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가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 숙적 중국을 완파하고 아시안게임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2002년 부산, 2006년 카타르아시안게임을 잇따라 제패한 한국은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상 첫 8강의 쾌거를 이룩해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한국이 만리장성 중국을 넘어 세계 수준까지 도약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 같은 가능성은 한국 농구의 최장신 센터 하승진(17·삼일상고)의 성장 여부에 달려 있다.
●지금도 키가 큰다
공식 신장은 218㎝다. ‘공식 신장’이라고 한 것은 지난 봄 이후 신장 측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일상고의 윤세영 코치는 “재보지는 않았지만 220㎝를 넘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공식 신장만 놓고 봐도 지금까지 국내 최장신 선수로 꼽히던 서장훈보다 11㎝ 큰 것은 물론 최근 NBA 휴스턴 로케츠에 진출한 야오밍에 버금가는 셈이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큰 키 때문만은 아니다. 하승진은 장신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신장과 체중이 조화를 이룬다. 현재 체중은 120㎏. 대개 동양권 장신선수들이 키만 비정상적으로 큰 반면 하승진은 체구도 당당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피드와 순발력. 자신보다 20㎝ 작은 선수들에 견줘도 뒤처지지 않아 정상적인 백코트가 가능하다.
삼일상고는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이후 26연승을 달리며 올 시즌 출전한 4개 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포인트가드 정승원과 쌍포 박구영 백주익 등 우수한 선수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하승진의 가공할 파워는 삼일상고를 일약 대학수준의 팀으로 자리잡게 했다. 삼일이 올해 가장 많은 연습경기를 치른 상대는 연세대. 대학 최강 연세대와 호각을 이룰 정도라면 그의 위력을 알 만하다.
●기다려라 야오밍, 하승진이 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농구를 정식으로 시작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키만 클 뿐 기량은 미지수인 선수였다. 그러나 지난 1년간 키와 함께 기량도 크게 늘었다. 윤 코치는 “1년 후에는 프로선수들과 겨뤄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학 2년 이상 수료자에 한해 신인 선발을 하는 KBL(한국 프로농구) 규정이 아쉬울 뿐이다.
순탄하게 성장한다면 하승진은 2006년 아시안게임 때 서장훈 김주성과 함께 ‘트리플 타워’를 구축해 중국에 대한 뿌리깊은 신장 콤플렉스를 씻을 전망이다. 여기에 현주엽 이규섭 조상현 김승현 방성윤이 절정의 기량으로 가세할 수 있다. 오죽하면 대한농구협회 정봉섭 부회장이 “하승진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 보배”라고 했을까. 최종 목표는 NBA 진출이다. 힘에서 떨어지는 중국의 야오밍이 휴스턴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을 보면 성공 가능성을 기대해도 좋다.
하승진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아버지 하동기씨(44)와 윤 코치다. 하동기씨는 현역 시절 203㎝의 장신센터로 태극마크를 달았으나 부상으로 오랜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하승진이 농구선수를 꿈꾼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때 농구대잔치가 엄청 인기 있었잖아요. 아빠가 농구를 하셨기 때문에 저도 자연스럽게 농구선수를 꿈꿨어요.”
●부상과의 싸움이 관건
하동기씨는 아들을 바로 농구부에 넣지 않았다. 부상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190㎝를 넘은 터라 성장기에 심한 운동을 하면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오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부상으로 고생했던 만큼 아들은 부상의 공포 없이 운동시킬 생각이었다. 그 대신 클럽에서 볼을 만지며 감각을 익히도록 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터졌다. 명지중학교 2학년이던 99년 여름 목욕탕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진 것이다. 뼈를 고정시키기위해 볼트를 박아 넣는 등 1년여의 치료가 계속됐다. 오랜 치료 끝에 완쾌되자 자신의 모교인 삼일상고 윤 코치에게 아들을 맡겼다. 윤 코치는 하승진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삼천포 백사장에서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시켰다. 하체에 힘이 붙자 순발력도 늘고 자신감도 생겼다. 파워 보강은 하동기씨가 맡아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켰다. 강건한 체구는 아버지와 윤 코치의 치밀한 합작품인 셈이다.
또 다른 강점은 비상한 두뇌. 경기 감각이 보통이 아니다. 중학교 때까지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로 컴퓨터 실력도 좋다. 취미는 당연히 컴퓨터 게임. 성격이 활달해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다. 요즘 노래방에서 부르는 애창곡은 더 네임의 ‘더 네임(The Name)’. 좋아하는 선수를 묻자 “중학교 1학년 때 명지고 3학년이던 김동우 형(연세대)이 제 우상이었어요. NBA 선수 중에는 샤킬 오닐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누나도 여자농구 기대주
하승진이 남자농구의 차세대 대들보라면 일본에서 유학 중인 누나 은주(19)는 여자농구의 기대주다. 키가 200㎝나 되지만 몸동작은 단신선수를 방불케 한다. 선일여중 시절 무릎연골이 손상돼 선수생활을 포기했는데 일본 농구관계자의 제의로 일본에 건너가 수술받은 후 재기에 성공했다. 올해 일본 오카고교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의 프로팀들이 강력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학업에 대한 미련이 많아 당분간 귀국할 생각이 없다.
현재 하승진은 계속된 출장으로 몸에 무리가 생겨 발목과 무릎 물리치료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이 때문에 15일 개막하는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출장이 불발돼 아쉬움을 남겼다. 하승진은 “아직 부족한 게 무척 많은데 많은 분이 관심을 보여 좀 부담스럽다. 열심히 노력해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