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자는 성공할만한 해서 성공했다. 그는 남보다 더 노력했고 남이 잠잘 때 잠자지 않았다. 그는 남이 놀 때 더 열심히 일했고 남이 감각적 즐거움을 집착할 때 성공을 위해 쉬지 않았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자아가 강할 수 있다. 이런 자아가 없으면 인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양면의 얼굴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성공의 이면에 있는 이런 양면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에게 성자의 모습을 기대한다. 사람들의 기대가 이러함에도 성공한 자가 이것을 무시하고 자기 개성을 드러내면 즉시 성공을 범죄로 몬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양면성을 용납하지 않는 극단 때문이다. 남의 성공을 자기 감각적 욕망을 충족하는 기회로 삼은 탓이다. 이때 성공한 자는 어떤 허물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어제는 성공에 환호했다가 오늘의 실수로 성공한 자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옳거나 그른 것만 있는 극단이다. 이는 내가 성공에 도취해서 생기는 반작용이라서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이때 성공한 자의 허물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이때 흑백논리로 보아 아무런 관용이 없는 잔인함이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기쁨에 도취해 자제력을 잃고 숨겨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잘못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수치심을 느끼게 하여 좌절하도록 하는 단죄는 성공에 대한 보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잘못은 잘못으로 지적하되 성공에 돌을 던져서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성공한 자의 실수에 돌을 던진다면 이런 사람은 실패한 자에게도 실패했다고 돌을 던질 자다.
이런 자는 성공을 기뻐할 자격이 없다. 성공을 기뻐할 자격이 있는 자는 실패해도 동정할 수 있는 자이다. 만약 성공한 뒤에 돌을 맞아 피를 흘린 자가 내 가족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가 내 가족이라면 연민의 마음을 보낼 것이다. 그래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은 내가 새로 악업을 짓는 행위다. 이것은 온전하게 나의 개인적 감정이 일으킨 문제다.
무슨 일이나 옳고 그름이라는 양극단의 나뉘면 인간이 숨 쉴 공간이 없어지고 사회가 삭막해진다. 그러므로 옳은 일에는 그른 일이 생길 수 있는 여지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동지나 적으로 양분화 되어 사람이 사는 평화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요즈음 이 시대나 사람이 이런 성향을 보이고 더 극단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자.
첫댓글승리는 승리로 그대로 두자. 그리고 이들의 허물을 단죄해서 무거운 형벌의 짐을 지게하지 말자. 그러면 승리한 의미조차도 상실한다. 일단 승리는 소중한 것이었지 않은가? 승리한 자에게 가혹한 짐을 지게하면 다음에 누구도 승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쁨은 기쁨으로 남게 하고 잘못은 관용으로 받아들여서 이해해야 한다. 무슨 일이나 흑백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본질 자체를 해치는 위험한 극단이다.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것은 흑백논리이지만, 승리와 단죄를 나누는 것은 흑백논리가 아니고 자애다. 이 세상의 고통은 자애만이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일이 하나같이 극단으로 가고 있다. 특히 남의 극단을 나의 극단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이런 극단의 피해는 나도 겪지만 남도 겪으므로 그 과보가 크다. 이런 때일수록 나의 길을 가자. 감사합니다.
첫댓글 승리는 승리로 그대로 두자. 그리고 이들의 허물을 단죄해서 무거운 형벌의 짐을 지게하지 말자. 그러면 승리한 의미조차도 상실한다. 일단 승리는 소중한 것이었지 않은가? 승리한 자에게 가혹한 짐을 지게하면 다음에 누구도 승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쁨은 기쁨으로 남게 하고 잘못은 관용으로 받아들여서 이해해야 한다. 무슨 일이나 흑백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본질 자체를 해치는 위험한 극단이다.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것은 흑백논리이지만, 승리와 단죄를 나누는 것은 흑백논리가 아니고 자애다. 이 세상의 고통은 자애만이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일이 하나같이 극단으로 가고 있다. 특히 남의 극단을 나의 극단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이런 극단의 피해는 나도 겪지만 남도 겪으므로 그 과보가 크다. 이런 때일수록 나의 길을 가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