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장 친한 친구야. 항상 행복해하고 질문도 없지. 그리고 날 닮았어. 뿌리가 없거든."
영화 '레옹'(1994)에서 주인공 레옹은 화분에 기르던 식물의 이파리를 닦으며 이렇게 내뱉는다. 화분은 냉혈한 킬러 레옹의 유일한 친구다. 자신과 똑 닮은 친구이자 위로의 대상이다. 털모자, 동그란 선글라스, 긴 코트만큼이나 레옹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화분. 늘 그가 품에 안고 다니던 그 식물은 아글라오네마(Aglaonema)다.
"식물을 키워보니 화분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는 레옹의 맘을 알게 됐어요." IT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김정현(43)씨는 지난해부터 집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비교적 키우기 쉽다는 선인장을 시작으로 틸란드시아 같은 공기정화식물 등 10여 개의 크고 작은 식물이 '식구'가 됐다.
식물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반려동물'에서 '동물'을 '식물'로 치환한 '반려식물'이라는 단어도 이제 낯설지 않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10월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반려식물'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8%가 '식물을 키우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2.1%는 '반려식물'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고 했다. 식물과 교감하고 위로받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고독감 해소용뿐만 아니다. 사시사철 일상을 위협하는 미세 먼지 때문에 공기 정화용으로 집과 사무실에 식물을 들이는 이들도 늘었다. 어느새 봄이다. 나만의 공간과 일상에 생기를 더해줄 초록 식물과 사귀기 좋은 시기. '그린메이트(greenmate·초록 식물을 뜻하는 'green'+ 친구를 의미하는 'mate')'와 만나보는 건 어떨까
싱그러운 식물과 함께 사는 집은 나 혼자 살아도 생기가 넘친다. 작은 화분 하나라도 살아 있는 식물은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1인 가구 500만 시대,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식물을 친구, 가족 삼아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린메이트와 사는 사람들은 식물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반려동물에 비해 돌보는 시간과 비용은 적게 들지만 그린메이트가 주는 만족감은 크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에겐 ‘돌봄’이라는 본능이 있는데 식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살아가는 의미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며 “천천히 식물을 키우는 과정은 명상과도 같아 정서적으로도 좋다 ”고 했다.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그린메이트로 주목받는 건 공기정화식물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일상을 위협하는 미세 먼지의 공포 때문이다. 지난 2일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공기정화식물 판매량은 2016년 49%, 2017년 50% 증가했다. 지난 주말 찾은 서울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서도 아레카야자, 행운목, 보스턴고사리, 틸란드시아 등 공기정화식물이 매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식물의 공기정화 능력은 1989년 미항공우주국(NASA)이 발견했다. 밀폐된 우주선의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효과 좋은 식물을 찾아낸 것이다. 대표적인 식물로 아레카야자와 관음죽, 대나무야자, 보스턴고사리, 스파티필룸 등이 있다.
미세 먼지 제거에 탁월한 식물도 있다. 아이비, 스킨답서스, 율마, 틸란드시아, 라벤더, 로즈메리 등이다. 미세 먼지는 식물 잎에 윤택이 나게 하는 왁스 층에 달라붙거나 잎 뒷면의 기공 속으로 흡수돼 사라진다. 식물에서 발생하는 음이온이 양이온인 미세 먼지를 없애는 역할도 한다.
공기정화도 중요하지만 키우기 쉬우냐도 중요하다. 식물 인테리어 전문 쇼핑몰 ‘세남자바스켓’(3mans.co.kr) 김형준 부장은 “틸란드시아, 이오난사, 마리모 등이 초보들도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고 했다.
식물을 키우는 건 친구를 사귀는 것과 비슷하다. 나만의 공간에서 오랫동안 함께할 친구인 만큼 나와 잘 맞는 식물을 찾아야 한다. 슬로우파마씨 이구름 대표는 먼저 하나의 식물을 선택해 공을 들여 키워보라고 조언했다.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생각하고 대량 구매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식물과 함께 사는 게 익숙하지 않으면 식물들을 죽이게 되고 다시 키우지 못하는 계기가 돼죠.” 스킨답서스, 아비스, 더피고사리 등 강하고 키우기 무난한 식물을 하나만 골라 먼저 키워보는 게 좋다.
식물을 키울 때 중요한 세 가지는 물과 햇빛 그리고 환기다.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건 물 주기 요령. 입문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등의 매뉴얼을 따르게 되는데 식물의 상태에 따라 물을 주는 주기를 맞춰야 한다. 손가락으로 1㎝ 정도 흙을 눌러봤을 때 말라 있다면 그때 물을 주면 된다. 화분 아래 구멍으로 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흠뻑 주는 게 포인트. 초보는 장식용 마사토나 색돌을 빼고 흙 상태를 관찰하는 게 좋고 물은 세 번 정도 나눠서 주면 양을 조절하기 편하다. 야자류나 관음죽 같은 관엽식물은 열대 우림의 습한 기후를 좋아해 물을 공중에 분사해 잎이 수분을 흡수할 수 있게 해준다.
햇빛은 식물의 광합성을 위해 필요한데 직사광선을 피하는 것이 좋고, 물을 준 뒤에 햇볕을 쬐면 식물이 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일수록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고 신선한 공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환기를 자주 해준다.>조선일보, 강정미 기자
작년에 집에 벵갈고무나무 화분이 들어와서 그걸 보고 흐뭇하게 생각했는데 겨울이 오면서 죽은 것 같습니다. 잎이 다 지고 나무만 남았는데 봄이 되면 혹 잎이 날까봐 기다리고 있지만 다시 사오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엔 학교에서 환경미화를 한다고 교실마다 대여섯 개의 화분을 가져다 놓곤 했는데 그게 두어 다 지나면 다 죽어 나갑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화분을 가져오지 말라고 얘기를 했는데 이젠 그런 화분도 김영란법에 걸린다고 아예 없어진 것 같습니다.
삭막한 공간에 식물 화분이 하나 있는 것도 좋은 일일 겁니다. 저는 무엇을 가꾸는 일을 잘 하지 못해서 걱정인데 올 봄에는 화분 몇 개를 들여 놓을 생각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