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치리라는 사람이 어느 날 장에서 신발을 사려고 발의 크기를 본을 떴습니다.
종이 위에 발을 올려놓고 발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탁(度)을 뜬 것입니다.
그런데 장에 갈 때 깜박 잊고 놓고 왔습니다. 이를 알고 다시 집에 가서 탁을 갖고 왔으나
장은 이미 파한 뒤였습니다. ‘탁을 가지려 집에 갈 필요가 어디 있소. 당신의 발로 신어 보면
될 일이 아니오’라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무려면 발이 탁 만큼 정확하겠습니까’
이상은 차치리(且置履)의 일화(逸話)입니다.
이 일화는 제가 2000년도 글을 쓰는데 인용했던 것입니다. 차치리는 바로 나로구나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고지식하기가 이를 데 없고 뒷북만 치고 있는 것이 꼭 나 같습니다.
이제 20여년의 세월이 넘게 흘렀습니다. 나의 살아 온 행적을 다시 뒤돌아봅니다.
차치리처럼 살아온 나의 삶에 후회는 아니 합니다. 누구와 다툼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송사(訟事)가 없습니다. 누구를 억울하게 한 일이 없으니 큰집은 고사하고 경찰서에
한 번도 불려 가본 적이 없습니다. 마음이 그저 평온(平穩)합니다.
노년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지금까지 남 손해 보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겁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어리석음이 어찌 차치리에 비(比)할 바이겠습니까?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아귀(餓鬼)다툼 속에 이겨야 겨우 살 수 있는 세상인데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살았으니 어찌 부정,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푼 축재하고 발 뻗지 못하고 사는 사람에
비하겠습니까? 이상하게도 세월이 갈수록 어리석은 차치리가 좋아집니다.
나는 차치리가 점점 더 좋아지고 마음에 드는 것은 어쩐 연유이며 무슨 까닭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