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출동했습니다.
예전에는 이촌에서 내려서 이리저리 길 건너고 그러면서 찾아갔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렇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지하로 뚫려 있어서 그 길만 따라가면 됩니다.
겨울이지만 초록 대나무길로 걸어서 올라가면
이렇게 본관 건물이 짠~ 하고 나타납니다.
전시 보러 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네요.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어요.
우리는 특별전시실1.
11시 입장.
전시장 입구에서....
전시의 주제를 말해주는 안내문.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던 19세기 말, 비엔나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보수적인 역사주의가 예술계를 지배하던 시기, 구스타프 클림트를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은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탐구했습니다. 이들의 도전과 실험은 에곤 실레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이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자유를 꿈꾼 예술가들은 비엔나 예술계를 모더니즘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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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은 오스트리아 레오폴트미술관과 협력하여 총 191점-
회화뿐 아니라 사진, 포스터, 공예품, 가구 등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전시합니다.
좋은 작품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작품 위주로 올려보도록 할게요.
베토벤의 집이 있는 거리를 그린 목판화 연작 중 하나
카를 몰(1861~1945)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머물렀던 비엔나의 집을 목판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들은 베토벤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 전시를 통해 에곤 실레(1890~1918)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자로서 클림트를 무척 존경하였던 듯합니다.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아 그의 그림은 어두운 그림이 많았어요.
그런 그가 결혼을 한 후에는 그림이 다소 밝아졌는데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네요. 그래도 많은 작품을 남겨 다행입니다.
언덕 아래의 마을
에곤 실레
1907년
카드보드에 유화, 패널에 부착
가을 숲
에곤 실레
1907년
카드보드에 유화, 연필
프란츠 하우어의 초상
에곤 실레
에곤 실레는 초상화도 많이 그렸고,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가장 유명한 그림 중의 하나인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년
패널에 유화 물감과 불투명한 물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는 예술가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실레는 '자아 정체성의 위기'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예술가였죠.
깔끔한 흰색을 배경으로 어두운 옷을 입은 인물과 강렬한 붉은 색의 꽈리 열매가 작품 좌우에서 균형을 이룹니다. 어깨를 살짝 돌리고 관람자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자신감과 연약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얇고 세밀하게 그려진 선에서는 실레의 예민한 성격과 내면의 불안한 감정이 전해집니다.
긴 머리를 한 자화상
에곤 실레
1907년
캔버스에 유화
스스로를 보는 이 2(죽음과 인간)
에곤 실레
1911년
캔버스에 유화
실레는 이 작품에 '스스로를 보는 이' 또는 '죽음과 인간' 이라는 두 개의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림 속 인물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 있고, 그 뒤로 두 번째 자아가 유령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유령이 인물의 어깨를 감싸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본래 나뉠 수 없는 하나의 자아에서 분리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아래에서 뻗어 올라온 '손'입니다. 실레는 자신의 작품에서 손을 내면 심리를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어두운 색조와 날카로운 선으로 주인공의 고통과 불안함을 표현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
에곤 실레
1912년
패널에 유화
어머니와 두 아이
에곤 실레
1915년
캔버스에 유화
애도하는 여성
에곤 실레
1912년
패널에 유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에곤 실레
1912년
캔버스에 연필과 유화
상실과 고립을 그린 검은 풍경화
에곤 실레는 마치 사람을 그리듯 도시와 자연 풍경에 감정을 담아냈습니다. 풍경은 예술가의 내면 심리와 감정을 나타내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기묘하게 뒤틀리고 어두운 도시나 강변 풍경을 그린 작품들에서 실레의 고뇌와 시대적 불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실레는 인간의 상실감과 고립, 정서적 불안감을 검은 풍경화로 그렸습니다. 특히 자신이 보았던 모습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유롭게 다시 조합하여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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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 언덕
에곤 실레
1912년
캔버스에 유화, 불투명 수채, 연필
도나우강의 슈타인 마을
에곤 실레
1913년
캔버스에 유화
언덕 위의 집과 벽의 풍경
에곤 실레
1911년
캔버스에 유화
에곤 실레는 어머니 마리 실레의 고향인 남부 보헤미아의 크루마우 오늘날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지역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크루마우의 중세적인 도시 분위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작은 탑과 울타리가 있는 풍경을 일그러진 형태로 그렸습니다. 특히 오른쪽 톱니 모양의 벽은 실레가 크루마우에서 직접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뒤쪽으로 울타리가 뻗어 있거나 언덕이 있는 그림 속 풍경은 사실과 달라 실제 장소를 그대로 그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블타바강 가의 크루마우(작은 마을)
에곤 실레
1914년
캔버스에 유화, 검은 분필
작은 마을
에곤 실레
1913년
캔버스에 유화, 연필
색색의 건물이 강변을 따라 그려져 있어 장식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에서 건물들은 여러 색을 띠고 있지만 지붕과 길, 강은 검은 색조로 표현되어 전반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줍니다. 실레는 자신이 머물렀던 도시의 암울한 분위기, 스스로 느꼈던 고립감과 소외감을 검은색으로 표현해 생명력을 잃은 죽은 도시를 그려냈습니다.
