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ist of Spectrum moments to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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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philly.com/philly/sports/sixers/20090313_A_list_of_Spectrum_moments_to_remember.html?page=1&c=y
오늘밤 식서스가 마지막으로 빅리그 스포츠경기를 펼침으로써 마감하는 와코비아 스펙트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 필라델피아 남부구역에 있는 건물에서의 많은 기억들을 간직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일중 몇몇은 우리가 잊어버린게 있다.
이제 다음에 열거할 다섯가지 사실은 독자들의 기억을 깜짝 놀라게하며 흔들어 놓을 것이다.
The first roof-raiser 1
모두들 1968년 3월1일 스펙트럼의 천장이 날아가 버린 사실은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같은 일이 2주전에도 벌어졌었음을 까먹었을 것이다.
2월 17일, 만천여명의 사람들이 아이스쇼를 관람하고 있을 적, 스펙트럼의 첫 소유주 할 프리먼은 그의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갑자기 쇼를 보고 있던 그의 조카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할삼촌'그는 1998년 작고한 프리먼에게 말했다. '제 생각에 삼촌 큰일났어요. 천장이 날아가 버렸는걸요.'
강한 바람은 50*150 피트의 4개월된 건물 천장을 날려버렸다. 이때의 파편에 의해 건물에 들어오던 3명이 부상당했다.
스펙트럼 관련자 스티브 그린버그가 1988년 당시상황을 말하길
"그때 난 소리는 마치 기차가 당신옆을 지나칠 때 나오는 소리같았어요. 거대한 소리가 난 이후 제가 올려다 봤을땐, 우리가 봤어야할 천장대신 파란 하늘이 보이더군요. 당시 쇼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려는 때고, 사람들은 '감독이 코미디언인가보다'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마침 ' 'Off We Go Into the Wild Blue Yonder'를 시작했거든요
(주: 미국공군군가인가봅니다.http://blog.chosun.com/maple808/3054083 참조)
건물의 피해는 재빨리 수리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필라델피아가 이걸로 전국적으로 조롱당하진 않았다.
그리고, 2주후 천장이 다시 날라가버린 것이다.
이번엔 그의 취임에 있어 건축자 제리 울맨에게 거래의혹으로 비판받고 있던 시장 제임스 H.J.테이트가 즉각 이 건물의 폐쇄를 결정했다.
일년전 NBA 챔피언이 된 식서스는 그들의 시즌을 팔레스트라와 컨벤션 홀에서 치룰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2연패를 하지 못했다.
반면 서부지구 타이틀전을 갖게된 일년차 플라이어스(NHL팀)는 남은 경기를 뉴욕과 토론토, 쿼백 시티에서 치뤄야 했다.
그들의 자축연은 쿼백 시티 호텔에서의 에드 스나이더 방에서 이뤄졌다.
'지금 현재 우리가 타이틀을 차지한 적 있나요?'당시 로스 앤젤리스를 2위로 강등시켰을 때의 파티에 참석했던 골리 더그 파벨이 불평했다.
'전 밤에 세개의 수면제를 취한 후 영화를 보다 잡니다."
After the Red Army
2
1976년 1월 11일, 플라이어스와 소련팀간의 친선경기는 이 건물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일중 하나이다.
이 혼란스럽고 역사적인 플라이어스의 승리는 바로 9일후 이곳에서 치뤄진 NHL 올스타경기의 추억을 덮어버렸다.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속에서, 이 경기장은 그해 NHL과 NBA 올스타 경기를 동시에 치뤘다.(야구는 Vet에서 경기할 때이다.)
16,436명의 관중은 캠벨 컨퍼런스 올스타가 웨일즈를 7-5로 이기는 걸 지켜봤다.
아마 이때의 기록에 남을만한 사실은 당시 올스타 경기의 로스터일 것이다. 당시의 NHL 뎁쓰 로스터와 현재의 비교를 통한 리그 흐름의 변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인데, 당시 76년의 올스타 40명중 39명이 캐나다인이었다.
유일한 예외는 Borje Salming으로 토론토의 스웨덴인 수비수였다.
올해의 올스타선수들을 통해 비교해보자. 49명의 선수중 25명의 선수가 캐나다인이 아니며 대부분 스웨덴, 러시아, 그리고 체코인이다.
The name game
3
사람들은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이 당시 얼마나 혁신적인 것이었는지를 망각한 듯하다. 당시 구장이름의 경향은 컨벤션홀 이라던지 워 메모리언 아레나 와 같았다.
이 이름은 당시 경기장의 부사장이었던 루 쉐인필드의 제안으로 나온것인데, 프리먼은 '키스톤 아레나'로 하길 원했는데, 쉐인필드는 좀더 생기있는 이름을 찾길 원했다.
쉐인스키왈 - 우리는 이구장의 이름을 당시의 죽은듯한 일반적인 것으로 짓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영감을 얻기 위해 그와 디자이너 빌 벡커는 당시 건물가를 산책했다. 쭉 둘러보면서 'spectacular','splendid','special'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짜던중 쉐인스필드가 말했다.'spectrum' 어때요?'
