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면
공한성
오늘은 똥깨나 끼고
머리에 먹물 좀 들였다고
고상하고 지적인 척하고 싶어진다
헛헛한 눈빛으로 휘젓는 폼이
꼭 실 떨어진 연 꼴이면서도
깜냥에 가면 하나는 잘도 챙긴다
어디보자
어떤 가면을 쓰고 나갈거나
놀러왔다 놓고간 효자동 친구녀석의
족제비 가면은 좀 그렇고
노트르담성당 종탑 위에 살고 있는
까마귀 깃털로 만든 가면은 유행이 지난 것 같고
장독대 뒤
오동나무 가지에 앉아 울고있는 봉황의 벼슬로
만든 가면이 땡긴다
저녁답엔
턱을 30도쯤 세우고
박물관이나 한바퀴 돌아볼까나
꼴갑이 3대
공한성
본시 저 놈 할애비 짱코 하면 동리 사람들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어 눈꼬리에 검은점이 있어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는 갠또 형사 앞세우고 도로모찌에 매가네 끼고 설쳐대는 꼴이 가관이 아니었지 동리 앞산에 있는 질 좋은 소나무는 짱코 손에 다 없어지고 찔레미 데리고 다니면서 남의 오래된 묘를 골라 파헤쳐 유물을 훔쳐 일본 고급 관리에 상납하고 식솔 지키고 재산 끌어 모으느라 혈안이었지
해방 후 6.25사변 때는 검은 완장을 팔뚝에 두르고 와서는 사람 잡는 백정으로 돌변해 짱코 눈에 거슬리기만 할라치면 그 집안은 바로 풍비박산이 나는거였어 힘없는 동리사람들 데려다가 지그 논밭에서 일하게 하고 불평이라도 하면 끌고 가서 오뉴월 개 패듯이 패서 반병신 만든 거이 한둘이 아니었어
사변이 끝나고 동리 사람들이 싸리제골로 도망간 짱코를 잡아다가 손을 뒤로 묶고 덕석몰이해서 몽둥이찜질을 얼마나 해댔던지 덕석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더라네 다 죽은걸 수통목에 갔다 버렸는데 이눔 목숨 질기게도 살아와서는 매 맞은 후유증으로 앉은뱅이가 돼갔고 문밖출입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지
어쩌다 짱코네 집 앞을 지나면 개새끼가 짱코 닮아가지고 지나가는 사람 얼마나 겁을 주었는지 모가지에 목줄 가죽은 다 낡아가지고 금방이라도 끊어져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 같고 개 줄에는 똥이 묻어 이빨 앙당 물고 으르렁거리고 덤벼대면 줄에 묻어있는 똥이 여기저기 튀어 무섭고 더러워 무조건 뛰었지 한참을 뛰다보면 손에 쥐고 간 돌맹이가 땀에 젖어 짱코네 밭주렁 호박에다 분풀이 했었지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간간히 한약 냄새가 진동 하더니만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영영 가버렸다네
짱코 아들 땜쟁이는 읍내 오거리 한 쪽에 앉아 냄비 때우고 고무신 때우는 일을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았는디 어떤 날은 술에 취해 객기 부리다가 읍내 건달들에게 뒤지게 얻어맞고 신작로 잔자갈 위에 앉아 신세타령하며 울다가 지나가는 김부자집 삼판용 도라꾸에 치어 머리를 다친 뒤로 실성실성 하다가 초겨울 어느날 탱자나무 논 가운데 있는 도깨비 방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이른 새벽 역전에 일 나가는 방구버섯 형님 눈에 띄어 살아난 뒤로 방에 오줌 똥 싸고 살기를 여러 달 어쩌다 요강에 똥오줌 넘쳐 손에 묻으면 돼지 밥 구정물에 손 씻고 유난히 큰 앞니 두개 내놓고 멋쩍게 웃던 짱코 아들 땜쟁이.
