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제작사 방침에 따라 국내 기자시사회도 안하고 개봉한 [다빈치 코드]를 개봉날 밤 12시에 극장에 가서 봤다. 빈 자리가 없었다. 한국 개봉 이후 불과 5일 만에 1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영화의 2시간 30분 동안 런닝타임은 너무 길다. 소설을 재미있게 본 사람은 실망할 것이다. 1억 3처난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는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가 감독했지만 [다빈치 코드]의 영화적 상상력은 쥐새끼 눈꼽 만큼도 없다. 오히려 소설을 읽으면서 문자적 상상력으로 머리 속에서 형성된 이미지들을 영화는 갉아먹고 있다. 이렇다면 굳이 소설을 읽고 또 영화까지 봐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뉴욕타임즈에 86주 연속 베스트셀러로 올랐고 세계적으로 4300만부가 팔렸고 국내에서만 260만부가 팔린 댄 브라운의 원작 소설 [다빈치 코드]는 걸작 소설이 아니다. 쓰여질 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구성된 대중 상업소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증거로 들면서 매우 설득력 있는 다른 자료들과 논리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그 후손이 비밀리에 존재하고 있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밀단체가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계에서는 예수의 부활 자체를 부정하는 신성모독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사실은 그러나 그동안 속세에서 은밀하게 등장했던 이야기들이다.
댄 브라운은 민간에 은밀히 흘러다니는 야사들을 잘 얽어내서 재미있게 구성한 것뿐이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시온수도회나 오푸스 데이, 템플기사단 등은 그 자신의 독창적 상상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그 속에 등장하는 핵심 사건들은 사실에 기초해 있지 않다. 허구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종교적 사건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댄 브라운은 예수의 생애라는 인류사의 가장 극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센세이셔널리즘을 극대화하며 독자들과 언론의 관심 끌기에 성공했다. 문제는 [다빈치 코드]의 허구적 상상력이 상당 부분 사실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다. 허구를 사실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다빈치 코드] 1권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 수석 큐레이터 자끄 소니에르는 죽어가면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기호를 남긴다. 살인자는 누구일까? 그 기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빈치 코드]는 루브르 박물관 살인사건의 실체를 파헤쳐가면서 그 뒤에 숨어 있는 예수의 일생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들을 종교적 상식과는 다른 각도로 접근해가면서 은폐된 비밀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 분)의 캐릭터는 원작보다 조금 복잡하게 만들었다. 러셀 크로우나 조지 클루니가 물망에도 올랐지만 [필라델피아][포레스트 검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톰 행크스가 로버트 랭던 교수에 캐스팅되었다. 그는 긴 파마머리로 등장해서 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에서 로버트 랭던은 기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건을 풀어나가지만 캐릭터의 성격은 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어린시절의 끔찍한 기억과 폐쇄공포증을 추가해서 루브르박물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취리히국제예치은행에서 탈출할 때 호송차량에 갇히는 장면에서 개성적인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지만 별로 소득은 없다.
로버트 랭던 교수와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프랑스 경찰청 소속 암호해독가 소피(오드리 토투 분)는 원작에서는 살해된 루브르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 자끄 소니에르의 손녀딸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슬며시 소니에르가 소피의 비밀 보호자로 바뀌어져 있다. 원작에 비해 가장 잘못된 각색이다. 원작에서는 소피와 죽은 할아버지의 애증 관계가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살인사건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을 높이는데 기여를 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이 사라져버렸다.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 안에서 펼쳐지는 초반 도입부는 매우 긴장감 잇고 속도감 있다.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 톰 행크스와 그의 옆에서 사건을 전개 시키는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를 너무 클로즈업으로 빈번하게 잡는다. 스타의 티켓 파워에 의지하고 있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톱스타들의 얼굴 클로즈업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다빈치 코드]에서는 이야기의 서사적 전개가 강렬하게 독자를 흡입하므로 굳이 클로즈업으로 상상력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론 하워드 감독은 모험을 하지 않았다. 이미 검증된 세계적 베스트 셀러를 영화화하는 감독이 새로운 영화적 시도로 흥행 안전장치의 보호막을 거두어 버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분을 수상했던 론 하워드 감독은 이야기를 너무 미시적으로 끌고 간다. 소설의 줄거리를 영상으로 번역하는 데 바빠서 독창적 미장센이나 굴곡 있는 화면의 깊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그러나 영화 [다빈치 코드]의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사상 최초로 공개된 루브르 박물관의 내부를 보는 것도 흥미롭고, [모나리자][암굴의 성모] 같은 다빈치의 걸작 그림들도 실제로 등장한다. 또 템플 교회나 로슬린 예배당 등 역사에 등장하는 주요 건물들에서 실제로 촬영되었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루브르 박물관이 모두 진짜는 아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박물관 촬영을 어렵게 허가하기는 했지만 수많은 제약이 뒤따랐다. [모나리자]에 조명이 닿는 것은 그림 상태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제약으로 제작진들은 로브르 박물관 내부를 촬영하기는 했지만 충분한 액션씬을 찍지는 못했다. 그래서 실제와 똑같은 셋트를 다시 만들어서 그 안에서 액션씬을 다시 촬영하여 진짜 루브르 박물관에서 촬영된 필름과 뒤섞어 편집했다. 따라서 영화 속의 루브르 박물관은 진짜이기도 하고 셋트이기도 하다.
칸느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5월 17일 시사회를 한 이 영화는 그 다음날인 5월 18일 전세계 주요 국가에서 동시 개봉했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불법 복제된 필름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순식간에 전세계적으로 퍼지기 때문에 콘텐츠 보호 차원에서 행해진 일이다.
[다빈치 코드]는 센셔이셜널리즘에 기대어 독자들의 흥미를 증폭시킨 상업 소설이다. 소설과 영화의 허구적 구성은 재미있는 시도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진실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상업적 소설이나 영화가 대중들의 종교적 상상력을 이용해서 관심을 끌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에는 그에 따른 책임도 필요하다. 대중들 역시 소설이나 영화는 허구적 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자체로 즐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