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물건은 가장 친근한 아름다움이다. 일상의 행복이 가장 가까이 있듯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11일 개막한 휘트니미술관전의 특징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물건, 오브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물건들은 우리가 늘상 보았던 것들이다. 이것들이 왜 미술작품, 예술이 되는가.그 비밀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그건 작가들의 독특한 눈에 의해, 기발한 상상력에 의해 그 일상의 물건들이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품에 다뤄진 오브제들은 일상의 물건이면서도 일상의 물건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할 뿐 아니라, 일상을 넘어선 즐거움을 주는 매개체로 작용을 한다. 작가의 의한 생각의 전복은 관객에게 생각의 전이를 가져오고,낯선 세계의 경이로운 즐거움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설명을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요즘 개념미술과는 달리, 이번 휘트니전은 작가의 생각을 조금만 따라가면 작품이 주는 느낌을 즐길 수 있다.
일상의 물건을 낮설게 하는 비결은 색채감이다. 그 색채감은 그 일상의 물건들을 아름답게, 그리고 일상을 넘어선 존재로 보이게 하는 장치로 사용되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편안함 속의 즐거움이다. 실내장식과 조명이 잘 어우러진 쾌적한 카페에서 음악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휘트니전 전시 작품들은 카페의 소품처럼 그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른 한편으로 늘상 보던 꽃을 어느 순간 색다른 느낌으로 대하는 것처럼 감탄과 경이로움, 익살과 평정, 흥분과 정화, 불편함과 통찰, 진실의 까발림과 생각의 넒어짐을 느끼게 한다.
휘트니전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을 구체적으로 보자. 전화기, 전기난로, 가위,의자,서랍, 꽃,완두콩, 달걀, 우유병, 페트병,코카콜라 병, 통조림 깡통,담배 꽁초,침대, 여자속옷,가방, 비올라, 당구대,철로 등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얀색 전화기는 연두색과 보라색 바탕색에 의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고, 만 레이의 <행운>(맨 위 작품)에서 녹색천의 커다란 당구대는 하늘에 떠있는 무지개빛 뭉게구름과 맞닿아 하늘로 오르는 고속도로 같다. 방사형으로 도안된 물방울 무늬 속에 가지런하게 자리잡은 완두콩들은 시의 문장처럼,절제 속의 자유를 느끼게 한다. 흐늘흐늘한 가죽 비올라(바로 위 작품)는 음표들이 자유자재로 조합되어 음악이 흐르는 듯하다.천으로 된 톱은 절단이라는 톱의 속성을 흥부의 박을 타는 행운의 상징으로 바꿔버린다.
에드워드 호퍼 <해질녘의 철로>(바로 아래 작품)는 미국의 광활한 자연에 철로가 새로 깔린 일상을 담은 것이지만,그 우뚝 솟은 관제실과 철로의 어둡고 검은 색조와 그 너머의 검붉고 노란 노을의 대비는 마치 DMZ의 초소풍경처럼 쓸쓸하다. 호퍼는 철도로 상징되는 근대 합리성의 폐해를 예견했던 것일까? 기차의 등장은 시간을 엄밀한 정확성으로 균질화하고, 자본주의의 합리성을 구현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근대도시의 거주자들은 차갑고 무뚝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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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된 의자' 작품을 보고서, 관객들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이용백의 작품, 꽃속에 파묻힌 군인을 떠올린다. 너무나 흔해빠진 우유병과 달걀들을 다룬 작품에서는 왜 이것들이 작품속에서 빛을 발하는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만난 추상화는 쉽게 다가온다. 빌딩을 꽃의 가장자리 선처럼 유려하게 그린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 그리고 풍경의 대상을 윤곽만 드러낸 채 빨간 하늘,노란건물, 어둡게 칠해진 나무 등 감정적 색채를 사용한 오스카 블뤼머의 작품이 그렇다.
다인종 사회 미국, 전후 최강국 미국의 사회문화적 속성이 미술작품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마리솔 에스코바의 <여인과 강아지>(바로 아래 작품)의 나무조각에는 흑인 소녀가 등장하고, 개를 데리고 나온 중산층 주부들의 가면같은 얼굴표정에서 공허함을 읽을 수 있다.엔리케 차고야의 <로드맵>은 미국영토와 그 주변에 석유산업과 전쟁을 환기시키는 유전, 전투기, 잠수함 등 조악한 만화이미지가 빼곡히 배치되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은 <이것이 미국미술이다,휘트니미술관전>을 6월 11일부터 9월 25일까지 연다.국제미술을 표방한 뉴욕현대미술관과는 달리 휘트니 미술관은 오늘날 가장 미국적인 미술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이번 휘트니전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물건 오브제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거장 47명의 작품 87점이 전시된다. 주요작가로는 만 레이와 앤디 워홀,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제프 쿤스,에드워드 호퍼,조지아 오키프 등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미국현대미술의 역사를 오브제를 통해 감상할 수 있으며, 일상 속의 오브제가 동시대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박영란 학예연구관은 "휘트니전은 실제로 일상속에 사용되는 오브제들이 작품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용도와, 그것들이 일상에서 벗어나서 미술작품에 포함 되어 있을 때 주는 그런 아름다움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그런 전시이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사람들의 미의식은 매우 구체적이다. 동양사람들처럼 공(空)이니, 멀리 있는 것을 찾지 않고, 전기스토브라든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대상으로 미의식을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