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2.10.2일) 말씀/ 빌 립보3:13~14
더 높은 차원의 인생 목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 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이 가을에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무슨 일을 할 때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신년이 돌아올 때마다 연레행사처럼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고 기도 제목을 잡습니다. 그러나 목표라는 것은 새해에만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 좀 더 성실히 아름답고 행복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목표가 뚜렷하면 동기가 강해지고, 동기가 강하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성공철학의 거장인 나폴레온 힐이란 사람은 '성공의 법칙'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신의 분야에서 어떻게 더 유능한 존재가 될 것인가를 발견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14년간 16,000명의 데이터를 통해서 실패자로 분류된 95%의 사람들이 '인생의 명확한 중점 목표'가 없었던 반면에, 성공한 사람으로 분류된 5%는 목표가 명확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확실한 계획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확고한 목표와 목표에 대한 집요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표가 없으면 성공은 불가능하고, 성공이 무엇인지 정해놓지 않으면 결코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 살아가면서 가야 할 곳을 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을 인생 로드맵이라고 합니다. 내 인생의 가야할 길을 정하고, 100세까지 살 것이라 가정하고 인생지도를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 나이가 50인데, 60인데 하면서 목표 설정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되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목표는 없는 사람은 열심히 살아도 후회를 하고, 꼭 목표가 성취되지 못해도 목표가 있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삶이 즐겁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헛 시간을 보내지 않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게 되고 그러므로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피넬로프 피츠제럴드는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 때문에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느라 쉰 살이 되도록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양의 짐을 벗은 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년 동안 열 두 편의 소설을 집필했으며, 여든 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영국 최고의 소설가로 인정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70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 소설가 박완서 선생 역시 마흔 살인 1970년에 월간지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해 한국 문단의 거목이 되었습니다. 2003년 1월,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이운봉 옹(80세)은 대학졸업 50여 년 만에 어느 대학의 관광 일어통역과에 지원해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우리나라를 바르게 알리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목표는 젊은 사람만이 갖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에 죽을 때까지 누구나 갖는 것입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만이 멋진 삶을 살 수 있고 멋진 죽음의 마무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50중 반에 색소폰을 시작하였습니다. 은퇴 후 색소폰을 불며 전도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시작하였습니다. 3~4년차 서투른 수준에서 해외 선교사 수양회를 다니면서 강의를 하며 색소폰 연주를 하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개척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났습니다. 5년 차에 시작한 박중용 목사님, 천영란 권사님이 벌써 7년 차가 되어 이번 CMI 사역자 수양회에 나그네 설음을 불러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제 목표는 색소폰 프로가 아닙니다. 기회가 되면 서비스로 연주로 섬기기도 하고 스스로 즐겁게 살기도 하지만 더 큰 목표는 생명의 말씀을 우주적으로 섬기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 목표가 정해진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365일 말씀을 묵상하여 섬길 수 있었고 우리 교회 성도들은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네팔의 우즈알 한 사람을 영어 성경으로 섬기는 목표가 정해지자 저는 정철의 God’s plan of salvation을 목대 주자창에 아침마다 하루 30분씩 1년간 암송을 했습니다. 독서고 마찬가지입니다. 목표 없이 손에 잡히는대로 읽으면 책을 지속적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저는 목표를 잡고, 15권 로마인의 이야기 2년 걸처 읽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조정래 장편 소설, 박경리 한국의 최고 장편 대하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독서를 한 것이 15년은 넘었습니다. 결과 은혜의 독서모임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표만 분명하면 결코 늦지 않습니다. 천천히라도 반드시 목표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목표의식이 없으면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달려야할 목표가 없으면 달려야할 의지가 생기기않습니다. 무엇인가 열정을 발산할 일이 없기때문에 몸도 굼 뜨고, 생각도 굼뜨고 게으르고, 자연이 쉽게 늙게 됩니다. 삶도 인생도 멋이 없이 주변을 맴도는 삶을 살게 됩니다. 목표는 거창한 것만이 아닙니다. 목표있는 삶이 필욯나 것입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더라도 또 다음 목표가 필요하고, 한해의 목표를 이루면 다음 해 목표가 필요하고, 첨가해서 평생의 목표가 필요하고, 죽음 앞에 선다 해도 끝이 아니라 죽음 건너편의 목표를 갖고 있게 됩니다. 고도원의 편지 저자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꿈 너머 꿈’입니다. 사람들이 꿈(목표)가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살아가지만 꿈을 이룬 후에 다음 꿈(목표)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꿈만 꾸며 살아서는 안 되고 꿈 너머 꿈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소년이 샌프란시스코의 바닷가 언덕 아래에서 인부들이 기계를 가지고 작업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호기심에 거대한 쇠기둥을 용접하는 세 사람에게 다가갔습니다. 소년이 첫 번째 용접공에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용접공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보면 모르냐! 먹고살기 위해 이 짓을 하고 있다.” 소년은 다시 두 번째 용접공에게 다가가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다소 목소리가 부드러웠지만 여전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쇳조각을 용접하는 중이란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소년은 세 번째 용접공에게 다가갔습니다. 소년의 질문을 받은 그 용접공은 잠시 일손을 놓고 소년을 쳐다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다리를 만들고 있단다.” 세 사람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용접공이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같은 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일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들 세 사람 중 누가 제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겠습니까? 세 번째 사람이겠지요. 대통령보다 멋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목표가 낮으면 삶의 질도 낮게 되어 있습니다. 목표가 크고 고상해야 똑같은 일을 해도 삶의 질도 높아지고 고상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사람은 누구나 돈, 권력, 정치, 취미, 예술활동, 운동, 봉사,사역 등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에 공부할 책 <우리가 아직도 가야할 길>의 저자 ...스캇펙 박사는 말하기를 진정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낮은 목적과 조그만 일에 목표를 두고 열광적으로 집착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삶을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보다 높은 차원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표도 점점 차원을 높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적으로 많고 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원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당나라 시대 시인...