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웃을 일 없는 세상에는 털퍼덕 앉아서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는 유머와 재치를 만나고 싶다. 시위를 축제로 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인들 오죽하며 우리도 가만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 내는 사람들, 이도저도 아니면서 그런 상황들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 가구당 개인 빚이 천만원을 넘어섰다니 제대로 흥청망청 써보기라도 하고 그런 소리 들으면 덜 억울하겠다는 사람들.
명퇴라는 이름으로 집에 있는 남편과 아직도 취직 못한 아이들. 다림질을 귀찮아하던 그 때가 그리운 사람들. 이 쪽도 저 쪽도 아닌 그저 즐겁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나면 행복해 지는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최윤희다. 그녀의 어절과 어미마다 쏟아져나오는 희망섞인 이야기와 감칠맛 나는 그녀의 입담이면 적어도 그 순간만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실실(?)거리며 웃을 수 있으리라.
38살까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가 운명의 날벼락으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가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최윤희.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가득찬 그는 고정관념을 깨야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현재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 등의 주제로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대학, 기업체 등지로부터 빗발치는 강의요청을 받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단히 준비를 하고 전화를 했다. 이름을 대며 예의를 갖추고 우선 내가 누구인가를 설명하려 하는데 “아니 ~·그 이병혜씨 맞느냐”고 느린 듯 반가운 말투로 반문한다. 이차저차 우리는 바로 통해 버렸다. 이미 나에 대해 저만큼 알고 있었고 나는 이만큼 그녀를 알고 있었다.
약속을 칼처럼 지키는 최윤희
그는 57살의 나이에 오색빛깔 무지개빛으로 물들인 머리로 나를 제압하며 앉아있었다. 절대로 인터뷰는 안된다며, 그냥 얘기나 하자며 손사래를 치더니 전혀 지역주의를 느낄 수 없는 (충정도 사투리인지, 부산서 살았다더니 경상도 사투리인지, 전라도 말인지) 어눌한 듯, 느릿한 말투 그대로 싣는다.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
- 왜 그렇게 강의가 많으세요. 연락이 어렵던데요.
제 얼굴보세요. 나이는 어떻구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나봅니다. ‘저렇게 모자란 여자도, 못 생기고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여자도, (이건 제 겸손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에요, 정말 나하고 24시간만 지내보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아요.) 저렇게 띨빡한(?) 여자도 씩씩하게 사는데 우리가 왜 못 살아 하면서 사람들이 저를 보면 용기가 불끈불끈 생기나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한테 강의를 계속 청하나봐요,
조영남 선배하고 친한데 어느 날 진지하게 ‘뇌검사 하러 하자!’ 그래요. ‘아니, 왜 내가 아픈 데도 없는데...’ 하니까 내 오랫동안 지켜보니까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제가 운전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더 웃기는 것은 지하철 출구도 제대로 못 찾아가면서 제가 용감하긴 굉장히 용감해요. 강연 부탁하는 전화를 받을 때 가는 곳 전화번호도 안 적어놓고 어느 역 몇 번 출구로 나간다는 것도 안 물어봐요. 될 수 있는 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려고 ‘네, 알았어요’ 하고 끊거든요. 용감무쌍하게 내 나름대로 딱 올라가잖아요, 그러면 정반대에 있는거야. 그래서 다시 찾아가면 이번에는 대각선으로 있고. 그 높은 지하철 계단을 서너번씩 찾아 해매요. 차라리 내가 쓰레기라면 진작에 분리수거 해버릴 텐데 하면서 나를 끌고 다닌다니까요.
그 뿐만이 아니라 음치, 노래도 못하죠, 기계치, 기계도 영 다루지 못하고, 기계는 바라보기만 해도 떨려요. 춤치, 춤 못추지 술치, 술도 못마셔요 게다가 눈치, 코치, 염치까지 없다니까. 그러다보니 조영남씨가 그런 말을 하게 됐죠. 딴 사람 같으면 ‘아우 별 소리 다 해’ 할 텐데 나는 박수를 치고 맞다맞다 했어요.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지 하면서. 병원에 가서 뇌검사하고 칩하나 갈아끼우면 될걸. 띨빡한 칩을 쌈빡한 칩으로 바꾸면 칠치 소리 안 들어도 되잖아요.
