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사극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던 ‘혈의 누’.
그러나 최근 연세대 국문과 설성경 교수는 <혈의 누>보다
8년 앞선 1898년《한성신보》에 연재된
‘토소자’의 <엿 장사>를 최초의 신소설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만간 교과서도 바뀔 처지다.
여하튼 이인직은 ‘혈의 누’ 덕분에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문학인으로 알려져 있어 생각보다 이인직의
극악한 친일 행위는 가려져 있기도 하다.
지금도 그이의 고향인 경기 이천 설봉산 자락에 있는
도자기 공원에 가면 이인직을 기리는 문학비가
큼지막하게 서 있기도 하다.
1906년에는 송병준이 주도하는 친일 단체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의 주필이 되면서 국내에서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벌인다. 한일합병 당시 일제와 합병을 앞장선 양대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송병준의 일진회와 이완용이 이끄는
내각이었다.
이인직은 처음에는 송병준 계열의 《국민신보》 주필로
활동하다가 1907년 이완용의 후원으로 이완용
친일 내각의 기관지인 《대한신문》 사장에 취임하면서
이완용 내각과 관계를 맺어 나간다.
1910년 경술국치 이전까지 이완용의 비서로 활동한 이인직은
경술국치 이후에 ‘경학원 사성’이라는 직위를 얻는다.
‘경학원’은 조선 왕조의 정신적 기관인 성균관을 격하하여
유림들을 친일로 전향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이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한일 합병’에 앞장 선 그이가
꿈 꾼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대표 작품인 <혈의 누>가 아마도 그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품은 청일전쟁 때 청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면서
여주인공 옥련을 구해 주는 일본군 군의관을 등장시킨다.
이는 조선이 그동안 청나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과 함께 조선을 구해줄 구원자는 바로 일본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국권피탈 때 이완용(李完用)을 돕고 다이쇼[大正] 일본왕 즉위식에 헌송문(獻頌文)을 바치는 등 철저한 친일행동을 하기도 했으나 한국에서 처음으로 산문성(散文性)이 짙은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신소설을 개척한 공로는 크다.
↑ 네이버 백과사전글중에서 찾아왔어요
준회원님이 보내주셨는데 대필안된다그래서
(가르쳐주신분들감사해요!)
제가 직접 네이버뒤져서 찾아왔습니다
충격적이네요.....허거덩
아시는분들도있겠지만
모르시는분들도 있으니깐
올렸어요!
첫댓글 '혈의 누'라는 제목자체가 일본식문체라나? 음....왜 일본어 중에 ~の가 ~의 라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뭐 원레 한국식문체로는 혈누? 혈루? 가 맞는말이라고...아 복잡하네요 ㅋㅋㅋㅋㅋㅋ
22222 선생님이 일본식문체라고 알려주셨음
그래서 혈루가 맞다고 그러던데요.
맞아요 그거 치노나미다라고 읽으면 딱임. 학창시절에 혈의 누에 대해 배우면서, 왜 일본식으로 제목을 지은 걸까 하고 의아했던 적이...
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혈의 누'란 영화 어때요? 괜찮은 영화였는데..
혈의 누 란 소설과 영화는 별개에요 ㅋ
원래 이인직이라는 작가가 친일문학의 선구자입니다. 문학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분들은 아마 다 아실 내용일듯.. 이인직의 절친한 친구도 매국노였고 이인직의 스승은 일본인입니다. 그리고 이인직은 이완용의 비서를 지내기도 했죠. 아 그리고 이인직은 장례도 일본식으로 치루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난건 한국이지만 죽어서는 일본사람이죠
헐.. 혈의누..읽고 감동 먹었는뎅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22222222222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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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문학작품활동을 할려면 일본의 도움이 많았었대요. 일본에 붙지않으면 절대 작가 시켜주지않고..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최남선.이인직.이광수등등 많은 작가들이 친일을 했지요. 안그러면 문학작품활동을 못하니까요.... 광복이 되고 난후 자신의 친일행위를 비판하고 사죄하는 작가들도 많았어요;..
근데 그렇다고 군대에 나가서 싸우라고한 말 한건 용서할 수없음-_- 이광수가 그랬대요 일본이 이렇게 빨리 망할줄 몰랐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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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이광수도 창씨개명함! 친일 작가들 많아요. 이광수, 김동환도 황국신민 어쩌고저쩌고 하셨꼬..