백거이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놀라게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합니다. 그는 그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자, 생각끝에 장안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당시 흔치 않았던 진귀한 거문고를 익힌 후에 널리 초청장을 보내어 거문고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주회에 참석하여 무사히 연주가 끝날 무렵 그는 감사의 말을 전하며 자신의 본 뜻을 전했습니다.. "대장부가 세상은 살며 어찌 거문고 타는 재주로 이름을 날리겠습니까? 여러분을 초정한 것은 문단에 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리 준비해놓았던 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기백에 놀랬고 다음에는 그의 문학적 재능에 놀라 그의 비상한 재능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명성은 삽시간 장안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대장부가 세상을 살며 어찌! 거문고 타는 재주로 이름을 세상에 알리겠는!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거문고도 목표인데 더 높은 목표를 가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장부라면 지금 정도를 삶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위로부더 부르심을 받은 영적 사람이라면 인생의 목표를 백거이보다 더 높이 두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을 짓고, 사업을 크게 하고, 여행을하고, 악기를 잘 다루고 세상에 이름 석자 남기는 형이하학적인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둘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립보3:13~14) 그리고 그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믿음의 경주자의 자세를 가지고 달리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쓰는 자가 되었습니다(딤후 4:7-8). 우리의 목표가 ...땅에 있는 형이하학적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꿈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 오늘도 달려가며, 비록 땅에 살아도 하늘을 보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하늘을 생각하고 꿈꾸고 궤도 수정을 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믿는 자라도 건강관리를 위한 기도, 사업 성취를 위한 목표, 고시패스, 최고의 경영자가 되고, 정치 일선에 뛰는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목표 설정을 아주 잘해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박사가 되고, 결혼을 잘하고, 돈을 많이 벌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입니까? 집 사고, 땅 사고, 법관 되고, 의사 되고, 훌륭한 정치인이 되어 세상에 큰 기어를 했다칩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죽음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의 목표는 이런 세상을 뛰어넘어 더 고상하고 아름답고 더 커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어떤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하는지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목표를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내면적 목표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400년의 애굽 노예생활 광야에서의 40년 생활에 이들은 얼마나 안정된 집과 땅이 필요하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신명기 . 그것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 렇게 하면 맹세하신 땅을 주고 건축하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고,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고 스스로 파지 아니한 우물을 두주시고,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배불리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신 6:10-12). 집, 좋은 물건, 기름진 땅, 차... 이런 것들은 인생의 진정한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아들까지 내어주셨고, 구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두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또한 모든 계명의 제일 된 계명입니다. 사랑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사랑하면 자연히 모든 계명이 성취되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복들도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
둘째,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기 때문에 이 땅에 필요한 것들을 목표로 하여 일하고 구하기 쉽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러한 것들도 정말 삶 속에 필요합니다. 그러나 땅에 것들은 필요한 것이지만 잠시 후 다 썩고 쇠하고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있으나 없으나 나중에는 다 0로 돌아갑니다. 삶의 결산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평생 이런 것에 매여 살아갑니다.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영원한 목표로 삼을 가치 있는 것들이 되지 못함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현실의 것들을 인해서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하셨고,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셨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마태6:33) .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구속의 사랑,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진정한 삶의 우선 목표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없어질 이 땅을 위한 선한 목표보다도 더 크고 아름다운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위한 목표를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은 먼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세 번째, 한 영혼의 열매를 목표로 삼으라고 합니다. 세상에 해야 할 일들이 많고 또한 중요한 일들도 많지만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고, 다니엘서는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큰 일을 하고 많은 일을 해도 한 영혼을 돌아오게 하는 일보다 큰 일은 없습니다. 공부를 하던 일을 하던 어떤 사업을 하던 한 영혼을 얻는 것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목표라는 사실을 마음에 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야말로 장차 주님과 영혼의 결산을 할 때 하늘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목표도 한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실 d한 연혼 속에 세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 속에 큰 민족이 들어있고, 야곱 한 사람 속에 열국이 들어있고, 다윗 한 사람 속에 열왕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번 3년만에 CMI수양회가 열려서 83명이 참석했는데 선교사님들도 오시고 가장 많이 참석한 수양회였습니다. 그러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분 한 분들이 소중히 여김을 받은 수양회가 되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역사였습니다. 효주 선교사님도 음향을 섬기고 간증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감동케하셨고, 천영란 권사님도 평신도로 참석하여 떡과 색소폰을 섬겨서 많은 분들에게 힘을 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저도 색소폰을 섬겼지만 거기서 가까이 함평에 사시는 최광휴 필리핀 선교사님 한 분을 만난 것이 큰 역사였습니다. 정현종의 방문객이란 시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도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역사의 목표는 한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상에서 세상 살아가면서 먼저 목표를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도 세상에 오실 때 그냥 오시지 않고 목표를 갖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이보다 더 높고 아름다운 목표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목표가 있었기에 예수님의 삶은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 없으셨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섬기심으로 사람을 살리셨고, 전도하심으로 잃은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을 그렇게 섬기며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실 수 있으셨습니다. 목표가 있으면 계획을 세우게 되고, 움직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처럼 더 높고 아름다운 목표를 마음에 새겨 열심히 이 땅을 달리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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