- 카피라이터에서 강의하는 행복전도사로의 변신 참 재미있네요.
그 사람들이 저를 보고 안도의 한숨과 위안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폼 잡는 사람 제일 싫어해요, 나야 폼 잡을 것도 없으니까 제 비리를 다 까발리고 다니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고 나는 나대로 편해~. 폼잡으면 힘들잖아요. 없는 각본을 만들어야 하니까. 뭐든 다 까발리니까 고해성사하는 것처럼 편해요. 사람들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니까 강의만 가면 양쪽이 서로 뻑뻑 가는 거예요. 언젠가 전라도 여성대회에 갔었어요. 1,200명인가 여성지도자들이 모이는 대회였는데 끝나고 나니까 “오매 오지게 재미있소잉” 하더라고요. (웃음) 저는 또 그분들 보고 뻑 가는 거예요. 나 같은 게 뭐 대단하다고. 이메일 같은 게 많이 오거든요. 중학생인가 여학생이 편지를 보냈는데 저를 똥 리포터라고 한 메일도 있었어요. “나는 너에게 노벨 상상력 상을 주고 싶어, 어떻게 이렇게 편지가 재미있고 발랄해” 하고 쓰니까 그 아이가 “나는 선생임을 변기통으로 임명하노라” 하더라니까요. 얼마나 재미있어요. 산다는 것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만류하며) 아니 왜이래요. 나는 초상권도 없는 얼굴이지만. (그녀의 유머끼는 그대로 발동한다). 어머, 너무해~ 오늘 나의 운명은 가혹해. 하지만 나는 역경 앞에서 강해지는 행복의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요~. 외모에 대해 열등감 느낄 필요 없어요.
옛날에는 외모에 대해 굉장히 열등감을 느꼈는데 어느 날, 외모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고 깨달았어요. 그래서 외모로부터 해방됐어요. 좋아요. 찍어요.
- 머리는 어떻게 해서 오색빛깔 무지개입니까?
지금 머리에 흰 머리가 있잖아요, 사람들한테 그랬어요. 내 흰 머리가 싫으면 가라고. 내가 왜 그걸 감춰야해. 그런데 우리 남편이 매일 뽑는 거예요. 이건 뽑아야 된다나. 흰머리를 내세우는 건 자기만의 만족이지, 다른 사람들 배려해서 뽑아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변하더라고. 왜냐하면 일단 시선이 머리로 가, 얼굴로 안 오고. 그러니까 [얼굴에 자신있는 사람은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이렇게 써야해.
미장원 여자가 혼자 1인 다역을 하는 동네미장원을 다니는데 심심하니까 내가 가면 잘 걸려들었다 그래요. 내가 브릿지 하나 넣어주세요 하니까 심심해서 이건 돌려서 해야한다나. 그래서 전문가가 최고니 맘대로 해주세요 하고 맡겼더니 이렇게 됐어요. 요즘엔 시간도 없고 하니까 내가 집에서 바르는 거예요.
(식사 주문을 하는데도 메뉴에 봄나물 산채 비빔밥을 주문하며 그녀는 “봄이 얼마나 들어있나 봐야지?”라고 말하며 주문한다.
스스로 당당하면 성공? NO.1 보다는 ONLY 1.
-전업주부 하다가 어떻게 1330대 1 이상을 뚫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됐어요?
84년 3월 2일, 그 때 나는 전혀 취직할 생각도 안 했어요. 여성들한테 희망을 주는 이야기죠. 내가 34년 전에 시집을 갔어요. 그 때만 해도 호랑이가 피자 먹던 시절 아니에요. 그 때는 5% 특별한 여자나 사회생활을 했지 대부분 여자들은 거의 살림만 했잖아요.
