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용 요셉 신부
2024년 나해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루카 12,35-38
깨어있게 하시는 이유와 깨어있는 방법
스페인 베니돔에 건설 중인 47층 높이 고층빌딩에 엘리베이터를 설계하지 않은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스페인 매체 에코노미아가 보도했습니다. 처음에는 20층 높이의 건물을 설계하고
건설을 시작했지만, 개발자가 욕심을 부려 47층 269개의 방으로 변경해 공사를 계속했습니다.
최초의 설계에서는 20층 건물에 적절한 크기의 엘리베이터가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더 높은
건물로 바꾸며 엘리베이터를 추가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변경된 계획으로 인해 비용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결국 이 건물의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는 사임했으며, 재정적인 문제로 부실 자신이 되어버린
이 빌딩에 대한 권한은 2012년 갈릭시아에서 스페인 배드뱅크로 넘어갔습니다.
설령 건축디자이너가 잘못 설계했다고 하더라도 투자한 사람들이나 승인하고 관리 감독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건축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이상하다고 여겼을 텐데 왜 수많은 사람이
설계를 보고 거의 다 짓고 나서야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돈과 명예라는 욕망에 사로잡히면 눈이 멉니다. 욕망이 우리 영적 감각을 잠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엔 주인이 돌아올 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가 곧바로 문을 열어주는 하인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하인이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준비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주인이 매우 무섭거나, 혹은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인이 무섭다고 여겨질 때는 주인이 나가 있을 때 주인이 없을 때 하지 못하던 것들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주인을 사랑할 때는 일상이 더 개인의 욕망에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개인적인 욕망에 눈이 멀면 엘리베이터가 없이 고층 빌딩을 지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결국 인간의 욕망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부족으로 나타납니다. 성모님은 술도 드시지 않으셨겠지만,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채셨습니다.
욕망은 타인은 신경 쓰지 않게 만듭니다.
인간의 욕망은 왜 강해지는 것일까요? 두 원숭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있습니다.
두 원숭이를 서로 격리해 우리 안에 넣어놓습니다. 실험자 한 사람이 한 원숭이에게 자그마한
돌을 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손을 펴고 있으면 그 원숭이가 돌을 다시 사람에게 줍니다.
돌을 받은 사람은 돌 대신 오이를 원숭이에게 줍니다.
원숭이는 매우 만족한 듯이 오이를 먹습니다.
그런 다음 다른 원숭이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이 대신 포도 한 알을
줍니다. 원숭이는 포도를 맛있게 먹습니다.
물론 옆에 오이를 먹은 원숭이가 이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시 사람은 처음 원숭이에게 조약돌을 주고 돌려받습니다. 아마도 이 원숭이는 자신에게도
포도를 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원숭이에게 또 맹맹한 오이 조각을 줍니다.
이 원숭이는 약간 시큰둥합니다. 그러나 어쨌건 오이를 먹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옆의 원숭이에게 똑같이 조약돌을 주고받고는 포도를 줍니다.
또 처음 원숭이에게 똑같이 하고 오이를 주었더니 그 원숭이가 오이를 먹지 않고 실험자에게
집어던집니다. 실험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옆의 원숭이에게 똑같이 포도를 줍니다.
그런 다음 처음 원숭이에게 조약돌을 주었더니 이번엔 조약돌을 사람 얼굴로 던져 버립니다.
옆의 원숭이에게도 위협을 가합니다. 주인도 싫고 옆의 원숭이도 밉습니다.
인간도 이렇게 욕망이란 것이 하느님과 이웃들에 대한 원망이 되게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마치 하느님께서 없는 것처럼 욕망에 물들지 않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욕망은 사람은 모기로 만들어서 자기만 생각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미워하게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에서 살 자격을 잃습니다. 누가 모기와 함께 살고 싶겠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항상 함께 계심을 믿고 깨어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은총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이도 먹지 못하는 다른 원숭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꿈에서 좋아했던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하는 데 정말 정성스럽게 아침밥을 해 주는 아내가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잔소리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더 필요하다느니, 양말 좀 뒤집어 벗지 말라느니 갖은 잔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일하러 가는 것도 힘든데 아침부터 잔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평생 아내의 종으로 살아야 하는 것 같아, 괜히 결혼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사제관이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그렇게 감사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사제가 된 것에 대해 이전에는 그만큼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더욱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니까 조금 더 깨어있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 나의 불만을 욕망으로 채우려 하는 게 줄어들고 감사하는 분을 위해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깨어있기 위해서는 나에게 오이를 주는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것만이 세상의 욕망으로 이기적으로 되고 타인을 미워하는 삶에서
해방해줍니다. 사랑하면 그분이 올 것 같아 환청도 들릴 수 있습니다.
저도 샤워하다가 사랑하는 이의 전화인 줄 알고 물이 흐르는 채 전화기로 왔지만,
환청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면 세상 욕망에서 벗어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내가 감사하려는 노력의 열매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