저는....불우한 시절을 보낸 에곤 실레를 중점적으로 보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같은 시기, 같이 활동했던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입니다.
옥수수 짚이 있는 풍경
레오폴트 블라우엔슈타이너(1880~1947)
1902/03년
캔버스에 유화
마리골드
콜로만 모저(1868~1918)
캔버스에 유화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을 이끈 콜로만 로저. 다양한 재질의 공예품을 만들고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동했습니다.
수공예와 장인 정신을 내걸었던 공방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자 경영 방식에 대한 의견 충돌로 결국 모저른 1907년 디자인 공방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모저는 회화를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하루 또는 계절에 따라 빛과 색이 달라지는 장면을 담은 풍경화를 많이 그렸고, 강렬한 색채를 띠는 정물과 꽃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전시물에는 의자, 탁자, 손가방, 컵 등 다양한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정말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사진은 안 찍었지만)
구름 습작
콜로만 모저
1914년경
카드보드에 유화
레장(르 샤모세르산)
콜로만 모저
1913년
캔버스에 유화
깊은 숲(<아베>를 위한 습작)
알빈 에거-리엔츠(1868~1926)
1895
캔버스에 유화 - 이 작품은 1809년 베르기젤 전투라는 오스트리아의 역사적, 종교적 주제를 결합해 그린 <베르게젤 전투 이후의 아베 마리아>의 배경을 위한 습작입니다.
피에타
연극 <살인자, 여성들의 희망>을 위한 포스터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
1909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오스카 코코슈카는 1909년 비엔나 국제예술전람회에서 공연한 연극의 극본을 직접 썼습니다.
이 연극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갈등을 폭력과 욕망에서 비롯된 권력 투쟁으로 묘사했고, 강렬한 감정과 파괴적인 주제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코코슈카는 자신의 연극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피 흘리는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피에타> 도상이 그려진 포스커에는 애도하는 모습 대신 분노에 찬 야수 같은 성모가 등장합니다. 거친 글씨체는 이 그림과 연극에 담긴 잔혹하고 격렬한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관람객들...
이제 좀 빠져서 헐렁한 느낌이지만...
아이고, 엄청 사람들 많았어요.
아래는 영상으로 본 건데 감동적이어서 올려봅니다.
비엔나의 꿈꾸는 예술가들, 혁신을 내세운 예술가들이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맨 위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에곤 실레, 아래쪽 늙은 남자가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입니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죠.
클림트가 죽고 난 뒤....
그들은 똑같이 모여 있고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래 쪽에 클림트의 빈 의자가 보입니다.
에곤 실레가 가장 존경했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애도하는 방법이겠죠.
여기서 눈물이 찔끔...
1시간 30분 가량 전시를 보고
이촌역 3-1번 출구로 나와 이촌시장에서 점심도 먹고, 커피와 간식도 먹었습니다.
열심히 보기는 했지만 뭔가 아쉽네요.
다시 올 수 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보면 좀 나을 것 같은데....
혼란한 연말연시.
잠도 안 오고, 일도 잘 안 풀리고...
힐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댓글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상설전시는 안보셨어요?
저는 갈 때마다 반가사유상 보는데 정말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사람에 둘러싸여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너무 힘들었어요.
아, 그걸 봐야 하는데...ㅠㅠ 근데 상설전시장에는 사람이 더 많더라고요.
어제 힐링의 시간이었어요.
에곤쉴레 "나의 예술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28살 요절. 아까운 인재, 측은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