어떤 남자가 우수에 젖어서 담배를 멋있게 피는 거예요. 그 모습에 내가 뻑 갔어요.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했어요. 결혼할 때, 알고 보니까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나한테 할 말이 없는 거야. 자자손손 가난해도 결혼한다 했더니 부모님이 난리가 났어요. 선생님들도 다 반대했어. 너 보따리 장사 할 거라고. 내가 쏠림현상이 극심해요. 그 사람밖에 안 보여. 그래서 이 사람을 데리고 내가 무인도로 도망가자 하고는 집을 나와 버렸어요. 진해 언니 집으로 가서 결혼을 한 거예요.
결혼하니까 내가 삼대 천재거든. 호기심 천재, 착각의 천재, 망각의 천재. 갈 집이 없는 거예요.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데 임신해 배가 부르니까 부엌이 작아서 못 들어가서 옆으로 다녔어요. 그렇게 살다가 결혼 8년차 때 홍제동에 10평짜리 아파트(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야) 거기서 난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사업에 실패했죠. 나는 사회생활을 생각을 안 했어요. 그렇게 살다 가는 게 인생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다 틀어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남편한테 매일 감사패 증정해요. 사업 망해서 이사를 가야하는데 돈은 없고, 그 당시 아이들 5,7살 교육적금을 들고 있었어요, 신통방통하게. 그걸 해약하고 부산으로 가자 그랬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왜 하필 아무도 모르는 부산으로 가려고 하느냐 그래요. 그래서 지금 우리 가족이 초토화 됐으니까 지금은 “우리가정의 육이오다”라고 했어요. 거기는 아무도 우리를 모르잖아요. 영도다리로 갔어요.
비관주의자는 희망속에서 절망을 보지만 낙관주의자는 절망속에서 희망을 캐낸다. -윈스턴 처칠-
- 왜 하필 영도 다리였어요? 6.25 때 몇 살이셨는데요?
네 살인가 그랬죠. 부산 가서 문간방 생활했는데 주인 아줌마는 매일 고스톱만 치는 거예요. 그 사람들 특징이 시간이 없잖아요. 설거지도 이만큼 쌓여있고 청소도 안 하고. 그래서 내가 할수 없이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했어요. 1년간 내가 파출부처럼 일 하는걸 의식을 못하게. 그리고 밤에는 주물러요. 하루종일 고스톱 치느라 팔과 다리를 과다 사용했기 때문에 얼마나 아프겠어요. 일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삼순이처럼, 제가 삼순이에요. 칠순이, 푼순이, 맹순이. 청소하고 있는데 불현듯 눈물이 쏟아졌어요. 최윤희 너 이게 뭐냐. 이게 사는 거냐. 그래서 제가 스스로에게 시험문제를 냈어요. 객관식으로, 주관식은 너무 힘드니까. 1번 이혼을 해라 2번 가족들과 자살하라 3번 타락을 해버려라. 4번 새 출발.
1번, 이혼을 하려고 하니까 이혼이 원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구청 갔다 법원 갔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 차라리 그냥 살아야겠더라고요. 2번이 더 낫겠더라고요 그래서 밖에서 놀고 있는 5살, 7살 짜리 애들을 불러서 엄마가 할 얘기 있다 하니까 사투리 쓰면서 ‘엄마, 너무 재미있어 죽겠는데 빨리 말해요, 친구들이 기다리는데...’하며 신나해요. 자식이 무슨 죄냐 싶어 실행 못했어요. 그래서 3번, 묻지마 인생, 타락을 해버려야겠다 하는데 절 보세요, 타락이 가능한 외모에요? 타락도 좀 예뻐야지. 나는 아무리 해도 사람들이 전혀 안 섹시하대.
그래서 3번도 안 되니까 4번밖에 없잖아요. 사람의 마음이 운명을 바꿀 수 있고 인생을 바꿀 수 있고 다 바꿀 수 있어요. 좋아, 죽은 셈 치고 다시 살아야지, 마음이라는 마법의 버튼 하나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에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컴컴했던 세상이 초록, 그린의 세상으로 바뀐 거예요. 냉수 꼭지를 돌리면 냉수가 나오고 온수 꼭지를 돌리면 온수가 나오는 것처럼 내 마음의 버튼을 희망 쪽에 두면 희망이 생겨요. 마음의 버튼 하나 갈아끼우니까 할 수 있다, 해보자.
