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산행은 불암산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남편이 전에 한번 가지 않았냐고 하자
모든 대원이 최소한 17산악회가 간 적은 없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남편이 다시
“송인구와 내가 하산 후 식당에서 신발을 바꿔 신고 헤어진 데가 불암산 아니
었나”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모두 아마 수락산을 착각한 모양이라고 일축했다.
하기야 산행기를 쓴 기자도 전혀 기억을 못했으니 누구를 나무랄 입장이 아니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옛날 산행기를 뒤져보니 2003년 10월 26일 불암산을
갔고 그날 송인구동문이 참석했으니 남편과 신발을 바꿔신고 간 것도 틀림없다.
그날 참석이 저조하자 구총무(당시 직함)가 근교산 우습게 아는 사람들 혼내줘야
한다는 말도 있고 당시 회장이었던 김고문은 중학교 때 가보고 처음 가느라 전날
밤 지도 보고 연구 많이 했다는 기록까지 있는데, 전혀 기억에 없다니 역시 세월은
못 속인다. 어언 6년 전 일이다. 혹시 앞으로 한 6년 뒤 우리가 다시 불암산을
가게 된다면 그땐 뭐라고 말할까. 17에서 불암산 간 적은 한 번도 없어. 이렇게 말
할까. 그것도 괜찮다. 언제나 새로운 기분으로, 처음 가는 설렘으로, 가고 또 가자.
그땐 당고개역에서 만났는데 오늘은 상계역에서 만난다. 1번 출구 앞은 산꾼들로
장터 같이 붐빈다. 그 한가운데서 김태구 대표구찌 조난팀 리더(직함이 너무 길어
이하 ‘조난구찌’로 줄임 : 편집자 주)께서 티셔츠와 조끼와 윈드브레이커에 바지
까지 일습을 새로 장만해 마침 패션쇼를 연출하고 계신 중이다. 스틸(반짝이는
회색)과 브릭(붉은 벽돌색)의 코디가 보통 감각이 아니다. 패션디자이너인 어부인
의 솜씨가 틀림없다. 장변호사님이 노점에서 사온 찐 옥수수를 뜯으며 패션쇼
감상하고 있는데 김윤기동문이 지각이다. 회비도 모자라는데 잘됐다, 윤기한테
점심 씌워야겠다며 즐거워하던 현총무가 10분 후 젬마보이가 나타나자 “야,
점심 온다”고 소리친다.
아파트 숲을 벗어나자 바로 등산로 입구다. 기념촬영하고 출발. 구바오로는 출발
하자마자 벌써 자취도 안 보인다. 우리는 1시간 걸리겠지만 자네는 40분이면 될
거라는 현총무 말에 30분에 주파하려고 그런다며 모두 혀를 찬다. 이 산은 도대체
흙은 없고 온통 바위투성이다. 주로 네발로 걷던 중 잠시 휴식시간에 김경자여사가
참깨를 입힌 두텁떡을 한 개씩 돌린다. 조난구찌님이 갖고 온 커피를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건너편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이 아름답다. 다시 밧줄타고 기어
정상 바로 아래 도착하니 먼저 갔다 내려온 남편이 너무 험하다고 올라가지 말라
한다. 험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너무 많아 올라갈 마음이 안 생긴다. 남편이 정상
에서 바위를 기어 내려오다 어디선가 휴대폰을 떨어뜨린 모양이다. 전화를 해봐도
받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바위틈에 빠진 것 같다. 휴대폰을 불암산에 묻고 내려
간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에 혹시나 하고 전화를 다시 해보니 구리시청에 근무
하는 어떤 여성이 주워갖고 있다고 연락이 됐다.)
구바오로는 수락산까지 뻗칠 거라며 혼자 가버렸다. 시시한 근교산에 웬일로 왔나
했더니 역시 이유가 있었군. 12시, 배도 출출한데 요기나 하고 가자고 널찍한 바위
에 자리 잡는다. 바로 아래는 아파트 숲이지만 눈을 멀리 들면 서울 근교의 산들이
빙 둘러서 경관이 훌륭하다. 아보카도와 잔멸치를 넣은 김태구표 김밥이 단연 오늘
의 메뉴로 뽑힌다. 아보카도가 뭐냐고 묻는 대원들이 한둘이 아니니 큰일 났다.