벡커는 저에게 그 의미를 물었고 전 이렇게 대답했죠.
'모든 것은 태양아래 다양한 빛을 발합니다. 완벽해요. 게다가 'SP'는 스포츠와 사우쓰 필라델피아를.E는 엔터테인먼트,C는 써커스와 콘서트죠. T는 극장, R은 레크레이션과 릴렉세이션, 그리고 um은 경기장이나 스타디움에 부치는 접미사잖아요.
하지만 프리먼은 계속 키스톤(Keystone)을 고집했다.
이후 건설업자 울맨과 그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이를 놓고 논쟁했는데 쉐인필드는 Keystone State Official Automotive Inspection Station에서 따온 지루한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필리에는 최소한 60개의 기업이 키스톤을 이름에 넣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신선하지도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에 일동은 표결에 들어갔는데 9-1로 스펙트럼의 압승이었다.
쉐인필드왈 - 프리먼이 유일한 1표자였죠.
이에 프리먼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첨가한 후 재투표할 것을 주장했다.
쉐인필드왈 - 이번엔 30-1이었어요. 이 이름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기억하실지 모르나 이 경기장 이전의 이름들이란 Forum and the Omni 이런식이기도 했어요.
쉐인필드는 이 경기장의 이름이 다음 경기장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계승되길 바라며 이에 대해 스펙트럼 싸이트를 통해 로비작업에 들어갔다.
The bizarre box score
4
이 사실이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1979년 3월 23일 에릭 머니, 랄프 심슨, 그리고 하비 캐칭이 양팀모두에서 뛰게 만든 네츠-식서스간의 경기 박스 스코어 말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식서스는 1978년 11월 8일 2차 연장끝에 네츠를 이겼다.
하지만 당시 심판 리치 파워스는 네츠의 감독 케빈 로리와 버나드 킹에게 3개의 테크니컬을 불었다.-당시 NBA의 규정상 한계는 2개이다. 이에 뉴저지는 항의했다.
현재 은퇴후 시카고에 있는 캐칭스의 회상' 그때를 생각해봤어요. 웃긴 일이죠. 전 그가 정말 2개받은줄 알고 있었어요.'
NBA 커미셔너 래리 오브라이언은 항의를 받아들여 (세번째 테크니컬이 불려진)4쿼터 5분 50초 상황에서 당시까지의 점수로 재경기하고 이후의 기록을 말소시킨채 치룰 것을 명령했다.
네츠는 3월 23일 이 서스펜디드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 2월 7일 식서스는 캐칭스와 심슨을 네츠의 스키너와 머니로 트레이드했다.
많은 심의끝에 리그사무국은 트레이드 된 선수들이 그들의 새팀에서 뛰게 하는 것으로 결정내렸다.
스키너는 들어가지 않았던 반면, 당신은 당시의 박스스코어에서 심슨과 머니가 양팀에 등재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것이다.
이날 결과는 123-117로 식서스의 승리였고, 캐칭스는 네츠쪽에만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는 식서스에선 무득점이었고 그가 뛴 시간이 표상으로는 이전 테크니컬 판정 이후의 삭제된 시간뿐이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에서 또다른 신기한 점: Loughery가 2월달에 해임되었기 때문에 그의 어시스턴트가 대행했다. 그러자 3월달에 들어와선 네츠의 빅맨수가 부족하게 되어서 같은 어시스턴트이자,6-9의 전 NBA 센터가 액티브 명단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필 잭슨.
What a start
5
꽤 많은 의미있는 스포츠 행사를 치룬 이곳에서 스펙트럼의 의미있는 공식 오프닝이 3일 연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것이다.
첫공연(퀘이커 시티 재즈 페스티벌)과 이후 첫번째 아이스쇼(홀리데이 온 아이스), 이런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1968년 10월 17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이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필라델피아의 조 프레이저가 Tony Doyle 를 2라운드 TKO로 이겼다.
다음날인 10월 18일 이 건물은 공식적으로 NBA 챔피언 식서스의 구장으로 인정받으면서 당시 MVP 윌트 챔벌레인이 있는 상태에서 개막전을 펼쳤고, 제리 웨스트가 이끈 LA 레이커스를 103-87로 이겼다.
그다음날인 10월 19일 새로 개명한 Flyers는 그들의 첫홈경기를 가졌고 피츠버그 펭귄스를 상대로 첫 셧아웃인 1-0으로 승리했으며, 당시 관중은 7,81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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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 자체에 대한 칼럼이네요. 이래저래 재미있는 일이 많았던 듯.
특히 구장 천장이 날아간다라...이걸로 필리는 당시 꽤나 놀림당했나 봅니다.ㅎㅎㅎ
첫댓글 좋은 역사정보군요. 감사합니다.(__)
베짱이형님 글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_ _) 저도 글을 써야되는데 요즘 식서스경기 보면 짜증이 나서 ;; 암튼 글 잘봤어용 ㅋ
오, 스펙트럼 의미가 저것이었군요, 키스톤이었으면 멋이 반감됬을듯 싶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