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하연 봉우리 찬·김치 대표(49세)는 이 말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다. 스물아홉 살에 50원짜리 만두로 리어카에서 줄 손님을 끌던 그는 지금 가장 평범한 음식인 김치를 ‘명품’의 경지로 끌어올려 최고급 백화점에서 손님을 끄는 ‘김치 명인’이 돼있다.
이 대표는 김치 엑스포에서 2004, 2005년 연이어 은상을 수상하는 데 이어, 2006년에는 금상을 받았다. 빙어김치, 홍어김치, 전복김치, 파프리카 백김치 등 그가 새로 개발한 김치만 수십여 종. 가보처럼 꼭꼭 숨겨두지 않고 김치 비법을 널리 전파하는 게 그의 또 다른 일이다. 백화점 문화센터에 초빙되고, 서울 역삼동에서 김치교실을 직접 운영한다. 해외로도 발을 넓혀 YWCA 주최 일본 대학생 김치 강좌, 일본 벤처 농어민 대상 김치 강좌에서도 우리 김치를 소개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엔 80여 가지의 김치 레시피를 공개한 책 《이하연의 명품 김치》를 펴냈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 역삼동 한정식집 ‘봉우리’에서 이하연 대표를 만났다. 밤새 내린 함박눈이 마당에 층층이 쌓인 20여 개 김치 항아리와 파릇한 보리밭에 소복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멍게김치, 갓김치, 총각김치, 전복김치, 해물보김치, 비늘김치…. ‘해물보김치’는 낙지, 새우, 문어, 전복 등 해산물을 넣어 만든 소를 배춧잎으로 감싸고 미나리 줄기로 묶어 내는 개성 지방의 김치. ‘비늘김치’는 총각무보다 약간 큰 초롱무에 어슷한 칼집을 내고 사이사이로 갖가지 고운 채를 넣어 모양을 낸 궁중 김치다. 연신 “이거 드셔 보세요”, “저것두요” 하면서 음식이 조금 식었다 싶으면 바로 데워오는 모습이 꼭 친정 엄마 같다.
그의 김치는 담백하다. 조미료와 설탕을 일절 넣지 않는단다. 일반 김치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밍밍한 맛이다. 첫맛에 입에 착 감기지는 않았지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원재료의 맛이 살아있어 뒷맛이 깔끔했다. 설탕을 안 넣었다는 데에도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좋은 배추와 무는 달달하잖아요. 고추를 60℃ 이상의 화력기에서 쪄서 말린 화건초는 태양초보다 단맛이 강하거든요. 빛깔 고운 태양초와 화건초를 잘 배합하면 텁텁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단맛을 낼 수 있어요. 또 신선한 재료로 만든 젓갈은 짜지 않고 단맛이 나지요.”
이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김치는 묵은지. 땅에 묻은 항아리 안에서 1년 넘게 묵혔다는 김치는 군내가 나지 않으면서도 배추의 사각거리는 식감이 살아있었다. 1kg에 1만2천 원 정도로, 일반 김치보다 1.5배 비싼데도 마니아들이 늘고 있어 수요를 감당하기 벅차다고 한다.
‘이하연의 봉우리 찬·김치’는 서울의 현대백화점 외에는 전화 주문, 인터넷 등을 통해서만 판매된다. 대형 마트나 TV홈쇼핑에서 종종 제안이 들어오지만 물량을 댈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내놓는 김치라 재료 구입부터 손질, 김치 담그기까지 직접 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지 않다.
그의 김치 맛은 엄선된 재료에서 시작된다. 좋은 재료를 찾아 전국 팔도를 누볐다. 배추와 야채는 친환경 재료를 엄선해서 쓴다. 묵은지 배추는 경남 거창 유기농장에서, 김장김치 배추는 경기도 양평군 친환경 단지의 것을 택한다. 고들빼기는 여수에서 계약 재배를 해서 쓰는데 다 자란 고들빼기는 여수 바닷물에 절여서 서울로 가져오는 식이다.