튀는 자기소개서로 1330:1 경쟁률을 뚫고 카피라이터가 되다
- 중년의 나이에 카피라이터가 되기까지 얘기를 해주세요.
전철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주부사원 뽑는다고 해서 응모했죠. 그래서 사회생활 시작한 거예요. 금강기획 광고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데 나는 광고에 광자도 몰랐어요. 카피라이터가 뭔지를 알아야죠. 지금도 카피라이터가 뭐하는 직업인줄 아세요 하면 응~커피 뭐 할 정도로 모르는 분들 계실걸요. 나도 하루 종일 복사를 하는 직업인가보다 했다니까요. (‘설마’ 하고 되묻자) 요새도 카피라이터가 뭔지 모르는 사람 많아요. 난 기계만 봐도 무서워 하는 기계치라니까요. 일단 회사생활을 시작했죠. 회사에서 처음에 다 저를 보고 쫓아내려고 했어요. 그렇잖아요. 마흔이 다 된 여자가 카피라이터로 오니 뒤집어지지.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된다니까요.
많이 지원하면 한 삽십명, 오십명, 한 백명이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1330명이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포기하려고, 중간에 큰 문이 있길래 거기로 나가려고 했다니까요. 불가능하니까 도망이나 가야겠다고 질려서 있는데 한 여자가 날 잡으며 그러지 말고 같이 시험 보러 가자고 해요. 착하고 적극적인 여자는 어디에나 있나봐요. 그 여자가 은인이라서 지금도 찾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시험장에서 내 첫 마디가 “어머, 컨닝 좀 하게 해 주세요”였어요. 사람이 많아서 열 그룹으로 나눠서 시험을 봤는데 감독관이 왔다갔다 하니까 컨닝은커녕 찍어야 돼요. 옛날엔 컴퓨터 시험지잖아요. 번호 중 하나를 까맣게 칠하는 거. 문제를 하나도 모르는데 감독관은 왔다갔다 하지 창피하니까 하는 척 했어요. 그 곳을 벗어나고 싶어서 계속 나-가-다, 나-가-다 이렇게 찍고 있었죠. 내가 장난끼가 많아 개구쟁이 같은 데가 있어요. 계속 나-가-다,만 찍었는데 카피라이터 중 나 하나만 뽑혔다니까요.
- 나-가-다는 과장인것 같고 솔직히 어떻게 하셨어요?
대개 자기소개서 쓰면 지금은 기발한 게 많지만 그 당시는 다 ‘어느 집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다 취미는 뭐고 특기는 뭔데' 이렇게 썼어요. 그런데 저는 남하고 똑같은 걸 굉장히 싫어해요. 제가 좀 이상한 데가 있어서 괴짜인 면이 있어요. 학교 어디 나온 게 무슨 상관이고, 강의하다가도 ‘사회 학교는 중요하지 않다, 인생 학교가 중요하다’라고 말해요. 인생학교는 성격과 행동이 결정한다. 집안도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잖느냐. 진짜 책임을 져야 할 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요. 말하자면 컨텐츠에요.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썼어요. ‘옛날에 애꾸눈 임금이 살았다.’ 첫마디부터 반발로 때렸어요(?). ‘그리고 그 임금은 죽기 전에 멋있는 초상화를 남기고 싶었다. 전국에 있는 유명한 화가를 불러서 그렸는데 아부를 잘 하는 화가는 눈을 성하게 그리고 정직한 화가는 애꾸 그대로 그렸다. 임금이 보기에 눈이 성한 그림은 보기에는 좋지만 가짜라서 던져버리고, 정직한 화가가 그린 사람은 보기가 싫어 던지면서 불같이 화를 내니까 어떤 사람이 오더니 자기가 그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임금이 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보고 ‘바로 이거야’라고 했다. 성한 눈 쪽 옆얼굴을 그린 그림이었다. 인생도 이와 똑같다. 어느 순간에나 희망과 절망이, 불행과 행복이 기쁨과 슬픔이 똑같이 있다. 나도 이 사람처럼 최대한 좋은 쪽을 보고 싶다. 그래서 저를 뽑아주면 최선을 다해 일을 할 것이고 설령 저를 떨어뜨린다 해도 귀사의 번영을 빌겠다’하고 아부까지 했죠. (웃음)
-시험 볼 때 에피소드가 재미있네요.
