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골인 우리 동네 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야나무-. 어제 조우를 했다.
여러 과일나무들이 모여 서 있는 농장엔 탐스런 과일들이 여보란 듯이 싱그럽게 향을 뿜으며
반색을 했다. 그런데 정말 우연이었다.
밭둑에서 허름하게 서있던 고야나무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어쩔 줄을 몰랐다.
마치 첫사랑하는 님을 만난 것처럼 달려가 여기저기 초록 잎속에 성글게 숨어있는
빨갛게 익어가는 작은 고야를 하나하나 만저보며 입속에 넣었다.
고야나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늘 이렇게 설명했다.
-자두보다 껍질이 두껍지 않고 크지 않고 아무리 파래도 시큼하고 달다.
하기사 아내도 고야하면 침대에 누운 명화의 작가란것만을 떠올리니 답답할 수 밖에-.
고야나무는 울안이나 밭둑에 서식하는데, 점점 그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어떤 연유일까?
우리 어머니처럼 몸집이 작지만 유년기 추억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과실 중에 과실이다.
자두는 아니다. 자두 사촌이라고 할까 ,토종자두라 할까, 개량되지 않은 우리 과실이다.
유년기 때 조금만 익어도 자구가 돌았다고 시큼하면서도 달아 한 입에 쏘옥 넣던 과실-.
충남에서는 오야라고 하는데 알고보니 고야는 강원도 방언이고 ' 원래 표준어는 오얏(李)이란다.
예전 친구네 집을 갈 때면 논둑에 한줄로 늘어선 고야나무가 생각난다.
작으면서도 달달한 맛,물론 자두보다 상품성은 떨어지지만
표피가 얇고 몸뚱이가 작아서인지 병충해가 침입하지 않고,
쓱쓱 씻어 한입에 넣고, 시골에서 돈이 귀하던 시절, 떨어진 고야를 주워 가방에 넣어 읍내 중학교 때
친구에게 팔기도 했던 추억들이 듬뿍 서려있는 고야-.
혹서에 만난 것은 너무 값진 일이다.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쓰지 말라는 그 오야가 바로 고야라고 한다.
중국 이씨는 노자로부터 비롯되었단다. 도가를 창시한 철학자 노자는 본래 이이(李耳)라고 한다.
그 집에 오얏나무가 있어 나무(木)아래서 자식들이 태어나(子)
수불초생인작성(樹不初生因作姓) 이라고 했고, 거기서 이씨 성이 퍼졌다고 전한다.
추억이 가득 담겨져 있는 고야는 아름답다.
예전에 우리 집 아래 면장집 손녀딸이 오면 나는 뒤곁에 유난히 큰 고야를 주워
시골에 놀러온 손녀딸에게 갖다 주며 소꼽놀이하던 유년시절-.
마치 김유정 소설속에서 점순이가 고구마를 주인공에서 주듯-.
여름밤이었다. 형하고 가지가 휘도록 달린 논둑에 가서 몇명이 밑에서
담요를 펴서 들고 형은 나무에 올라 고야나무를 흔들며 마구 따던 추억의 밤을 잊지 못한다.
고야-. 순수한 우리 토종 재래종, 충청도에서는 응애라고도 한다.
하얀 꽃이 피는 고야나무-. 왜 그런데 요즘 점점 멸종되어 가는 것일까?
안타깝다. 변종 개량수종들이 많이 보급되어 자리를 내주는 것일까?
토종은 귀하다, 토종꿀, 토종돼지, 토종음식, 토종감자, 토종 고야-.
어제 추억을 먹고, 첫사랑을 마시고 한입에 넣어 시큼하게 먹던 고야가
내 입안에 남아 아득한 유년으로 타임머쉰을 타고 시운전해 보았다.
내년 봄에는 순 재래종이요.토종인 고야나무를
우리집 주위에 반드시 서너 그루 심으리라
첫댓글 자두 같이 생겼는데 고야라구요? 맛는 있는건가요?
그러게요~나도 자두인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럭비공님~저 과일 첨 본거 같은데 먹고 싶어 지네요^^
토종 자두라 보시면 돼요.맛은 개량 자두의 만배도 넘구여^^
가격은 일반자두의 열배쯤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