 살균해서 심거나 자라면서 이상이 있으면 감염 식물 전체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벼, 밀, 옥수수, 풀, 양파, 수수 등에 나타나는데 모든 곡물에 감염이 된다.
성서에서는 이 가라지와 피와 깜부기 등을 악의 소행으로 여긴다
선과 악의 구분에서 참 애매한 위치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사에서 가라지는 기생하거나 빼앗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악은 어떤 것이 악일까? 악의 정의라고 하면 어떤 것을 말 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악일까?
하느님의 입장에서 볼 때 선과 악은 어떻게 구분 되는 것일까?
사람의 입장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기는 비교적 쉽다. 득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로 구분하면 된다. 이 구분법은 인간이 자연의 최고 상위에 있다는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여러 존재들 중 좀 우월한 인자를 가졌기에 우쭐한 것일 뿐이다. 자연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도 남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가지는 것은 그만한 책임도 함께 부여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출세를 한 사람에게 동네 사람들은 기대를 한다. 자신들의 동네를 위해 무언가를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욕을 한다. 그리고 악으로 치부한다.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출세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악의 구분이 인간사에서뿐만 아니라 자연사에서도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도 자연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이것이 악의 논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창조 설화에서 인간이 맨 나중에 창조되면서 세상을 맡기는 장면이 나온다. 즉 인간중심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물은 인간만이 아니다. 하느님은 숨을 불어 넣으실 때 인간에게만 불어넣어 주셨을까? 모든 생물들에게도 똑 같이 숨을 불어 넣으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도 영혼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자연의 법칙에서 인간도 구성원 중의 하나임을 안다면, 경쟁과 자구노력에 의해 진화를 하던 적자 생존을 하던 발달하고 발전하여 지금의 인간이 된 것이다. 인간에게만 특별한 법칙이 존재 했다면 인간은 같은 피조물인 자연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