제가 또 컨닝이 주특기인데 시험장에 옆 사람들 취미란 적는 걸 봤더니 웃기지도 않아요. 피아노, 수영, 스키. 스키 쓴 사람보고 기가 팍 죽었어요. 나도 [피아노]라고 써봐 했는데 만약 피아노 쳐봐 하면 끝이잖아요. 에이, 그냥 솔직하게 쓰자. 거짓말 하나를 하면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한 보디가드 거짓말 열 개는 필요해요.
특기: 멍하니 하늘 쳐다보기, 바람 맞으면 무작정 걷기.
취미: 인상쓰는 사람 간지럼 태우기.
희망하는 월급액수: 물질은 완전 초월! 맘대로 주세요.
이렇게 썼더니 완전히 튀어버렸대요. 그래서 합격이 됐는데 보통 합격하면 기뻐하는데 난 합격 하고 슬픔에 빠졌어요. 아마도 세계 최초, 최후의 사람이었을 거예요. 금강기획 카피라이터가 됐는데 카피라이터가 뭔지 모르니까. 아무튼 가서 그 날부터 구박과 설움의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제 팀장이 악랄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오기 전부터 저를 쫓아내려고 목표를 세워놓고 있었어요.
인관관계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키워드다. 인간과 인간 사이 정 케이블을 깔아라
- 그 때부터 어떻게 서바이벌 했는지 풀어보세요.
왜 저렇게 나를 미워할까, 지금은 이해가 돼요. 카피라이터가 중요하고 빛나는 존재인데 마흔이 다 된 여자가 오니까 기가 막혔겠죠. 지금은 내가 그나마 사회생활 많이 해서 정리정돈 된 것이 요 모양 요 꼴인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엉망이었겠어요. 막대기처럼 뻣뻣하고 통자루 같고, 이 아줌마 집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하시지, 이런 표정들이었어요.
전 직원 22명 중에 여직원들이 몇 명 있었어요. 경리나 사무직 쪽. 우리 팀에도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까 다 저를 결혼 안 한 여자와 비교하는 거예요, 그 여자가 굉장히 예뻐요. 그리고 중요한 건 그 여잔 자기가 이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예쁜 사람이 예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으면 복잡해지거든(웃음). 광고회사 업무가 잡무도 많잖아요. 광고주 만나러 남자직원들 나가면 전화 받는 몫이 남는데 그 당시는 여자가 전화 받으면 일단 반말을 해요. ‘박과장 있어? 김부장 바꿔’ 하니까 이 여자가 자존심이 상하면 속상해서 전화기를 내던지고는 나한테 뛰어와요. 사자성어가 써있어요. [주방으로!]. 내가 주방에 있는데 뛰어 들어오는 겁니다. 난 겁이 많으니까 내가 뭐 잘못했나 싶었어요.
자존심 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울면서 자존심 상해서 못 살겠다고 해요. 반말한다 이거에요.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때 멋있는 말을 했다니까. ‘여보세요. 누가 너한테 반말 좀 한다고 팔이 뚝뚝 떨어져서 피가 나냐, 누가 반말 좀 한다고 네가 개나 고양이가 되냐. 누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필요 없는 거야. 그건 그 사람 인격의 문제고. 자존심 상하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중간에서 포기하는 것, 그것이 자존심 상하는 거다.’ 그렇게 애기했어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 만나다가 회사 사람들하고 친해져버렸어요.