이슬비 오락가락 맹꽁이 울음소리 간간히 들리는 밤에 머리칼은 군데군데 빠지고 헝클어진 머리에 사네키 동여메고 허기진 배 움켜쥐고 테라마이신 한 알 써보지 못하고 가난하게 죽은 땜쟁이. 송장처럼 가난한 게 없다고 하더니만 가마니로 똘똘 말아 지게 위에 올려놓고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작대기에 힘을 주어 일어나는 방구버섯 형님
도깨비 방죽 지나 공동묘지로 가는 좁은 논둑길 위를 따라가는 땜쟁이의 어린 아들 꼴깝이 물그림자가 지금도 눈에 선허구먼 그 후로 꼴깝이는 강 건너 감나무 골 김주사 집으로 더부살이 가서 몇 년 살았는데 서울에서 먼 친척이 와서 데리고 갔다 하더니만
그 꼴깝이 훌쩍 커 기골이 장대하니 입성이 번듯한 모양새가 앗다, 그 놈 누굴 후리쳐 도리깨질 헌 게 분명 허구먼 근데 여그는 워쩐 일이데여 요번 선거에 출마 한데나 워쩐대나 꼴깝 떨러 온겨
큰 놈
공한성
옆동네 칠순잔치
달갑잖은 초대에 부조돈 300원에 쌀 한 됫박 보자기에 싸들고
동네 사람들 틈에 끼어 푸짐한 음식 한상 가득 받고 보니
새끼들이 눈에 밟혀 한 손 모르게 치마폭에 몇 점 집어넣고
눈으로만 채운 배 설거지 뒷정리로 대신하고
술취해 싸리울타리 벼개 삼아
자고 있는 순돌할애비 흔들어 깨우는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 힐금힐금 쳐다보고
부엌문에 빗자루 세워놓고 치마에 묻은 구정물 털고 돌아서려는데
줄포댁 이거 애들 갔다줘 신문지에 싼 음식 건네주는디
받은 손 부끄러워 눈인사 하는 둥 마는 둥 한참을 뛰었다
발걸음 재촉하는 달그림자 친구삼아
걷다보니 풀섶에서 도둑고양이 나를 보고 서로 놀래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래도 큰아들 어미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쌀뒤주 위에 호롱불 올려놓고
졸음 가득한 눈으로 책장 넘기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가져온 부침개 입에 넣어주니 엄니 먹으라고 고개 젖던 아들
앞마당 흐드러지게 핀 조팝꽃 눈처럼 환하고
어깨 주물러주면서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 하더니
어느날 부터인가
드문드문 밖에서 자고 새벽에 들어오더니만
끼니도 거른 채 바람난 수캐 마냥 어찌나 싸돌아다니는지
얼굴은 핼쑥하고 배는 허리에 붙어 한마디 할라치면
훌쩍 나가는 큰 놈
뒷산 외솔나무 가지위에 앉아 우는 소쩍새 소리
선밤 달래며 몰초 한대 말아 피우며 기다리는디 인기척소리에 방문 열어보니
얼라 하나 달고 들어왔네.
첫댓글 오랜만에 글로 만나니 반가워요, 신고산님! 여전하시죠?
늘 먹향 내음 가득풍기는 단아한모습 따뜻한 마음의 제비꽃 님 넘반가워요
옛날옛적 이야기가 신고산님 모습처럼 구수하고 맛깔지네요^^ 저런 이야기 속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모습이 아닐까 싶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정서를 환기시켜주는 서사에다 님의 걸쭉한 입심도 크게 한몫합니다. 좋은 글 잘봤습니다.
멀리있어 한달 두달 여러달 못뵈어도 무심히 뒤 돌아보면 바로그곳에 잔잔한 미소 머금고 깊고 맑은 눈빛으로 얘기하는 미소님 방가워요. 저 저번달 결혼한 새신랑 모두 모두 행복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