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에 맞선 의병장… 죽음의 순간에서도, 불굴의 정신 안꺾여
영화 ‘교사형(Death by Hanging, 絞死刑, 1968)’에서 사형수 R(왼쪽)은 사형장에서
국가가 자신의 죄를 물을 수 없다며 무죄임을 주장한다. 아트시어터길드 제공
한시에서 사형 전 마지막 심경을 적은 시를 임형시(臨刑詩)라고 한다. 임종시(臨終詩)나 절명시(絶命詩)와 달리 강제된 죽음에서 비롯되는 비극성이 있다. 구한말 의병장 이강년(1858∼1908)은 다음과 같은 임형시를 남겼다.
「임절시(臨絶詩)」/ 운강 이강녕(雲崗 李康秊, 1858-1908)
오십 년 목숨 건 이 마음,
죽음 앞이라고 구차한 마음 있으랴.
맹세하고 다시 출전했건만 복수하기 어려우니,
저승에서도 칼날 무릅쓰고 싸울 마음 남아있으리.
五十年來辦死心(오십년래판사심),
臨難豈有苟求心(임난이유구구심).
盟師再出終難復(맹사재출종난복),
地下猶餘冒劍心(지하유여모검심).
* 10여년에 걸쳐 천하를 주름잡던 의병장 운강 이강년(雲崗 李康秊, 1858-1908)도 막상 죽음에 임해서는 생각 이 많았던 모양이다. 여러번 거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가는 안타까운 표정(衷情)이 잘 나타나 있는 시다.
✵ 이강년(李康秊, 1858 철종9~1908 융희2, 자 樂仁ㆍ樂寅, 호 雲崗) 역시 을미거사 때 유인석(柳麟錫)ㆍ이인영(李麟榮) 등과 기의하였다가 정미의거에도 다시 참가, 호서(湖西) 창의대장(倡義大將)으로 활약하였다. 『운강선생창의록(雲岡先生倡義錄)』에 전하는 자탄시(自嘆詩) 한 수와 『기려수필(騎驢隨筆)』에 실려 있는 임절시 한 수가 있다. 특히 이 임절시에는 순국의 최후가 너무도 처절하게 새겨져 있으며, 최후의 순간에도 굴하지 않는 장부의 기개가 불타고 있다.
시인은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가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킨 뒤 유인석 부대에 합류해 앞장서 싸웠다. 스승 유인석이 부대를 해산한 뒤에도 다시 거병해 이토 히로부미에게 격문을 보내고 서울 진공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전투 끝에 결국 매복한 일본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시인은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시는 1908년 9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전 지은 것이다. 한시에선 글자의 중복을 꺼리지만 ‘마음(心)’, ‘화난, 어려움(難)’이란 글자가 반복돼 절망적 상황 속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드러난다.
시인은 형 집행 뒤 10분이 지나도록 살아있었다고 한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교사형(絞死刑·1968년)’에도 재일 한국인 사형수 R이 교수형 집행 뒤에도 죽지 않아서 벌어지는 소동이 그려진다. 영화에선 교도소장이 과거에 경험한 식민지 포로수용소의 사형수 이야기가 나온다. 교도소장은 사형수가 죽음이 닥쳐오는 최후까지 현실을 부정하고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인은 죽음이 닥쳐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법정에서 의연하게 재판장과 검사를 꾸짖으며 일본의 만행과 을사오적·정미칠적의 배신을 성토했다. 형 집행을 앞두고 동지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하면서도 자신에게 씌워진 죄목(살인과 재물 약탈)의 부당함을 비판했다(‘기려수필·騎驢隨筆’). 영화 속 R이 국가가 자신의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면, 시인은 일본의 국권 침탈에 맞선 자신의 행위가 정당함을 확신했다. 한국인의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던 감독은 영화에서 반만년 조선 민족의 역사는 외세의 침략으로 점철됐으며,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35년간 국토가 유린당하고 사람들이 학살됐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R에 대한 교수형이 재집행되면서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관객 여러분도 사형 집행에 참가해 주셔서 고맙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감독은 국가에 의한 살인인 사형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재일 한국인이란 거울에 비친 일본인의 추악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시인의 임형시에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삶에 대한 미련도 찾아볼 수 없다. 적군의 칼에 얼굴에 커다란 상처가 남은 의병장의 행적을 되짚어 본다. 강제된 죽음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지사(志士)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출처 및 참고문헌: < 동아일보 2023년 09 14(목)|문화 [漢詩를 영화로 읊다 〈66〉의병장의 임형시(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Daum · Naver 지식백과]
첫댓글 10월10일 화요일
월요일 같은 화요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한 주를 힘차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삶의 여정에 늘 고마운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다고 합니다.
오늘도 싸늘한 가을 바람이지만 🍂 향기 맘껏 누리시고 신바람나는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