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으로 요즘 부모님들이 과거 부모님들에 비해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특수교육기관에 의뢰하는 아동연령이 많이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10년 전만 해도 아동이 최소한 40개월은 넘어야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아이가 20개월이 되기 전에도 의뢰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참 바람직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교하면 아직도 많이 늦은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출산 전부터 태아에 어떤 장애가 있는 지를 철저히 연구하고 첫 돌이 되기 전에 일반적인 발달을 하지 않으면 바로 특수교육을 받게 된다.
10년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면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의사들이 우리 아들이 자폐장애라고 귀뜸해 주었지만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들은 체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육안으로 식별되는 신체장애가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장애라면 쉽게 자녀에게 장애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녀가 두 돌이 지날 때가지 언어의 진보가 없다면 일단 우리는 아이를 주의 깊게 관찰해보아야 한다. 전문가를 만나 보아야 한다. 정신적인, 정서적인 장애가 있다면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영역이 언어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단지 늦될 뿐이다. 때가 되면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현실을 덮으려 해서는 아니 된다. 사실 옛날에는 실제로 5세,6세가 되어 뒤늦게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농경사회에서 부모가 모두 농사일로 바빠서 아이만 집에 남겨두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가 언어적인 자극이 부족하면 자연히 언어지체가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이 혼자 자라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부모가 없으면 조부모나 보모라도 반드시 보호자가 있다. 그러므로 언어자극이 부족해서 언어지체가 생기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이가 만 두 돌이 되어서도 언어의 발달을 하지 않는다면 대개의 경우 장애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부모가 내 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TV를 통해서 보는 자폐장애나 정신지체아들은 대부분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장애아동이요, 장애인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제 막 2돌이 지나는 내 자녀를 TV에서 본 중증의 장애아나 장애인과 같은 장애라고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가슴 아픈 것은 중증의 장애아도 만 두 돌의 나이 때는 역시 그냥 언어의 지체만 보이는 그런 아이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아이에게 발달지체가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고 아이에게 필요한 맞춤교육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경증의 지체아도 결국에는 더 큰 장애의 굴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10년 전에 장애아의 아빠였던 나는 내 아들이 특수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특수교육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내 아들이 장애아라는 사실인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특수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뒤쳐진 발달을 채워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쉽게 말해 유아과외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경을 쓰게 되면서 눈이 계속해서 나빠졌다. 결과적으로 안경을 쓰게 되면서 눈이 더 많이 나빠졌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애가 시력이 좋지 않다고 하소연했지만 안경을 맞추어 주지 않았다. 나중에는 칠판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안과에 갔다. 그런데 안과의사는 아이 눈이 이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왜 안경을 맞추어 주지 않았느냐고 무책임한 아빠를 질타했다.
그 때 알았다. 안경을 쓰지 않았을 때 시력이 더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특수교육은 촌각을 다투는 시간싸움이다. 부어놓은 콘크리트와 같다. 시간이 지나면 굳어진다. 지금당장 작업을 하게 되면 손가락으로도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도구를 사용해야 되고 나중에는 전기드릴과 같은 중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이제는 가정에서 발달의 지체가 있는 자녀교육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는 언어가 지체되어 있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엄마, 아빠', '주세요'를 우선 가르치고 싶다. 바쁠수록 둘러 가라는 옛말이 있다. 언어발달이 꼭 그렇다.
언어발달은 끓는 물의 김과 같다. 물은 금방 끓어 오르지 않는다. 꾸준히 데워주는 열을 필요로 한다. 물이 100 도씨가 되면 냄비의 물은 증발해서 김이 되어 자연히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언어지도 방법은 이 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따라야만 한다.
유아에게서 언어가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가 생후 10개월 이후다. 그 전 태아에서 10개월까지 합하면 약 20개월 동안 엄마와의 상호작용 이후에 언어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수교육을 시작하는 지금부터 새로운 20개월의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아이가 아직 내 뱃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태교음악을 들려주고 만져주고 웃고 반응해 주어야 한다. 이제 5,6개월 되어 기기 시작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도리도리, 잼잼, 짝자꿍을 하며 아이와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까꿍을 하며 환호를 하고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발달하는 유아들에게 제공하는 것 보다 더 밝고 온화한 미소를 띠며 아이를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발달지체아동은 일상생활의 전 영역에서 제재를 당하거나 화난 엄마의 얼굴과 거친 목소리에 노출되어 있다. 그럴때마다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되어지거나 파괴적이고 공격적이 되어간다. 통제불능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180도 전환해야 한다. 여전히 아이는 일탈행동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향해 웃고 머리를 쓰다 덤어 주고 사랑의 키스를 전해 주어야 한다. 뱃속에 든 아이를 향해 임산부의 배를 만지듯이 아이를 만져주어야 한다. 엄마의 사랑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도록.
이 방법 이외에 우리아이의 발달을 도와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하늘로도 땅으로도.
이 외에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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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희중이의 머리속에 차있는 냄비의 물은 언제나 팔 팔 끓을까요?...팔 팔은 아니더라도 반이라도 좀 끓는것좀 보고 싶어요.. 엄마가 물을 너무 서서히 뎁혀서 일까요? 빨리 물뎁히는 방법좀 없을까요? ...이젠 완전히 포기아닌 체념한 상태지만요 ..아이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보기만 해도 예쁘지만 답답할때가 있지요..^_^..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냄비의 물을 빨리 끓이는 방법........... 두가지다 냄비를 양은으로 바꾸던가 아님 더 센불에 올리던가......... 둘 다 적절히 믹스하는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두가지 믹스에 산소를 더했지............. ㅎㅎㅎㅎㅎㅎㅋㅋㅋㅋㅋㅋ
까불지마! 쨔샤! 한번만 더 까불면 언냐한테 크게 한번 다쳐?..
물이 어떻게 끓을까요? 요즘은 까스렌지불이 있어서 쉽지만 원래 우리 시골에서는 가마솥에 끓였죠. 꾸준히 성실하게 땔감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가령, 지난 번 언어지도방법처럼 동일한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하루 해를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가르치지요.
라면 끓일때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넣으면 비등점이 높아지지요. 그러면 물이 잘 끓어오르지 않아요. 늦다는 이유로 욕심을 내면 안됩니다. 늦을 수록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그 점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이죠. 하루 열심히 하면 다음날에는 다시 안하죠. 물을 끓일려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꾸준히 하려면 부모인 내가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없는 일을 일상생활속에서 계속 할 수는 없거든요. 제가 드리는 교육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어렵게 보지 마세요.^^
글을 올리다 보니 댄스곡이 계속 올라오네요. 어깨가 춤을 추네요. 좋아요. 솨아
그러게요~ 아주 단순한것 조차 어렵다 생각하고 시도조차 못하고 방관만 하고 있으니 애미의 잘못이 더 큰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녀석이 제등위에 올라서서 너무 많이 저를 괴롭혀서 제가 일부러 "큰소리로 우는척?"을 했더니 갑자기 녀석이 놀랐는지 "엄마"? 하고 크게 부르며 제입을 녀석의 손으로 막아버리는거 있죠?
아주 큰목소리로 "엄마" 라고 하는 소리가 제귓가에 맴돌때 넘~행복했습니다~ 지금도 그여운이 남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