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서늘했습니다.
비도 조금 흩뿌렸고...
우린 광화문 거리를 걸었습니다.
남편의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했는데
아주 섬세하고도 소탈한 선생님 한분이 그곳에 정겨운 장소가 있다해서
순두부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자리 이동을 했는데
라이브로 노래를 하되 것도 7080세대를 위한 노래였습니다.
고요하고 분위기 있는 노래를 앳된 여자가 부르자
끝날 때마다 휘파람에 소리 지르고 박수 치고 그런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모임에선 레크리에이션 강사들말로 가장 분위기 띄우기 어렵다는 의사 선생님들조차
서서히 미소를 머금기 시작하더니
술이 한 순배 돌아가자 곡이 끝나면 박수를 치고 홍소를 터뜨리기 시작 했습니다. .
그때였습니다.
테이블에서 한 남자분이 등산복 차림으로 일어서더니
추억의 그 춤, 고고와 디스코를 추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자 옆 테이블에서 각기 한 두사람
또 다시 그의 아내인듯한 사람이 일어나 짝으로 신나게 춤을 춥니다.
웃으며 우린 자연스레 관객이 되었고
몇 분 선생님은 서로 "우리 나가자"를 하더니
그만 결국엔 구경꾼으로 만족 했습니다.
그러나 무릎 장단에 손바닥 장단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광화문에서 재수를 하고
그 곳에서 내 생애 최고의 절망과 희망의 시기를 보냈었습니다.
또 대학땐 그곳에서 데이트를 하고 팝송 가사를 베끼기도 하고 듣기도 했었죠.
내게도 광화문 연가가 있었군요..
이곳에 함께 다시 오고 싶은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문자 하나를 보내는 걸로 만족!
흥이 난 어떤 분이 "맥시컨 사라다가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레스토랑 메뉴였습니다.
롤러장 얘기가 난무했고
고교시절부터 연애를 한 선생님 한분은 아내를 바라보며
"여보, 당신 여기서 보니 지금도 아가씨 같다.
그때 당신이 학원에서 듣는다던 완전물리 강의에 등록하고 당신을 보러 갔더니
당신은 끝나는 시간 난 들어가는 시간에 등록을 했잖아
난 바로 학원에 그만 다녔어"
그 아내는 수줍게 웃었고 전
"뭔가를 보면서 옛일을 추억하는 선생님의 감성이 놀라워요.
그러나 제게 상처주신겁니다."
하면서 놀렸습니다.
그리곤 멀찌감치 떨어져 그들이 지난 날을 추억하게 두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내 젊은 날...
그곳에서 다시 인생을 산다면 난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광화문 골목길은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반팔 와이셔츠를 입은 남편이
웃옷을 걸치지 않은 걸 후회하며 빠른 걸음으로 지하도를 향해 앞장서서 걸어 갑니다.
난 뒤따라 가며 나만의 옛 기억을 되짚어 봅니다.
첫사랑 남자와 결혼한 저는 그의 뒤를 걸으며
날 쫓아 다니던 남자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새삼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조금도 죄스럽거나 음탕하게 여겨지지 않을 나이가 되어 버렸다니....
그게 오십, 사랑에 희망을 잃은 나이입니다.
안내하신 선생님은 어찌나 흥분하셔서 설명을 해대는지 일행들은
'아마 이곳 사장님인가봐.."
하며 웃으며 놀렸습니다.
아마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 하는 거였겠죠.
주인조차 재미났는지 서비스 안주가 올라 왔습니다.
광화문 추억만 백 장을 넘게 쓸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젠 다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가을 초입에 옛 기억을 떠올린 구월의 첫날이었습니다.
그곳엔 여전히 골목 바람이 불었고
젊은날을 추억하는 우리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남았을 겁니다.
며칠 전 친구가 나를 만나고는
"만년 소녀 모습.... 참 예쁘게 보였다"
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예쁘다는 말조차 쑥스럽고 내 삶을 지나쳐 간 것 같아
낯설게 여겨지는 오십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
웃어도 조금은 점잖게 웃어야 하고
눈물은 아무도 보이지 않게 감춰야 하고
그리고 미소 살짝, 슬픈 시선 잠깐
이렇게 나이가 들어 가며 우린 위선을 아니, 가면을 쓰도록 나이들어 버렸습니다.
광화문 그곳이 그리워지네요
다음에 가선 저도 꼭 춤을 춰볼 겁니다 .
크게 웃으며 .....
첫댓글 젬마님의 소시쩍 그림을 그려보며 저도 한번 웃어봅니다.... 저의 추억을 더듬으며