그 당시도 사극이 있었는데 인간은 다 착하잖아요. ‘당신 왜 나한테 반말하냐’ 하면 싸움이 되지만 오히려 낮추면 이렇게 되죠. ‘박과장 바꿔!’ 그러면 ‘지금 아니 계시옵니다.’ ‘누구시라고 전해 올릴까요~’ 라고 말해요. 그러면 어떤 분은 ‘어디 가셨는데요?’하고 맞받아요. ‘어디서 전화 왔다고 전해 올릴까요?’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인간성도 더러운 사람이 보통 돈 관계도 안 좋잖아요. 어떤 사람이 2년 동안 빚을 안 갚았다고 전화를 해요. ‘어머나 제게는 하늘같이 높으신 분이 온대, 그렇게 추악한 내용은 전할 수가 없사옵니다. 전화 한번만 더 해주시면 큰일이 날까요’. 이러면 ‘이 아가씨 진짜 웃기네.’ 어떻게 생긴 아가씨인지 보러 갈테니까 꼼짝말고 가만 있어!’ 그래요. 그럼 제가 그러죠. ‘고정하시와요 저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지이옵니다.’라고 계속 사극에서나 쓰는 말투를 쓰니 상대방이 어이가 없죠.
그 당시만 해도 남자들이 과거는 용서해도 못 생긴 건 용서 못한다는 시대였어요. 요새는 바뀌어서 못 생긴 건 용서해도 장모님 지갑 가벼우면 용서 못한다잖아요. 몇 사람들이 찾아와서 내 얼굴보고 실망은 했지만 ‘이 여자 거짓말 안 하는구나’ 하고 신뢰를 갖고 돌아갔어요.
그리고 광고를 모르니까 새벽 두시, 세시까지 일했어요. 당시만 해도 여자가 굉장히 차별받는 때라서 여자라는 것, 화초미인이 아니라는 것, 결혼까지 했다는 것, 세 가지 악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죠.
- 어떻게 극복했나요?
내가 꽃이 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생각했죠. 게다가 결혼까지 했으니 오히려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거예요. 열심히 일했어요. 50%는 노력, 50%는 인간관계였어요. 영업 뛰고 저녁에 회사에 돌아온 남자 사원 책상위에 메모를 해놔요. 메모지를 다양한 모양으로 오려서. 시간도 몇 초 안 들어요. 전화메모를 예를 들면 부인한테 전화 온 것도 하루라도 같은 표현을 안 썼어요. [오직 하나뿐인 그녀에게서], 세 줄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나리오, 따르릉], [침대를 함께 쓰는 그녀에게서], [늘 곁에 있어 편안한 여자], [오늘 아침 헤어진 그녀에게서] 등등 얼마나 많아요. 왕따시키다 메모 보는 재미에 회사다닌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러다 집에 가서 부인들한테 제 얘기를 해 준 거예요. ‘늙고 못생긴 여자가 있는데..,’ 그러니까 제 얘기하면 얼마나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그러다 부인들이 나를 본다고 회사로 왔어요. 왜냐하면 내 핑계 대고 남편 일하는 모습 보려고 그런 거예요. 부인들이 나를 보는 순간, 100% 신뢰를 해요. 자기 남편하고 나하고 15박 16일 동안 무인도에 갔다 놔도 사고가 안 생기겠다는 거죠. 너무나 나를 믿게 된 나머지, 부부싸움을 하면 나한테 전화를 해서 남편 흉을 그렇게 보는 거예요. 자녀교육, 부부갈등 등 별의별 얘기를 다했어요. 심지어 어떤 남자는 자기 부인하고 이혼을 하려는데 부인의 몸, 은밀한 얘기까지 해주는데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런 얘기를 할까 했어요. 황당한데 얼른 마음을 바꿨지. ‘하느님께서 내가 경험이 부족하니까, 술도 못 마시고 이런 사람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해서 글을 쓰라고 하나보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죠.