그가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김치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3년. TV에서 방영되는 뉴스 한 장면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꿨다.
“강원도 지역 폭우 때문에 배추와 무 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중국산 김치가 무더기로 수입되는 장면을 봤어요.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바로 김치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제가 좀 성질이 급하거든요. 하하.”
10년 넘게 고급 한정식집을 운영하면서 직접 김치를 담가왔던 게 김치 사업의 발판이 됐다. 손님들로부터 “김치 장사하면 대박나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오던 차였다. 빙어김치, 홍어김치 등 실험적인 김치를 개발한 후 먼저 단골들에게 엄정한 심사를 받는다. 손님이 맛없다고 하면 탈락. 다른 김치에 도전하는 식이다. 최근 가장 반응이 좋았던 김치는 ‘전복김치’. 전복 살이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별미인 이 김치는 ‘2006 김치 엑스포’에서 금상을 받았다.
고운 얼굴선에 여성스러운 목소리의 이하연 사장. 사람들은 그의 얼굴만 보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산 것 같다”고 하다가 손을 보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의 손마디는 굵고, 손등은 거칠고 투박했다. 오른 손목이 왼 손목보다 표나게 굵다. 칼질을 하도 해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남편 유학 보내고 리어카 장사하다 사업가로 성공
육군본부 수송대에서 일하며 밤이면 야간대학 건축과를 다니던 남편의 몸에서 나는 기름내가 싫었던 그는 ‘남편이 몸에 기름 묻히지 않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한다. 전세금 600만 원을 빼 무작정 남편을 호주로 유학 보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두 살, 세 살배기 아이가 딸려 있었다. 살 곳이 없어진 그는 경기도 이천시 언니 집으로 들어갔고, 리어카를 끌며 두 아이의 생계를 책임졌다.
“처음엔 햄버거를 팔았어요. 재료를 받아 그냥 데워서 줬는데, 제가 먹어봐도 맛이 없더라고요. 만두로 종목을 바꿨지요. 직접 담근 김치에 질 좋은 돼지 목살을 다져 넣고 만두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밤새 만두를 빚은 후 아침에 리어카를 끌고 나갔지요. 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하다고 하잖아요. 두 아이가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하루 세 시간밖에 못 자면서 만든 50원짜리 튀김 만두. 이 ‘길거리 고급 만두’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인기를 끌었다. 오후가 되면 손님들이 줄을 서 장사진을 이뤘다. 재료비와 세 식구 생활비를 제하고도 한 달에 90만 원이 남았다. 그게 바탕이 돼 한정식집을 열었고, 김치 사업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때 느꼈죠. 사소한 음식이라도 내 가족에게 먹인다는 생각으로 까다롭게 만들면 성공한다는걸.”
아내의 희생이 못내 가슴 아팠던 남편은 1년간의 유학 생활을 접고 들어왔다. 밀도 있는 생활을 한 덕에 남편은 1년 만에 수준급 영어를 구사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내의 결단력과 생활력에 늘 고마워하는 남편은 딸에게 “니 엄마 반만 닮아라”는 말을 한다고. 남편 친구들에게도 이하연 씨는 존경의 대상이다. 집에 놀러오면 “○○○ 마누라를 향해 경롓”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한단다.
이하연 사장은 경기도 덕소 1500여 평의 부지에 김치 항아리 800개를 묻었다. 한국 최대의 김치 박물관을 꾸리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차근차근 현실화해 나가고 있다.
“김치 천년의 맛도 보고 체험도 하는 김치 체험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구경만 하는 전시관이 아니라 배추 절이는 것도 보고, 속 넣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요. 또 김장 날 문화도 되살리고 싶어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김장을 도와줄 때 한 솥 가득 밥을 해 나눠 먹고, 어른들 옆에서 아이들은 그네를 타거나 공기놀이를 하잖아요? 온 동네 축제였던 그날을 되살리고 싶어요.”
사진 : 이규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