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철부지를 가리키는 그리스말 ‘네피오스’는 사회적 지위나 종교적 전문성이 부족한 이들을 일컫는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 예컨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 아버지의 뜻을 잘 알아듣는 이들은 세상에선 부족한 이들이다.
많이 아는 자가 부족한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논리가 계시의 논리다. 계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앎의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는다.
무언가 알려고 덤벼드는 일은 실은 다른 무언가를 외면하거나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 무언가에 탐닉하다 보면 그것이 중요한 만큼 중요하지 않는 것들을 보는 눈과 듣는 귀는 닫히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르치시고 행동하신 모습들을 보면 대개 세상이 무시하는 사람과 공간을 배경으로 소개된다. 세상이 보고 듣고자 하는 것들은 복음서와는 거리가 멀다.
철부지가 되는 일이 실패나 좌절로 기록되는 게 정상인 세상에서 계시를 듣고 보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결국 우리가 맞다, 옳다, 해야 한다 등의 일들과 가치들 때문이 아닐까. 옳은 것을 식별한다는 우리의 눈과 귀가 옳은 것이어야 한다는 우리의 강박의 산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의 묵상
리처드 세넷은 『장인』에서 ‘암묵적 지식’을 이야기하며, 장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가 작업에서 결합해 둔 온갖 실마리와 통찰력을 되살리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장인의 비밀은 그와 함께 죽는다.’는 가혹한 숙명이 드러납니다. 이제 그 작업장에는 스승의 기술을 어느 정도 이어받은 제자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가 다시 장인의 반열에 들려면 스승이 남겨 놓은 은밀한 표준과 암묵적 지식을 처음부터 다시 익혀서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신앙을 전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앙의 유산을 온전히 물려받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진리는 손을 뻗기만 하면 얻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만(마태 11,25 참조), 그것을 삶에 녹여 내는 일은 아주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이어받으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11,27).
우리가 여전히 신앙의 깊은 경지에 이르기 어려운 까닭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작업장’을 기웃거리고만 있을 뿐 그 안으로 과감하게 들어가려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분의 사랑을 제대로 느껴 보지도 않은 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만 해결하려 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직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공간 속으로 직접 뛰어들 때만 발견할 수 있는 신비입니다. 오늘은 그 작업장으로 함께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