17회원은 미식에도 일가견이 있어야 하는데 교육이 시급하다. 현총무의 호두과자
를 후식으로 먹고 하산 시작. 당고개 쪽으로 내려간다. 경수사를 거쳐 목욕탕으로
직행하니 2시, 3시간 30분의 만만찮은 산행이다. 해수 목욕탕이란다. 상계동에 웬
해수? 목욕시간을 1시간이나 받은 김회장이 제일 행복하다. 점심은 이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당고개냉면’ 집으로. 그런데 냉면집에 도착하니 간판에 ‘玄家 당고개
냉면’이라고 적혀있다. 오늘은 玄총무 날인가? 해수탕에서 목욕하고 현가 냉면집
에서 점심 먹고. 이래도 회비 받을래?
회비 내라! “구바오로는 지난번 산행 때 목욕도 안 하고 밥도 안 먹는데 회비만
3만 원 낸 게 억울해 오늘은 회비 안 내고 도망간 게 틀림없다”고 누군가 씹는다.
“그러니까 회비를 미리 온라인으로 받으라니까(조난구찌)”. 홀아비는 2만 원,
부부는 3만 원, 그런데 두 사람은 미리 냈다고 하니 현총무가 아무리 세어도
도저히 계산이 안 된다. 17만 원이 있어야 하는데 14만 원밖에 없다고 테이블에
돈을 늘어놓고 울상이다. 남편이 웃으면서 “내가 3만 원 보태줄 게” 선심
쓰는 척 회비를 건넨다. 산행기 출판비 내고 책 팔아 3백만 원쯤 들어오면 기금
잔고가 대충 2백만 원은 될 것 같다고 낱낱이 재정보고를 하는 현총무를 두고
김회장이 혀를 찬다. 비자금도 있어야 하는데 저렇게 다 까발리면 어쩌자는
것이냐, 구바오로가 총무할 때는 4년 동안 한 번도 결산보고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러나 나중에 업무를 인수한 현총무로부터 기금 잔고를 보고받은 회원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렇게 돈이 많이 있었어?
오겹살 제육과 왕만두 안주로 우선 건배부터 한다. 현가 식당의 40년 전통이
무색치 않게 음식 맛이 일품이다. 특히 젓갈 냄새 물씬한 김치 맛에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한다.
3월 3일에 있을 산행기 출판기념회를 놓고 한동안 시끌벅적. 3부 요인의 축사는
할수없이 허락해야겠지만 기타 서울시장이니 국회의원이니 하는 사람들 축사는
일체 거절해야 한다, 책은 국회도서관을 비롯, 전국의 모든 도서관에 한 부씩
보내야 하고 최소한 구글 본사에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조난구찌), 방명록에
미리 누구누구 100만 원 이렇게 써놓자, 그날 접수테이블에는 제가 앉지요(장변호사),
책 추가주문한 사람들 지고 가게 배낭 메고 와라, 양복입고 오라면서 배낭을 어떻게
메고 오냐, 아이고, 누가 17 아니랄까봐 흰소리가 끝도 없다.
술도 어지간히 마셨으니 냉면 먹자. 배불러 한 그릇 다 못 먹는다, 나는 한 그릇
다 먹는다, 결국 아홉 그릇을 13명이 나눠 먹기로 한다. 그 머리로 아홉 그릇을
13명으로 어떻게 나누냐. 하여간에 아홉 그릇을 열세명이 사이좋게 나눠 먹고
모두 흡족해서 식당을 나선다. 다음 산행은 북악산-인왕산. 이제 봄도 되고 했으니
3월부터는 맛기행을 겸한 남도 산행을 해보자는 의견이 많다. 매화와 동백꽃도
필 텐데 조계산이나 백운산은 어떨까, 아름다운 절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은?
이왕이면 하룻밤 자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올까? 생각만 해도 즐겁네.
이래저래 17은 늘 행복하다.
참가자(14명): 구명회, 김숭자(장원찬), 김영길, 김윤기, 김종남, 김태구,
박정수(노순옥), 임종수(김경자), 임한석, 현해수. (노순옥 기록)
첫댓글 박교수님, 핸드폰 찾았다니 잘 됬네요.그런데 미모의 여성이 보관하고 있다고?... 노기자님 신경 쓰셔야 될 것 같은데요? 아! 그리고 점심 값은 현가네서 맛 있게 먹고 현가자랑을 너무 해서 현가가 내게 했읍니다. 오늘 현총무 국민은행 구좌로 년회비 겸 금일봉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미모의 여성이 뭐 할일 없다고 나이 70 다된 할아버지한테 관심보이겠어요. 관심보여준다면 오히려 고맙지요. --노순옥
박교수 핸드폰 안사도되니 다행이다 .그돈으로 밥사라!
나이들면 기억력 쇄태하는 것, 당연한 일. 본인이 처음 17 산악회에 입문하여 두 번째 간 곳이 불암산이였는데, 그 당시 산행기를 본인이 써서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당시 산행기가 아직도 어디엔가 남아있었으면 좋으련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