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앉아 그 교회에 최선을 다해 섬김을 하던 집사님이 그 일로 마음 고생한 것을 듣고 있자니... 이전에 그 일을 문자로 대했을 때랑은 다른 느낌이라서 그 이야기를 해 주신 분을 위로(?)하고자 공감대 형성으로 그 목사님 욕을 해 버렸다.
돈과 여자관계가 한꺼번에 발각된 이 목사님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한 두번은 아니지만 내가 가까이 아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이번에 동시에 겪은 일이 되다보니
나로서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교인들은 얼마나 더 큰 충격이었을까! 나랑 전혀 상관 없는 교회의 일이고 내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분의 일인데도 나에게 분노하는 마음이 어제는 그야말로 속으로 치밀어 올랐는데 말이다!
내 화장대 옆에 걸어 놓은 성구가 저절로 기억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 받으라" 히 13장 7절 말씀
결국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교회 빌딩이 얼마나 크냐? 성도수 얼마냐? 교회에서 어떤 봉사를 하는데 담임목사가 얼마나 큰 공헌했냐? 얼마나 그 종이 능력이 있어서 그 종을 통해 치유의 은사가 일어났느냐?
그런것이 아무 소용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은?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주의 하여 보라!는 것은 그 종이 어떤 종인가 분별은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심판주가 아니니 심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별은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나님의 종인지 돈만 밝히는 삯군인지는 분별해야 하니까말이다.
어떤 일을 저질렀다?? 사실 난 차라리 이런 것은 이해하는 편이다.
인간 그 누구나 갖고 있는 죄성이고 그리고 이럴 때는 음란의 영에게 사로 잡혀서 한 일이니 영적 전쟁에서 무너졌다라고 이해는 되어지는데
일이 발각 되고 난 다음의 자세에 대한 것..
아니.. 회개하셔야죠!! 그래야 사함을 입고 긍휼함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근데 퇴직금을 더 내 놓으라고 한다 하니...
된장.. 국이 왜 갑자기 떠올라야 하는지.. (중국 번역은 이 말이 전혀 번역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 한번 써 보았다)
그런데... 어제 이렇게 들은 이야기에 함께 공감대 형성의 말로 위로를 하고 집에 왔는데 아차!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영이 눌림을 경험한 것이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라" 하신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딱 한마디 욕을 했는데 욕은 무조건 "더러운 말"의 케테고리에 들어가는 것이니 내가 어제 더러운 말을 하게 된 것이니 이미 내 영이 더러움을 입은 것이었다.
나 평소에 욕을 할리가 있는가!! 더러운 영화도 안 보고 연속극도 안 보니 욕이라는 것 하고 나는 상관없이 사는 편인데 어제는 욕도 한 마디 하고 그 목사님 비판도 확실하게 한지라..
집에 돌아 온 후 계속 입술을 정케 하는 회개기도와 비판하는 말을 한 입술에 대한 회개기도 ...
한참 회개기도를 한 뒤에야 눌려있던 영이 다시 살아남을 느꼈다.
다음부터는 정말 더 더욱 조심하면서 언행심사를 다스릴 수 있어야겠다.
다 니 엘 9 장
18 -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Give ear, O God, and hear; open your eyes and see the desolation of the city that bears your Name. We do not make requests of you because we are righteous, but because of your great mercy.
내가 어제 같은 일이 없었으면 이렇게 나의 공의 의지 안하고 주의 큰 긍휼 의지한다는 성경구절이 그렇게 마음에 안 와 닿았을 것 같기도 하다.
다니엘 9장에는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상에 대한 해석을 주면서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아마 어제 일이 없었으면 나는 이 성경구절을 내 묵상구절로 정하고 "주님 저로 하여금 이렇게 크게 은총받은자여 고백을 듣게 하옵소서" 이런 맥락의 기도를 드렸을 것 같다.
그러나 어제 일로 인하여 주님께 긍휼을 입어야 함을 스스로 강하게 깨닫고 주님께 나의 의가 아니라 주님이 허락하시는 긍휼을 입고 기도를 올린다는 말을 하게 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음.. 왜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오게 하는데 힘을 써도 부족한 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한 몫을 했는지...
참.. 갑갑하고 짜증스럽고 원망스러운 시간이 어제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을 겪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볼 때 저는 이러한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긍휼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백성들의 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금식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죄를 지은들 뭐.. 얼마만큼 지었을까요?
당대의 의인 중에 의인으로 살은 자라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다니엘인데!!
흠도 없이 점도 없이 하나님 앞에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온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자신의 죄 뿐 아니라 자신의 백성들의 죄를 자복하는 이 마음
아.. 이래서 다니엘은 당대에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의인의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주님 저는 제 죄 하나 조금이라도 덜 짓고 살고자 노력하는 그 차원의 그리스도인입니다.
남들의 죄를 자복하기는 커녕 "저 사람 저렇게 정말 살고 싶을까??" 그런 생각이 앞서는 사람이지요
이러한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아직도 그 일 저질른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구요 나야말로 정말 "끝까지" 이거이 내 "행실의 결말"에 대하여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저는 남들 판단하는 말 하지 말라고 설교에 자주 하는 편인데 제가 설교한대로 잘 살아가야겠구나 그런 마음도 들어서 감사합니다.
어제는 남의 말을 열심히 하면서 판단한 일로 마음이 좀 무거웠으나 오늘은 새 날이라 감사합니다.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