그렇게 저를 쫓아내려던 사람들이 직장생활 10년쯤 되서 내가 사표를 냈는데 사표 수리가 안 되는 거예요, 사장, 부사장, 전무 막 집으로 찾아오고, 호텔에서 만나자 하면 난 도망다니고. 내가 거짓말로 몸이 아파 못 가겠다 하니까 저보고 와서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까 있어만다오 해서 두 달 뒤에 할 수 없이 다시 나갔다니까요.
- 왜 그만 두시려고 했는지, 그러다 언제 그만 두신 건가요?
그 당시 다니다 보니 입에 풀칠은 하게 되고. 책을 쓰고 싶었어요. 나를 그렇게 쫓아내려던 사람의 자리인 팀장이 됐는데 그렇게 몇 년 더 다니다가 IMF가 왔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 30%가 잘렸어요. 연말에 인사하러 다니는데, 나는 고장난 수도꼭지에요. 시도 때도 없이 울어요. 사람들이 내가 푼수라서 우는 것 보고 재미있나봐. 하여튼 생각한 게 의분파, 정의파가 되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그만 두면 세 사람을 구하겠구나 싶어 98년 1월에 그만뒀는데 52세였어요.
그 당시에 다들 ‘52살 여자가 나가서 뭐하겠어?’ 했는데 지금 완전히 달라져 버린 거죠. 거의 매일 강의에요. 일요일도 강의할 때가 있어요. 연수, 기업체 직원들 대상으로 항상 있어요. 어떤 때는 하루 네 번도 했어요. 지금은 건강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요. 화요일은 방송하는 날로 정해 놓았고요.
강의 초청한 곳에서 비행기가 없는 곳은 좋은 차를 보내줘요. 내가 내리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그럼 내가 사기치는 것 같아서 말해요. “저거 내 차 아니고요 초청하는 데서 보내준 차라구.” 누가 물어 본 것도 아닌데 말이죠.(웃음)
- 주로 어떤 내용들을 강의 하시나요?
직장인들에게는 변화와 도전에 대해 얘기해요. 주부들 관심사는 세 가지 섹션이잖아요, 자녀교육, 남편과의 결혼문화, 자기 인생 문제. 승진자들 대상으로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해서 했어요. 안 해 본 걸 좋아해요. 지금도 너무 솟구쳐요. 난 정직하게 얘기해요. 세 시간을 해도 네 시간을 해도 더 하고 싶어요. 다섯 시간도 했어요.
하루는 어떤 회장이 현대그룹 외주업체 사장들이래요. 그런 건 안 해봤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니까 책 쓴 대로 해 달래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팀은 보통 외부강사를 잘 초청하지 않는데 나를 초청했어요. 2002년 7월 23일에 청와대 경호실 강의를 했는데 경호실 담당자가 외교안보수석비서실 세미나 담당자에 절 강추(강력히 추천)했대요. 난 미국 일본도 안 가봤거든요. 그 앞에서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법과 21세기 글로벌 리더가 되는 전략 강의를 했다니까요.
미치면 미치고 안 미치면 못 미친다.
-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요즘 같으면 아침형 인간이 화제라는데 무슨 소리야.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리듬이 깨지면 오히려 혼란이 온다. 요즘 같은 때 얼짱 몸짱 유행하는데 얼굴 뜯어고치는 사람 얼마나 많으냐. 이런 때일수록 나 같은 얼꽝이 있어야 된다. 이런 짱짱 시대에 배짱이 최고다. 그러면서 아침형, 저녁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셀프 디자인, 자기 인생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하루를 뒤집어지면서부터 시작해라. 건강 체력 여러분이 아무리 보석 같은 꿈이 있어도 감기만 들어도 인생이 힘들죠. 운동을 해야 한다. 인생의 대학이 중요한 데 불평대학 투덜학과 학생이 될 거냐 성실대학 노력학과 학생이 되겠느냐. 깡다구가 있어야 된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가스펠 싱어 레나 마리아라는 여성은 태어날 때 두 팔과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아였는데 장애인 올림픽 출전해서 4관왕 땄다.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며 가스펠 싱어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길 ‘저는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아요’라고 말한다. 인생의 포기대학 놀자학과 학생이 되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인생이 쉽게 살면 너무 재미가 없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가 멋있는 거고 아름다운 거다. 그리고 열렬한 사랑에 빠져라. 우리는 죽을 때까지 열렬한 사랑에 빠져야 하는데, 부적절한 관계라면 법원에 가겠지만 미쳐보면 눈도 멀고 귀도 멀고 하잖아요. 일단 하루 종일 그 사람만 보이고. 일에 미쳐보라는 거지. 미쳐보라는 건 끝까지 가보라는 것.
