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대주교님은 부활절(11일)을 앞두고 “죽음과 죄로 멸망할 인간에게 구원과 생명의 빛을 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정신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자” 또 “ 단핵소추안 가결로 국론분열이 심각한 이때에 화해와 일치를 통해 공존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란 메시지를 발표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부활절을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수난의 의미에 대해서 좀더 깊이 성찰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애 최후에 이룩하신 부활에 앞서 당하신 이 고난과 수난이 깊고 깊을수록 부활의 뜻은 세상 속에서 더욱 강한 빛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맞이하고 축하합니다. 부활 대축일 뿐 만 아니라 연중 매주일이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경축일이요 미사입니다. 그 까닭은 예수님의 부활이 교회 신앙을 확증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이요 가장 중요한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생명을 주는 신비이자 우리의 믿음을 확증시켜주는 표지입니다 또 부활은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사건이요 주위의 사도들이 보고 듣고 만져본 대로 부활을 증언한 기록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부활 신비를 통해서 우리를 생명의 세계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수난 당하심과 죽으심 그리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부활은 빠스카의 신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또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죽음서 구해 내셨고 또 다시 살아 나셔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돌려 주셨습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 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아들을 부활시킴으로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서 축복을 쌓으셨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이 순간 !
지극히 어설프게 또 지극히 어줍잖게도 이 도미니코가 예수님의 고난과 수난에 대해서 말하는 것 보다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G,달 싸쏘-R,꼬지 편찬/이재룡. 이동익, 조규만 옮김,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발행)중에서 그리스도의 수난부분을 읽어 보는 것이 정답이요 모범 답안이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 중 일부를 옮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모든 고통에 대해서 써놓은 신앙적으로 영성적으로 장중한 명문의 글이기에 부활절의 성삼일을 보내면서 좋은 묵상의 자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고통의 모든 종류를 겪으셨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고통을 다 겪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측면에서 그분의 수난에 유대인과 이방인들, 남자와 여자, 귀족과 서민, 낯선 이와 친지들 모두가 참여하였고, 그들로부터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또 그분의 인격적 측면에서, 그 모욕(侮辱)과 멸시(篾視)로, 그의 물질적 쾌(快)와 안정은 옷 벗김을 통해서, 그 영혼은 슬픔과 두려움과 싫증으로써, 그의 육체상처와 채찍질로써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또 그분의 신체적 지체를 따져 보자면, 머리는 가시관으로, 얼굴은 빰 맞음으로, 손과 발은 못질로, 온몸은 채찍질로 고통을 당하셨으며 감각적인 오관을 말하자면 촉각(觸覺)은 가시와 못과 채찍질로, 미각(味覺)은 담즙과 식초로, 후각(嗅覺)은 사형장이었던 갈바리아 산상의 시체들의 냄새로, 청각(聽覺)은 관중들의 고함소리로, 시각(視覺)은 십자가 아래 서 게신 모친 마리아와 요한의 고통스러워함을 봄으로써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고통은 다음 네 가지로 모든 다른 고통을 초원합니다.
첫째로 고통의 원인 상 모든 고통을 초월한다. 그분에게 있어서 체감적인 고통은 대단히 예리한 상처로 자극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그분의 죽음은 지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감각의 중심부인 손과 발에는 못이 꿰뚫고 지나갔고 몸무게로 인하여 그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단숨에 처형되는 이들과 달리 그분의 고문적 형벌은 길었습니다. 온 세상의 죄로부터 선택된 백성들의 죄에 빠짐과,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로부터 내면적인 공포를 느꼈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감수성 때문에 모든 고통을 초월합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습니다.
셋째로 고통 그 자체 때문에 모든 고통을 초월합니다. 그리스도가 겪은 모든 고통은 어떤 위로나 완화(緩和)됨도 없었습니다.
넷째로 고통의 목적 때문에 모든 고통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원하여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 위대한 목적을 따라 비례적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