친일파인사람들 많음....;;
쩝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이 같은 분들이 좋아
22222222222윤동주 완전 훈남 ㅋㅋ
그래도 우리 학원 샘은 윤동주를 그렇게 달가워하진 않던데..방관적이었다고.
윤동주.. 일본 마루타로 끌려가 생을 마감하신 분.. 솔직히 시인들은 여리고 고뇌하는 이미지가 많이 떠오릅니다.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시를 쓸수 있었을까요? 또한 자기딴에 죽을거 뻔히 알면서도 죽어도 그런시를 쓰고싶어 쓸때..또 쓰면서도 혼자 얼마나 괴로워하고 또 힘들었을까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이상 우리는 그들에 대해 지극히 이성적으로 평가를 내릴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몰랐는데.......ㄱ- 난 윤동주님이 제일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화 잼던데 ..................
하지만 이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소설가들이 친일 안하고 어떻게 글을 썼겠어요 절필하신 분들도 많고 옥중에서 쓰신 분들도 많지만 그분들은 또 우리가 애국자라고 높여드리잖아요 친일파 소설가들은 들을 수 없는 말이죠 당시에 예술,문학등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려면 친일 안하시고는 힘드셨을거예요 시대가 시대인만큼..
확실히, 지금 쉽게 쉽게 얘기하면 안 될 일이죠..
어쩐지 제목이........
친일파였던 아니였던 우리가 왈가왈부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 -; 국민들을 선동하여 친일 행위를 하게끔 한것이 아니라면;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문학이란 장르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합니다. 책 내용이 친일에 관련된 내용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비유를 통해 친일에 관한 내용을 싣고 그걸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읽게 한다면 그것또한 선동으로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국민들을 선동하려고 했는데요-_-뭐 전쟁전선(일본을 위한)에 나가서 싸우라는 글을 기고하고 우리나라 국민성이 어쩌구저쩌구~~
알고 있었는데... 전 그사실 알고 많이 화났었어요. 혈의누 재미있게 봤던건데!! 무정 작가도 친일파인사실을 중학교때 알았을때 그 말로 할수 없었던 슬픔.. 아, 이런 훌륭한 작가들이 친일파라니 옛 문학계의 손실이 많이 컷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ㅠㅠ
수업시간에 공부했어요~ 발표 완전 개빵나게 준비해가꼬ㅋㅋㅋㅋ 아직도 이인직이라고 하면 치가 떨려요ㅋㅋㅋㅋ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분들중에 꽤 유명한 작가분들... 친일파 많으시더라구요. 완전 공부하면서 진짜 막 애국심이 치솟고 ㅋㅋㅋㅋㅋ 윗분 말씀대로 이인직은 뼛속까지 아예 일본인이었더군요.
저사람은 확실히 친일파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인직은 친일 소설을 썼다가 해방이 되자 난 죄인이다 이런식으로 말하면서 살았는데, 친일파해서 일본으로 부터 받은 돈을 지키려고 일부러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그때도 이혼제도가 있었나 봐요, 재산을 부인에게 주고 남남이 되니까;;)함께 살았다고 하더군요..
저도 알고 있엇음 ㅡㅡ휴
민족대표 33인들 중에 나중에 친일 안한건 3명인가 밖에없고-_- 바보같이 공원에서 선언낭독하기로했던거 취소하고 자진신고를 해서 잡혀가냐 ㅋㅋㅋㅋㅋ완전 어이없삼...
전 역사선생님께 듣기로는 최남선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일본퇴기 들이 있는 일본기방에서 썼다고-_-완존 쒯
뭐 울나라대통령도 혈서로 천황께 충성맹세한다고 쓰고 그랬으니-_-우리나라 뭔가 조금 이상-_-
혈의 누 읽어보시면 알 수 있어요,, 완전 친미 친일 소설이죠,,,, 저도 배우면서 많이 화났었어요 아 참 영화 혈의 누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내용이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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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았냥?
님 저한테 하시는거?
친일작가가 솔직히 잘한 건 없죠. 하지만 왠지 제가 저 시대를 살던 문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았겠나 라는 생각은 듭니다. 물론 친일작가들 편을 드는 건 아니구요.
어이쿠 젠장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