그리고 인생에서 컨닝할 사람을 찾아라. 사회 학교에서 컨닝 하면 불량한 사람이지만 인생 학교에서 컨닝은 다다익선이다. 나쁜 사람들 보면 저 사람들 너무 고마워,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구나. 우리 앞 집 애한테도 배운다. 남자 친구가 이사 가니까 보고 싶다고 엄마 앞에서 하루종일 울더니 일주일쯤 지나 ‘아직도 누구누구 보고 싶어’ 하니까 ‘걔 누구야?’ 하더란다. 봐라, 아이들의 저효율 고비용 시스템. 어른들은 잡동사니는 머리에 잔뜩 집어넣고 진짜 중요한 건 안 받아들인다. 완전 삭제해서 없애버려라.
운명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세 개의 ‘사’자 인사, 감사, 봉사와 사랑에 빠져 살아보는 거죠.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위해 인사를 많이 하고, 나 자신을 위해 감사하고, 다른 사람위해 봉사해야 해요. 리콜당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리필 하고픈 사람이 되는 것이죠. 친구에게, 이웃에게, 가족에게 리필되고 있는지, 리콜 당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는 적금통장보다 적심통장이 필요해요. 이해의 통장, 인내의 통장, 사랑의 통장, 웃음 통장, 감사, 기쁨, 용서의 통장 같은 적심 통장을 많이 만들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최윤희는 헌법 제1조가 깔깔 웃음 공화국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라고 말하는 포로가 되기보다 프로가 되라한다.
적심통장 많이 만들어 리콜당하기 보다 리필하는 사람이 되란다.
7가지 key point로 크게 주제를 주었다.
1.뒤집어 지는 것부터 시작해라.
->크게 웃어라,,자지러지도록,,, 우리 몸에는 엔돌핀 보다 더 많은 효과를 주는
다이도핀이 이때 나온다.
2.빨강 신호등을 파란 신호등으로 바꾸어라.
ㅡ>지하철 에서 물건 파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고 생각하는 데,
그분이 말씀하시길 ,,"플라스틱에 털이 달려있는게,,,무엇이냐,,,,???
바로 칫솔입니다. 자아~여러분 칫솔 사세요~~~
아무도 안샀다,,,,,
여러분 저는 결코 슬퍼 하지 않습니다
바로 옆칸으로 가면 돼니까요~~."
3.깡대학,스탠드 업(stand up) 학생이 되라 .
-> 얼짱,몸짱 보단,,,,배짱이 있어라~ 깡대학=인생대학.
4.나이가 변화에 도움을 주진 않는다.
-> 모든 순간은 최초 한번뿐이다. 주민번호의 나이는 던져라,,
( 주민등록증은 던지지 마시고^^:)
5.도라지는 산삼
->변화에 대한,,,이상 하게 이 부분은 기억이,,,메모도 잘 안돼 있고^^:
6.스트레스 게임(stress game)
->힘든것 이겨내고 즐겨라.
7.인생은 어차피 선택이다.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종사:비행기 입니다 (무겁지만 날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처럼,,,)
의사:감기몸살 입니다(아프고 나면 무엇을 깨우치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약사: 코팅한 알약입니다(겉은 모르지만,,속은 씁니다.)
첫댓글 전 그래도 노래는 잘 해요..감사~읽느라 시간 무쟈게 걸렸어요.
인생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